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경제성장세가 둔화 일로다. 수출과 내수 모두 부진하다. 차이나리스크, 북한리스크,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한반도 경제를 숨막힐 듯 짓누른다. ‘한국경제위기론’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반박이 오히려 낯설어 보인다, 비관론이 더 우세하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자료도 가계부채율 등에서 최신 자료를 참조한 것인지 의구심이 있다. 심각한 상황이 계속 진행되면 현 정부 임기 내에 자칫 종기처럼 곪아터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태 지역 개발도상국에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중국 주도하에 설립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우리나라가 가입해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앞으로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국이 실익을 얻기 위해서는 AIIB 부총재를 배출하거나 상임이사국으로 선정되는 등 안전장치가 선행돼야 하는데 기대만큼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지 않고 있다. 연말 공식 출범까지 시간이 있어 아직은 낙관도, 비관도 이르다. 그러나 AIIB가 ‘중국의 은행’으로 자국 이익을 우선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중국의 전횡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사회를 상근이사 없는 비상임체제로 운영한다면 중국 의도대로 좌지우지되고 한국은 들러리가 될 수도 있다. 한국 금융외교의 분발과 범정부적 차원의 관심이 요구된다.

“부자 옆에 줄을 서라.”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남긴 말이다. ‘산삼 밭에 가야 산삼을 캘 수 있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기회는 눈 깜박하는 사이에 지나간다”는 말도 그가 남겼다. 그의 어록을 빌릴 때 한국의 AIIB 가입 자체는 다행스럽다. 가입국가가 최근 77개국으로 늘어났다. 한국은 창립회원국 중 5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미·일이 주도해온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우리는 ‘을(乙)’이었다. 해외건설 및 엔지니어링 기업의 아시아 지역 인프라 프로젝트 수주가 증대돼야 한다. 해당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수출 증대도 기대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외환보유액이 3조 8343억 달러에 이른 중국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로 현대판 마셜플랜을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 신흥시장에의 경제적 진출을 통해 경제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중국 내 과잉생산과 과잉산업 문제를 해소하는 것을 겨냥한다. AIIB를 통해 ADB와의 금융패권 경쟁구도를 본격화할 만한 중국의 상황이다.

AIIB를 통해 한국이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우선 아시아 인프라 시장 진출이다. 2020년까지 아·태 지역에서 요구되는 시설 투자수요는 연간 7300억 달러 정도. 도로 항만 철도 토목 통신 전력 IT 병원 건설 등 다양한 인프라시설 사업을 개발도상국에서 진행하는데 우리 기업이 SOC 건설, 토목사업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또한 육상과 해상 무역길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중국은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중동을 육상과 해상으로 연결하는 뉴 실크로드를 만들어 아시아의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우리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연계해 무역길을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남북 경제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예컨대 북한의 도로·철도망 사업을 AIIB를 기반으로 할 경우 좋은 계기가 된다. 북한 지역 개발에 참여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동북아펀드를 꼭 성공시켜야 한다. 자금유치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남북대화에서 발언권과 협상력이 커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넷째, 남북분단 상황에서 우리의 최대 수출 대상국이 된 중국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도록 이끌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된 중국이 외교·통일 측면에서 건설적 역할을 한다면 국제정치학적으로 여러모로 유익하다. 중국으로 금융패권이 넘어갈 경우에 대비해서도 발 빠른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

문제는 AIIB 내에서의 우리의 경쟁력 확보다. 발상의 전환에 바탕한 새 아이디어기업들의 신(新) 사업 아이템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야 하겠다. 현재의 기술과 서비스부터 먼저 업그레이드해 놓고 대규모 개발도상국 프로젝트 수주에 도전해야 할 것 같다. 민관협력(PPP)을 강화해 해당국의 배타성과 투자위험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전략차원의 PPP 종합정책지원 시스템을 미리 마련해두고 정치적, 법적, 사회적, 기술적 측면의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경기가 더 나빠지고 있다. 전셋값 폭등에 따른 소비위축과 빈부격차의 심화로 위기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정부정책이 별무신통이다. 창조경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애매모호한 구호에 불과한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중국경제의 둔화 등 대외적인 악재까지 겹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비상한 개혁마인드가 요구된다. 인내해 나가야 한다. 이 삼성 창업주가 남긴 명언 한 마디를 더 더듬어보며 경제의 활로를 모색해 보자. “사람은 능력 하나만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운을 잘 타고 나야 한다. 때를 잘 만나고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운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둔한 맛과 운이 트일 때까지 버텨낼 수 있는 끈기, 즉 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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