[아침평론] 중양절이 지났어도 국화 향기 그윽하다
[아침평론] 중양절이 지났어도 국화 향기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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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십일지국(十日之菊)’이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십일의 국화’라는 뜻이다. 무엇이나 한창 지나 때늦은 것을 의미하며 만시지탄(晩時之歎),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과도 일맥상통하는 이 말은 음력 구월 구일, 즉 중양절(重陽節)에 국화가 최고조로 피어나는 시기이나 하루 늦춰 십일에 피어난 국화를 지칭하니 이미 때가 늦었음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 유래를 찾아보면 중국 당나라 시인 정곡(鄭谷)의 시 ‘十日菊’에 구절이 나온다. ‘계절이 바뀌니 벌의 근심을 나비는 알지 못하고(節去蜂愁蝶不知) 새벽 정원엔 다시 꺾인 나뭇가지가 남아 있구나(曉庭還折有殘枝) 인연이 오는 사람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데(自緣今日人心別) 반드시 가을의 흥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로구나(未必秋香一夜衰)’ 시인은 개화절정기를 지나서 피어있는 국화에서 가을의 흥취를 찾고 있으니 계절로 치면 요즘이 딱 그런 시기다.

중양절이 지났으니 ‘이미 때가 늦다’는 말과는 다르게 이 땅에서 국화가 앞 다투어 피어나 주위를 밝히고 있다. 가을의 대표적인 꽃이 국화와 코스모스다 보니 시월 말경인 이때쯤이면 우리나라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흔하게 국화를 볼 수가 있다. 특히 결곡한 자태로 피어나 있는 국화를 두고 고매한 선비들이 칭송하거나 그 모습에 맞게 쓴 시들이 동서고금에 많은데, 아무래도 그 진수는 중양절에 맞춰 국화 행사가 많았던 중국이 아닐까 하고 필자는 생각해본다.

지난주 중국여행 중에 ‘포청천’으로 유명한 개봉에 들렸다. 개봉부와 용정공원 등 시내 곳곳에는 국화향이 진동했고, 공원 군데군데 국화들이 장식돼 있어 알고 보니 국화축제 기간이었다. 개봉 국화축제는 허난성(河南省)에서도 유명하다. 매년 중양절을 전후해 열리는 지역행사가 33년째를 이어오고 있고 ‘국제국화전’ 행사도 열려 중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며 개봉부 옛 도시 탐방과 더불어 국화축제를 구경하러오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나중에 낙양과 정주를 둘러본 후 필자가 안 사실이지만 개봉에서 그 많던 국화를 낙양과 정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시내 어디에라도 국화가 핀 곳이 없겠나마는 개봉시에서 국제국화전이 열리다보니 인근 도시에서는 국화축제는 고사하고 국화가 피어났거나 화분에라도 장식된 곳을 쉽게 찾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특성을 살린 대규모 행사로 세계 수준의 꽃축제로 발돋움하자는 것이다. 같은 허난성에 위치한 낙양은 상징 꽃이 국화가 아닌 모란꽃이다. 매년 봄에 이곳에서는 국제모란축제가 열리는데, 올해 32회째로 유명세를 타고 있으니 축제 하나에도 경쟁력 있고 지역특색을 살리는 그 취지는 바람직해 보인다.

기후 영향 탓인지 십일지국이 지났어도 국화가 만발하는 시기다.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등 대도시를 비롯해 작은 산촌에서도 국화 축제와 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니 가는 곳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국화를 내세워 가을꽃 축제를 하느라 바쁘다. 대구수목원에서는 27일부터 내달 8일까지 국화축제가 열릴 예정이고, 경기도는 12개 시 지역 이상이 동시에 국화축제 경쟁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또, 봄철 나비축제로 유명한 전남 함평에서는 지난 23일부터 내달 8일까지 ‘제12회 대한민국 국향대전’이 열리고 있다. 그럼에도 인근 지역인 화순, 나주, 장흥, 진도 등에서도 뒤질세라 국화 향연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지역 특색도 없고 고만고만한 국화 축제인데 이쯤 되면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눈은 즐거울 수 있겠지만 의미는 퇴색된다. 가뜩이나 지역축제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같은 테마를 두고 경쟁하듯 행사가 열리고 있는 점에서 부정적 시각도 따른다.

국화는 절개와 은일(隱逸)을 상징하는 꽃이다. 국화의 특색이 중국 위나라 장수 종회(鍾會)가 지은 국화부(菊花賦)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 바 “국화에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 둥근 꽃송이가 높이 달린 것은 하늘을 본받은 것이고, 잡티 없이 순수한 황색은 땅의 색이며, 일찍 심어 늦게 꽃이 달리는 것은 군자의 덕이고, 찬 서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것은 굳세고 곧은 기상을 드러낸 것이며, 술잔에 떠 있는 것은 신선의 음식이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깨끗하고 야무져서 빈틈이 없다’는 결곡을 보여주는 국화는 시세(時勢)가 어지럽게 변화되는 현실일수록 단연 돋보인다. ‘중구일(중양절)에 국화를 감상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즐거운 일에 그윽한 회포를 어떻게 퍼담을 거나’는 이색(李穡)의 말마따나 한창 무르익어가는 이 가을에 그윽이 풍겨나는 국화 향기 속에서 국화의 절개를 지키고자 했던 옛 선비들을 회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까? 중양절이 지나도 국화는 향기를 더해 가득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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