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무작정 배짱으로 중국 땅에 와 망하기도 하고, 일부는 흥하다가도 망한다. 시간이 좀 지나 중국을 좀 알 것 같아 정작 사업을 시작하려면 자금이 없다.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버틸 것이냐 갈등한다. 일부는 포기하고 침통한 패장의 얼굴로 귀국한다. 일부는 어영부영 버틴다. 극소수는 그가 겪은 고통을 발판삼고 거름삼아 재기에 성공한다. 한국인들은 총명하지만 중국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일반적인 정보에만 의존하다 어려움을 겪는다. 중국인은 마음을 열지 않지만, 한국 사람들은 잘 대해주는 중국인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고 쉽게 마음을 연다. 술값 싸다고 자주 가서 마시다 보면 한국보다 지출이 훨씬 많은 중국 땅…”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중국 체험글이다. 13억 인구. 인류사상 최초의 초거대 단일국가와 이웃하고 있는 우리나라다. 이웃을 바로 알아야 성공한다. 넓고 넓은 황금 시장임에 분명하지만 이익을 남기는 장사하기가 쉽지 않다. 돈 좀 벌어보겠다며 멋모르고 중국땅에 뛰어 들어갔다가 ‘장사의 신’이 되기는커녕 무참하게 낭패를 겪은 이가 많다.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 스마트폰 시장만 해도 삼성전자가 지난해 1분기까지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 2분기엔 4위로 밀려났다. 중국에서의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 이는 박리다매 전략을 앞세운 샤오미 등 중국 제품의 눈부신 약진과 중국 내수시장 경기 둔화 탓이다. 자동차 쪽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의 판매량 부진이 눈에 띄고 중국 로컬 업체의 점유율이 늘고 있다. 잘 나가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이 정도이면 우리나라의 ‘비단이 장사 왕서방’과의 거래는 이미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그렇다면 기회의 땅 중국에서 성공할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인가.

중국을 화두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지인이 책 한 권을 던져줘 흥미롭게 읽었다. 상하이 동화(東華)대학교 교수인 우수근 박사가 쓴 책인데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뒤떨어진 옛날식 사고부터 탈피해야 한다. 싫건 좋건, 있는 그대로, 좀 더 냉철하게 중국을 파악해야 한다. “중국인에게 규칙은 어차피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필요에 따라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속이는 자보다 속는 자가 더 나쁘다고 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개인주의와 강한 배금주의, 불신풍조가 중국인 특유의 비즈니스 ‘끼’와 함께한다.” “부정부패는 계속 만연되고 있다. 땅이 너무 크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겪는 문제도 심각하다.” “직장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직장 개념과 다르다. 공적인 것은 곧 나의 것이므로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된다.” “토지 소유와 건물 소유는 분리되지 않는다.” “투자과열, 융자과열, 돈 공급 과열이라는 3대 과열.” “중국을 움직이는 두 축은 공산당과 공안.” “중산층은 기득권 수호를 위해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유보적.” “중국은 버블의 발생과 붕괴를 반복하면서도 더욱 견고하게 성장해 갈 것이다.” “구동존이(求同存異), 서로 다른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중국과 함께 동북아의 ‘윈-윈(win-win)’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한국은 중국을 지구촌 최대라이벌로 생각하는 미국이나 과거사에 묶인 일본과 동일한 맥락에서 중국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

이 대목까지 읽었을 때 일전에 만난 한 기업체 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것은 국내 1위 화장품 주문생산 전문기업 한국 콜마 윤동한 회장의 소중한 중국 진출 경험담이다. 지금과 같은 ‘K뷰티’ 바람이 일어나기 전인 2007년 북경콜마를 설립했던 그였다. 처음엔 한국과 전혀 딴판인 중국의 제도·문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을 정확히 알아야 원만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윤 회장은 먼저 중국 역사와 지리, 문화적 지식을 차근차근 습득한 뒤 중국 관리 등을 만나며 중국진출에 물꼬를 텄다. 예컨대 베이징에서 상담(商談)이 있다면 단순히 중국 지도 한 장을 일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베이징, 나아가 베이징 내 특정 구역의 역사·지리·문화까지 미리 챙겨두고 대화에 나서는 것이 대단히 유익했다는 것이다.

한국콜마는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북경콜마의 올 2분기 매출액은 9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6.1% 증가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제약업체 부사장 출신인 윤 회장의 R&D(연구·개발)에 대한 남다른 소신과 혜안 덕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연구원이 전체 직원의 30%를 넘고 연매출액의 5% 이상을 꼬박꼬박 R&D에 투자해온 25년 성상이다. 뚜벅뚜벅 걷는 걸음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승부하겠다며 자체 개발한 자외선차단 화장품은 미국 FDA 승인을 얻은 국내 유일 제품이다. 품질을 가장 중시하는 윤 회장의 ‘우보천리(牛步千里)’ 철학을 감안하면 지난해 전체 매출액 8000억원에 이어 머지않아 한국콜마의 1조원 매출 달성이 가시권에 든 것도 우연이 아니다. 중국땅의 러브콜이 늘고 있는 것은 쉽게 말해 중국인 피부에도 ‘딱’ 맞는 화장품을 중국이 아직 콜마처럼 똑같이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1위 업체 인터코스그룹이 중국을 겨냥해 한국에 상륙했다. 내년부터는 한국에서 화장품 생산공장을 가동하기로 해 긴장감을 잔뜩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윤 회장은 담담한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왠지 자신감 가득한 그의 표정은 ‘한국 출신 아시아인’이라고 자처하는 우 박사의 언급과 맥이 통한다. 금과옥조로 삼을 만한 조언이다. “중국인들에 분명히 필요한, 그러나 그들 스스로가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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