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임어당(林語堂) 선생으로 잘 알려진 중국의 대문호 린위탕 선생이 생전에 초대 문교부 장관인 안호상 박사를 만났을 때 “중국이 어려운 한자(漢字)를 만들어 놔 우리 한국까지 문제가 많다”는 농담조의 말을 들었다. 이에 선생은 “그게 무슨 말이오? 한자는 당신네 조상이 만든 문자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라고 반문했다는 일화가 있다. 린위탕 선생이 어떤 근거로 이 같은 언급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자가 은(殷)나라 때의 것이며, 은나라는 한족(漢族)이 아닌 동이족, 즉 우리 한(韓)민족이 세운 나라이다. 이에 따라 한자는 우리 글자라는 얘기라는 것이다. 중국은 원래의 한자 획수를 간략하게 줄인 간자(簡字)를 쓴다. 한국은 원형 그대로 한자를 보존해 사용한다. 문제는 한자가 우리 글자임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한문을 공부한다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일인가. 한자의 우수성을 생각하더라도, 수많은 역사·문화서적을 사장시키며 한자를 내버리는 것이 어리석지 않은 일인가. 더욱이 날로 강성해지고 있는 이웃 중국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라도 한자 교육은 필요한 것 아닐까.

사학계는 무얼 하고 있는가. ‘5000년 전 신비의 왕국’ 홍산문화(紅山文化)를 아는가. 결론부터 말하자.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에 조선(朝鮮)이 있었다. 환(桓)국이 1만년 전 태동했다는 환단고기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 4대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과는 완전히 별도요, 그보다 앞선 때였다. 국가형태에 가까운 기원전 3500년경의 독자적인 문화였다. 가면과 옥 장식 등에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된 것은 곰 토템을 지닌 웅족과 고조선(기원전 2333년 건국) 이전 우리 한민족만의 국가가 자리했던 곳임을 웅변한다.

홍산문화는 지금부터 100년 전에 일본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발견됐다. 내몽고 적봉시 동북쪽에 있는 홍산에서 거대한 제단과 신전, 적석총 등 찬란한 신석기 문화가 발견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역은 요하 서쪽, 북경의 북쪽지방으로 고조선의 중심지역인 요녕성을 포함한다. 중국은 역사적 자존심 때문에 자신들의 문화로 편입시키려고 했다.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연구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고분, 성곽 양식 등에서 보면 황하문화와 많이 다르다. 여신(女神)전, 여신상, 적석총은 한(漢)족 유물이 아니다. 이 부근에서 발원한 부여와 고구려의 역사는 황하문명과는 다른 환(桓)족, 혹은 한(韓)민족의 역사이다. ‘환(桓)’ ‘한(韓)’이라는 글자는 신라의 마립간 거서간의 ‘간’이나 징기스칸의 ‘칸’, 삼한의 한, 기자(箕子)조선의 기(箕) 등과 함께 제정일치시대의 왕을 뜻한다. 고대 한(韓)·한(漢) 접경지역인 중국 산해관 동쪽 고분에서 출토된 와당에는 왕족이라는 표시인 ‘기후(箕侯)’라는 명문(銘文)이 많이 발견됐다. 중국 산동지방의 치우천왕 유적도 홍산문화의 일환이다. 한동안 우리는 눈뜬장님이었다. 대륙은 중국공산당이 지배했고, 암흑기 일제 때 삼국시대 이전 단군문화를 애써 외면한 실증사학이 한반도를 압도한 탓이었다. 분명히 뿌리를 밝혀내야 한다. 고고학적 발굴작업과 역사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한다. 우리 손으로.

필연인가. 우리나라와 중국이 현대사를 다시 쓰고 있다. 기존의 ‘북중러-한미일’ 대립구도에 일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벼랑 끝에서 성사된 8.25남북합의에 이어 내달 미국 방문 및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다. 6.25한국전쟁 당시 압록강을 넘어와 통일의 기회를 앗아간 군대, 바로 그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이다. 외교·군사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사뭇 크다. 현재 조중(朝中)수호조약이 유효함은 물론이다. 북핵문제와 관련,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언급으로 등거리외교식, 양다리걸치기식 외교술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이다. 미국과 일본이 짐짓 뒷짐지고 뒤돌아서 있는 형국이지만 우리 외교는 ‘연미화중(聯美和中)’이다. 쉽게 말해 (과거를 묻지 말고) 주변국들과 다 잘 지내자는 책략이다. 어제의 적이라고 오늘의 친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내수시장이 5000조에 달하는 중국은 한국의 최대무역대상국이다.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무역량이 많다. 이번에 한국의 유라시아 철도 참여, AIIB에서의 주도권 행사 등을 통해 남북경협, 한·중·러 협력은 물론이고 가슴 뛰는 남북통일의 밑그림까지 그려볼 수 있을지 모른다. 최근 중국의 위안화 절하, 미국의 금리인상 조짐 등 헤게모니 다툼으로 우리 증시가 새파랗게 질리는 등 한반도 주변 외교·경제 풍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험하다. 자영업자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경기는 IMF 외환위기 수준이다. ‘한국경제 9월 위기설’도 수면 아래서 꿈틀거린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야흐로 한(韓)민족의 웅지를 펼치며 당당하고도 지혜롭게 헤쳐나아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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