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이제 반년 남짓 남은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벌써부터 옥신각신하고 있다.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다’는 옛 속담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여야가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구태정치나 특권 내려놓기 등 정치개혁과 정작 해야 할 일에는 정성을 들이지 아니하면서 어떻게 하면 차기 공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까 셈법만 따지고 있다. 당대표, 평의원 할 것 없이 자기 계보나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볼썽사납게 싸우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공히 마찬가지인데, 여당에서는 공천 룰을 두고 김무성 대표와 친박이 다투고 있고, 새정치연합에서도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주류계와 비주류가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지난달 28일 김 대표와 문 대표가 오찬회동을 가진 결과, 국민공천에 대해서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뤄냈다며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 방안을 정개특위에서 강구하기로 합의 처리했다고 밝혔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선관위 주관으로 하되 일부 정당만 시행하게 될 경우 역선택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법으로 규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평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지론인 국민공천제에 대해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호응해주자 이번에는 새누리당의 친박세력이 들고 일어났고, 청와대에서도 국민공천을 위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에 대해 역선택과 민심 왜곡, 국가예산이 들어가는 세금 공천 등 5대 불가론을 내세우며 김 대표의 단독적인 야당과의 합의안에 항의했다. 이러한 양태만 놓고 보면 합의 내용의 진척이나 순수성보다는 20대 총선 공천을 놓고 서로 유리하도록 김 대표 측과 청와대가 날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청와대에서는 “공천 준비를 담당하는 총선기획단 같은 기구를 구성해 공천 룰을 정해야 하는데 김 대표가 단독으로 결정해 버렸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양당 대표의 합의로 갑자기 ‘국민공천’이 나오고, ‘안심번호’가 등장해 정치권을 달구고 있으니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도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도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헷갈리고 있다. 공직선거에서는 정당이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결정권을 갖는 바, 정당은 선거에 나설 후보자를 당 공식기구인 ‘공천위원회’를 통해 선정하게 마련이다. 김 대표는 자신이 당대표로 당선될 때부터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는 여당 후보 선정에 청와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방패막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가 보건대 명백한 것은 공직선거 후보는 정당의 권한이므로 정당의 당헌·당규에 따르면 된다는 점을 설파(說破)한다. 그렇다면 총선에서 유권자가 각 정당 후보자 중에서 마음에 드는 자를 선택하면 될 일이지, 정당 내부의 후보자 선출까지 국민공천으로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설령 있다고 해도 정당이 주관해 하면 될 일이지, 선거관리위원회가 맡아서 국민 혈세로 정당의 후보자를 선출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본다면 국민공천제가 ‘국가예산이 들어가는 세금 공천’이라고 잘못됨을 지적한 청와대 측의 논리는 일리가 있는 말이 된다.

현재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은 모두 18개이다. 원내 정당으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외에 정의당도 있고, 원외정당으로 현재 15개 정당이 있으며 신당 창당을 선언한 천정배 의원, 박주선 의원 등의 정당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판인데, 양당만을 위해 국민 혈세까지 낭비하면서 국민공천제를 시행하고자 함은 결국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두 당이 기득권을 최대한 살려보자는 것밖에 안 된다. 다시 말하면 ‘국민공천제’라는 미명하에 당비를 들이지 않고 국가예산으로 다음 총선 전에 자당 후보들을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게 해보자는 것인데, 이는 전적으로 양당정치를 고착(固着)시키려고 하는 자기욕심이거나 꼼수로 볼 수밖에 없다.

거대 양당 내부에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 제도를 두고 서로 각을 세우고 있지만 따지자면 이 제도는 어디까지나 정당이 총선에 나설 후보자를 정하는 당내 행사에 불과하다. 정당이 자체적으로 공천위원회를 구성해 당헌·당규에 따라 선출하면 될 일인데, 이를 부풀려서 상향식 공천이니 국민공천이니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김무성 대표가 핵심적으로 밀어붙이려고 있는 이 제도에 대한 청와대의 시각을 대입해보면 정답이 나온다.

그래서 “국민공천제는 민심도, 당심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라는 청와대 지적은 틀린 게 아니다. 당 후보자는 당헌·당심에 따라 자체 경선으로 뽑고, 정당이 내놓은 총선 후보자는 민심에 맡겨서 적격 후보자를 선출하도록 하면 된다는 명확한 논리가 아닌가. 이제라도 양당은 정신 차려서 젯밥보다는 제사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구태정치를 청산할 정치 혁신에 앞장서야지 정치선진화가 정착된 미국의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를 빌미삼아 양당정치를 고착시키려는 의도나 욕심에서 선진 정치의 상징인 이 제도를 왜곡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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