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백성을 편하게 하는 위정(爲政)’이 최상의 위정 아닌가. 국민의 바램은 한결같다. 지난해 늑장대처로 국민을 낭패감에 빠트린 세월호사고 같은 것,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메르스, 일촉즉발의 대결국면까지 몰고간 DMZ지뢰폭발사건이 없었으면 국민은 더욱 편안했을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정치권 이전투구도, 어마어마한 가계대출 빚도, 취업난도, 전세대란도, 하우스푸어도, 극심한 빈부격차도, 대기업 독식 관행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모두 우리나라의 일이 아니었으면 하는 게 국민의 희망사항이다. 세월호가, 메르스가, 지뢰사건이 악화일로의 한국 경제를 더욱 위축시켜 가뜩이나 힘들게 휜 자영업자의 허리를 더욱 꾸부러지게 만든다. 바람 잘 날 없는 서민들의 삶이다. 정치가 그간 국민을 편하게 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위정자들이 깨닫고 잘못을 인정하기는 하고 있는 것일까.

공자(孔子)는 춘추전국시대의 전쟁과 혼란에 맞서 덕치(德治)의 재건을 주창한 인물이다. 제자 자로(子路)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를 닦아 남을 편안하게 하고, 나아가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修己以安人 修己以安百姓).” 섭공(葉公)이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을 오게 하는 것이다(近者說 遠者來).”라고 말했다. 장자(莊子) 제12편 ‘천지’엔 이런 말이 있다. “성인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같은 덕을 지니고 마음 편히 살도록 해주는 것을 바랄 뿐입니다(欲同乎德而心居矣).”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세계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골프 휴가를 갔다. 지구촌에 크고 작은 전쟁이 발생하고 미군이 참전한 상황에서 다른 미국 대통령도 골프를 치는 여유 있는 모습을 뉴스로 접한 적이 있다. 우리의 대통령이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 뉴욕 유엔 총회 무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핵·미사일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주석,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 주요국 정상들은 모두 외면했다. 한마디도 거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북한의 숨은 의도를 알고 애써 고개를 돌린 것이었을까. 무시하는 게 최상의 외교전략이라고 판단했을까.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언통치의 핵심이니 주변국이 아무리 외쳐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물론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한국은 다른 나라와 상황이 다르다. 국가 안보가 튼튼하지 않으면 다른 어떤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해본다. 쉬운 말로 백 마디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 우리에게도 로켓․미사일이 있고, 최신식 신(新)병기도 있으니 우리의 안보태세 구축에 만전을 기하면 된다. 왜 우리가 국방문제는 군과 위정자에게 맡기고 편안히 지낼 수 없는가. 왜 일본 등 일부 외국 언론이나 웹사이트가 북핵·미사일 문제로 호들갑을 떨 때 여기에 덩달아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거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를 반복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북한의 열병식 같은 당 창건 기념 국내 행사나 로켓 발사여부에 농락당하듯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가. 왜 한국에 대한 투자에 외국인들이 자꾸 소극적인 모습으로 돌아서는 것을, 주식시장이 새파랗게 질리고 경기가 요동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가. 더 이상 북핵․미사일 문제가 온 국민을 초긴장 속으로 몰아넣을 만한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할 수는 없는가. 우리의 전쟁억지력이 월등하게 압도적이라면, 한미 연합전력이 수치대로 막강하다면 북한의 의도와 달리 국민은 마음 놓고 각자 맡은 일에 전념해도 되지 않겠는가. 세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한국의 국방비, 우수한 과학인재들이 개발하고 관리하는 최첨단병기, 정예화된 장병, 온 국민이 하나가 된 안보의식으로 똘똘 뭉치되 이제는 북핵․미사일 문제를 뛰어넘어 좀 의연해도 되지 않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안보논리가 정치에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고.

오산 미공군기지의 지하벙커를 방문한 적이 있다. 메인 통제센터의 화면에 비친 한반도의 밤하늘은 남북이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남쪽 화면은 하늘길이 대낮같이 환히 밝았다. 반면에 기름조차 부족한 북한은 비행중인 항공기도 없었고 캄캄하기만 했다. 필자의 단견인지 모르나, 이것 하나만 봐도 북한이 단독으로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비무환이라는 격언은 맞다. 그러나 국방은 국방대로 튼튼하게 하고 경제는 경제대로 굴러가야 한다.

‘없는 듯한 정치가 가장 좋은 정치’라는 말이 있다. 맨날 ‘북핵’ ‘북 미사일’이라고 외치기만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는 신중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경제살리기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최우선순위에 두면 안 되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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