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희망스크럼을 구성해 당대표 권한을 공유하겠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전격 제안한 이 말을 얼핏 들으면 당대표 지분을 내놓고 새정치연합의 축이 되고 차기 대선후보 반열에 이름을 올린 두 중진들과 함께 당 운영을 하자는 것이니 당대표가 민주적이고 당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모습으로 비쳐날 수 있겠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당헌 등을 살펴볼 때에는 불가능한 내용으로 당대표 권한 공유 제안은 문 대표가 제1야당을 마치 자기 소유 개인회사로 생각하는 듯해서 사당화(私黨化) 모양새가 풍겨난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2월 8일 개최된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다. 당헌(제24조)에 의해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통할하나 그 권한은 당의 주요 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하거나 당무 전반에 관한 집행·조정 및 감독 등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다. 새정치연합의 당무를 당대표가 통할한다고 하나, 당무집행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은 당무위원회이고, 또 당무 집행에 관한 최고책임기관은 최고위원회이므로 당대표는 그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행사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문 대표는 18일 광주 조선대 특강에서 “안철수 의원, 박원순 시장과 적어도 다음 총선까지 임시 지도부를 구성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두 분과 당대표 권한을 함께 공유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헌·당규를 잘 준수해야 할 당대표가 당헌에도 없는 내용들을, 그것도 당무위원회나 최고위원회의 의결이나 합의 없이 불쑥 터트렸던 것인데, 후유증이 일파만파로 번져났다. 당대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던 문 대표가 대표직 유지방법으로써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당대표 권한을 공유하겠다는 것은 당헌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문 대표의 권한 밖에 있는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표가 당헌에 부합되지 않는 발언을 하고 행동하는 것은 당내외에서 조여 오는 압박감을 떨쳐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문 대표는 당헌·당규상 자신의 권한에 속하는 범위 안에서 작용해야 하는 바, 요즘 사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최고위원회에서만 일부 제동을 걸 뿐이지 별다른 제어(制御)가 따르지 않는다. 이것은 당헌 등 자치규범에 의해 운영돼야 할 정당이 당직자 개인 소견에 의한 비정상적 행위에 대해 눈감고 있는 형국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얼마 전에 문 대표는 경기도 관내의 중소기업 현장을 찾아가 “지난 대선 때 ‘중소상공부를 만들겠다’고 공약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그래서 저희는 다시 다음 총선과 대선 때 공약으로 내걸 생각이다”는 말을 했다. 또 지난달 19일에는 서울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열린 ‘고단한 미생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서울시의 청년수당 등 청년지원정책과 관련해 당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는 등 독자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

문 대표는 총선·대선공약을 입에 올리는 모양새가 마치 대선 후보자로서 단정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 바, 당무위원회나 최고위원회에서 결정되지 않은 이러한 사항들을 쏟아내 당내 최고위원들로부터 비난받기도 했다.

‘당대표 권한 공유 제안’이 나오자 일부 최고위원들은 당대표가 선출직 최고위원들의 권한을 침해했다며 반발하는 가운데, 주승용 최고위원은 “당 지도부의 권한을 대표 혼자 이렇게 나눠먹기 해도 되느냐”고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려는지 새누리당이 가세해 ‘문안박 희망스크럼’을 두고서 “(새정치연합) 당원들과 의원들이 직접 뽑은 최고위원들을 허수아비로 만들자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다”며 잘못을 꼬집는 등 해프닝도 따랐다. 이에 안철수 의원은 29일, 문대표의 제안이 “당 활로를 여는 데 충분치 않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현행법 아래서는 위법성 논란이 있는 처지니 이래저래 문대표 입장만 어렵게 됐다.

민주정당은 마땅히 당헌에 따라 정당의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이는 대표자나 지도부, 당원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어디까지나 당헌·당규에 의한 권한 내의 당무를 집행해야 하는 바, 새정치연합 당헌 어디를 살펴봐도 당 대표의 지명을 받거나 또는 포섭하는 자와 함께 당 대표의 권한을 균분할 수 있는 근거가 없음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문 대표는 당 화합을 위해 그 이상의 방법은 없다고 쐐기를 박았고 친노·주류 측은 적극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비주류 측 입장은 부정적이고 이대로는 총선은 필패라며 문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며 분당설마저 띄우고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정치현실을 제대로 인식해 잘 처방하면 모르겠지만 기회를 놓친 탓에 가래로도 못 막을 일들이 우리 정치판에서 종종 나타났다.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보여준 비정상적 정치 가도(街道)에 가뜩이나 염증이 난 국민들이 더 기다려줄지도 의문이다. 국민이 심판관이 되는 총선은 다가오는데, 제1야당은 주류·비주류의 당권싸움이 그칠 날이 없고, 이제는 사당화에 분당 조짐까지 보이니 설상가상(雪上加霜)이 따로 없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