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평론] 도쿄돔에 최강 ‘대한민국’ 함성 울려퍼지다
[아침평론] 도쿄돔에 최강 ‘대한민국’ 함성 울려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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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국제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의 열전(熱戰)을 보면 그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1973년 4월 9일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의 금메달 쾌거다. 당시 정현숙, 박미라, 이에리사 선수로 구성된 대표팀은 최강을 자랑하던 중국과 일본을 연달아 꺾고 9전 전승으로 세계정상에 올랐으니 이것이 건국이후 국제대회 단체전 첫 금메달이었던 것이다. 세 ‘트리오’ 선수 가운데 최연소였던 19세 소녀 이에리사는 ‘사라예보의 영웅’ 호칭까지 받으면서 한국 탁구의 전설이 되기도 했다.

또 하나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1982년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개최된 세계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터진 쓰리런 홈런이다. 당시 한국은 7회까지 일본에게 2점을 뒤지면서 패색이 짙었으나 8회 2점을 만회한 다음, 2사 1, 2루 상황에서 한대화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타자는 풀카운트 접전 끝에 극적으로 왼쪽 담장을 넘기는 큼지막한 홈런을 날렸는데, 이 한방으로 한국대표팀은 일본에게 5-2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다. 기적과 같은 두 경기는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기억 속에서 생생히 남아 있다.

우리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일본을 만나면 죽자 살자 해보는 근성이 있다. 선수층이나 사회체육 시스템 등을 엄격히 따진다면 일본에 비해 열세임에도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한국 선수들의 끈질김은 놀랍다. 전력에서 뒤진다싶으면 특유의 정신력으로 버티는데 일본과의 시합이라면 가위바위보조차 지지 않으려는 그 근성으로 인해 저력이 나타나는 바, 앞에서 언급한 세계탁구선수권대회나 야구선수권대회에서 숙적 일본과의 경기 결과가 나타내는 것과 같다.

스포츠 경기를 하다보면 기적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지난 21일 폐막된 ‘2015 WBSC 프리미어12’ 대회가 바로 그렇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결승전 상대인 미국을 8대 0로 가볍게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은 싱겁게 끝났지만 정작 일본과 맞상대한 준결승전이 이번 대회의 고비였다. 일본은 예선 성적 5전 5승, 전승으로 B조 1위로 올라와 8강에서 멕시코를 9대 3으로 제압하고 4강에서 한국과 결승전 진출을 다퉜는 바, 내용에서도 한일전은 가히 ‘11.19 도쿄대첩’이라 불릴 만큼 극적이었다.

결승전에 진출하려면 4강에서 만난 숙적 일본을 이겨야 하는데 우리 선수들은 예선전에서 일본 괴물투수 오타니 쇼헤이(22, 니혼햄 파이터스)의 160㎞ 강속구에 눌려 영패 당했다. 두 번 다시는 당하지 않으려고 선수들 눈에 불똥이 튈 만큼 투지를 가지고 경기에 임했지만 그 의지와는 무관하게 괴물투수가 뿌려대는 강속구에는 속수무책이었다. 7회까지 겨우 1안타 빈타에 그쳤고, 삼진만 11개를 당하면서 0대 3으로 끌려갔다. 그래도 한국대표들은 포기하지 않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그 기회는 괴물투수가 7회에 물러나고서 9회 초에 찾아들었다.

국내로 중계방송을 하던 SBS스포츠 아나운서는 9회 초가 전개되자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며 우리 선수들이 끝까지 파이팅 해주기를 주문했다. 또 이날 특별해설을 맡은 이승엽 선수도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며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기를 염원하면서 “새로운 영웅이 나타날 때가 됐다”며 희망적인 멘트를 했다. 하지만 한회에 3점을 뒤엎기란 쉬운 건 아닌데, 마지막 이닝에서 김인식 감독은 승부수를 띄웠으니 대타작전이었다.

8번 타자 대타로 나선 오재원 선수는 깨끗한 안타로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고, 손아섭 선수 역시 대타 안타를 쳐냈다. 이어 1번 타자 정근우 선수가 회심의 2루타를 날려 첫 득점을 올렸으니 스코어는 1대 3이었다. 이용규 선수의 사구(死球)로 무사만루가 됐고, 세 번째 투수에게 김현수 선수가 4구를 얻어 1점을 더 따라간 상태에서 이날 히어로 이대호(소프트뱅크 호크스) 선수가 네 번째 투수 마스이 히스토시 선수로부터 천금같은 2점짜리 결승타를 날려 역전에 성공했고, 9회 말을 지켜내 한국대표팀은 4대 3으로 이겼던 것이다.

일본야구의 자존심이라고 하는 도쿄돔에서 기적이 일어났고 이승엽의 해설대로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야구명언이 있다. 이 말은 미국야구의 전설인 요기베라(1925∼2015)가 뉴욕 양키즈에 있을 때 한 말로, 그는 1948년부터 1962년까지 15시즌 연속 올스타에 뽑혔던 대(大)선수였다. 야구명언대로 우리 선수들이 한일전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기적 같은 승리를 일궈냈으니 포기하지 않은 근성 덕이었다. 한국대표팀은 ‘2015 WBSC 프리미어12’ 대회 준결승전에서 기세 드높던 일본을 꺾었고, 결승전에서 손쉽게 미국을 물리쳤으니 한국야구의 수준을 세계야구사에 우뚝 서게 한 아름다운 도전이었고 값진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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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무리 2015-11-22 22:01:09
일본의 텃세와 방해에도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