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평론] 가을낙엽 보며 한없이 불러보는 엘리지(悲歌)
[아침평론] 가을낙엽 보며 한없이 불러보는 엘리지(悲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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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지난해 여름쯤 본 칼럼에서 필자가 즐겨 걷는 집 인근의 산책로를 소개한 적이 있다. 아파트단지로 둘러싸인 도심이긴 하나 대로변 인도에 가로수들이 무성하게 우거져있어 사계절 걷기 좋은 길이다. 예전과 다름없이 글쓰기를 마쳐놓고 오후 나절에 운동 삼아 산책길을 나선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때쯤이면 가로수 은행잎들이 노랗게 물든 모습이나 단풍나무들이 곱게 익어가는 풍경은 나로 하여금 군상을 떠올리게 해주는 사색의 길이어서 하루 일과가 됐다.

길게 난 가로수길 아래 낙엽들이 수북 쌓여있다. 지나다보니 청소부가 나뭇잎을 쓸고 있지만 수시로 불어대는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이 감당되지 않는다.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가볍게 바람이 불 적마다 우수수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멋진 모습이다. 며칠 전만 같아도 그 풍경들은 마음에 다가와 필자는 낮은 휘파람을 부르거나 아님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며 걸어왔을 테지만 오늘은 마음이 찡해오면서 몹시 우울하다. 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짓누른다.

아침평론, 본란은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에 올리는 글이어서 되도록이면 필자는 밝은 이야기나 희망 섞인 내용으로 장식하고 싶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꼭 쓰고 싶은 마음이니 혹은 어두운 이야기로 해서 상쾌하지 못하더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양해를 바란다. 글 쓰면서 설명이 길어진다는 것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인데, 길을 걷고 있는 이 순간, 마음속을 흐르는 노래가 있으니 ‘스잔나’이다. 이 노래는 1960년대 후반, 중국 영화 ‘스잔나’의 주제곡이기 했고, 중국 미모의 여배우 리칭(본명은 리꿔잉: 李國瑛)이 연기해 그 당시에 국내에서도 인기를 크게 날렸고, 워낙 유명해져 60·70대에 이른 사람들은 아마 기억할 것으로 짐작된다.

나중에 가수 정훈희가 번안 노래를 불러 히트치기도 했는데, 부를수록 마음이 애잔해지는 노래다. ‘해는 서산에 지고 쌀쌀한 바람 부네. 날리는 오동잎, 가을은 깊었네. 꿈은 사라지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 분위기는 꽤나 쓸쓸하다. 영화 내용은 오래되어 속속들이 기억나지 않지만 노래는 곡조까지 기억하고 있다. 일년초가 아닌 이상 꽃 피어 지더라도 봄이 오면 꽃은 다시 피건만 자신(스잔나)은 영원히 가니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라는 것인 바, 영화를 보던 그 당시 필자 나이가 스무살 채 안 된지라 인생의 의미를 잘 알지도 못했건만, 구슬프게 울려나는 엘리지(悲歌)는 마음을 울리고도 남았다.

그 노래를 나직하게 부르며 길을 걷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길가 의자에 앉아 마음을 정리해본다. 필자 혈육, 누이에 관한 것이니 더욱 슬플 수밖에 더 있으랴. 미당 서정주 시인은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서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누님을 두고 글을 썼고, 신라 때 월명사라는 스님은 죽은 누이동생을 위해 향가 ‘제망매가’를 썼는 바, 오랫동안 글을 써온 필자가 타인의 운명에 대해 축도한 적도 있으니 정작 누이에 대한 몇 줄 애탄과 염원은 당연지사다.

제망매가(祭亡妹歌)는 여러 해설이 있지만 양주동 박사의 풀이는 이러하다. ‘죽고 사는 길 예 있으매 저히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다이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누나/ 아으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내 도닦아 기다리리다.’ 그 가운데 ‘한 가지에 나고서 가는 곳 모르누나’ 내용은 형제자매가 한 부모에서 태어난 것에 비유해 먼저 잎이 떨어졌으니 그 애절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인 바, 막상 필자가 그 처지가 됐으니…. 대학병원에 입원해 곧장 치료 받아 고뿔 낫듯 완쾌해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을 갖고 입원하고서는 그만 병이 악화돼 중환자실에서 누워있는 나의 누이. 아직 오십대 중반의 혈육을 먼저 보낼 현실과 맞닥뜨렸으니 오빠로서 미안하기가 그지없다.

길가 벤치에 앉아서 찬바람을 맞는다. 또 한 번 은행잎들과 가로수 나뭇잎들이 떨어진다. 누이동생이 입원할 때 그 기대처럼 꼭 나아 집으로 돌아가기를 더 없이 원하고 또 원한다. 누이가 병실에서 대화 시에 설령 잘못되더라도 ‘자기 탓이고 운명을 받아들이겠다’ 했다는 막내 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편안해했다는 누이동생을 생각하며 그동안 자주 안부도 물어보지 못했던 기간의 회한이 가슴을 짓누르고 오열(嗚咽)로 터진다.

평소 셋째 오빠인 필자를 잘 따르며 때론 용기마저 북돋아주던 누이를 생각하며, 마음으로는 백 번도 더 완전 쾌유를 빌면서 다시 일어나 길을 걷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을의 온갖 풍경으로 인해 좋은 이 길도 시방은 무거운 발걸음인데, 자꾸 떠오르는 것은 유행가 ‘누이’ 노래다. ‘언제나 내겐 오랜 친구 같은/ 사랑스런 누이가 있어요./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누이…,/ … 나의 가슴에 그대 향한 마음은/ 언제나 사랑하고 있어요.’ 이제는 영영 이별을 해야 할 것 같은 누이를 위해 한없이 엘리지(悲歌)를 불러주고 싶다. 그것은 다시 한 가지에 생겨나 아름답고 행복한 날을 달굴 더 좋은 내세의 인연을 위해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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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화 2015-11-15 21:59:08
시인의 누이를 행한 애타는 마음이 묻어나네요 ~왜 사람은 나서 고생하고 주어냐만 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