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우리끼리는 모처럼 ‘분노의 만찬’이었다. A, B, C는 필자의 친구들로 최근 롯데의 볼썽사나운 경영권 다툼과 일본기업 논란이 도하 언론에 대서특필된 가운데 저녁모임을 함께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야구광이라는 사실이었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얘기를 나누다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가 화제가 되자 이들은 똑같이 흥분했다. 흥분이 아니라 격분이었다. 그 가운데엔 처음 듣는 얘기도 있었고 이미 아는 내용도 있었다. 또한 사실인 내용도 있었고 사실인지 아닌지 모호한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필자가 공감한 내용이고 차제에 롯데경영진이라면 한 번쯤 귀 기울여야 할 쓴소리들인 것 같아 가감 없이 소개한다.

부산 출신으로 ㈜대선주조의 시원(C1) 소주를 즐긴다는 A는 “롯데는 지독한 짠돌이 기업이라는 평을 듣는다네. 부도난 대선주조를 헐값에 사들여 무려 3000억원의 이익을 낸 뒤 다시 되팔았지만 그 이익금을 부산 경제나 야구 발전을 위해서는 전혀 투자하지 않았지. 항간에는 수익금이 서울의 롯데마트로 올라갔다는 말도 있고 일본 쪽 롯데 오너에게로 흘러들어 갔다는 말도 나돌았고. 원래 대선(大鮮)양조는 일제시대에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대조선(大朝鮮)이란 뜻으로 세운 향토기업이 아닌가. 롯데가 애향심 강하고 야구광들인 부산 시민들을 이용하기만 했지 구단을 위해 재투자한 게 있는가. 야구팀이 띄운 롯데라는 브랜드 이미지 홍보효과가 얼마나 큰가. 그들이 부산 사람들의 정서를 몰라도 너무 모르네….”

서부 경남이 고향으로 부산에서 고교와 대학을 나온 B는 “오랫동안 골수 롯데 팬이었지만 앞으로는 NC다이노스를 응원하기로 했네. 그 이유는 첫째, 롯데가 투자를 너무 안 하고 좋은 선수를 다른 구단에 다 내줘 야구를 너무 못한다는 점이다. 이기고 있던 경기를 역전패한 게 한두 번이 아니지. 혈압이 올라 롯데 경기를 못 보겠어. 마산 창원이 연고인 NC는 우리 고향에서도 가깝고 선수들의 자세가 훌륭하지 않은가. 야구를 아는 김경문 감독이 맡아 경기 운영스타일도 마음이 들고. 둘째, 롯데는 시쳇말로 ‘쪽바리기업’ 아닌가. 그동안 ‘부산 자이언츠’라고 응원하지 않고 ‘롯데’ ‘롯데’라고 응원구호를 외치며 열광한 자신이 창피하기 짝이 없어. 부산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경영진이 이제는 부산시민의 구단으로 내놓았으면 좋겠네. 완전히 탈바꿈하지 않는 한 자이언츠 팬으로는 되돌아오지 않으려네….”

야구 해설이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고 할 정도의 야구팬인 C는 “롯데 자이언츠의 레전드요, 한국 야구의 자랑스러운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고 최동원 선수가 홀대받고 다른 구단 관계자로 지내다 쓸쓸히 임종을 맞이했던 것만 봐도 구단이 팬들의 마음을 너무 외면해왔다는 생각이 들어. 이대호 김주찬 같은 선수만 해도 조금만 대우해줬으면 팀을 떠나지 않았을 텐데도 붙잡지 않았지. 장삿속에만 가득 차 투자는 하지 않으면서 선수 선발과 구단 운영에는 감 놔라 배 놔라 구단이 일일이 간섭했지. 숙소에 CCTV를 설치해 사찰하고 팀원들 간에도 편을 갈라 갈등과 위화감만 조성하니 노쇠화되고 모래알처럼 결속력 없는 팀이 돼 버렸고. 부산은 야구의 수도, 구도(球都)가 아닌가. 부산 팬들은 팀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아도 여전히 야구장을 찾았네. 하지만 구단의 태도는 독선적이었고, 안하무인격이었지. 팬들의 아우성에 아예 귀를 닫은 구단주는 진작 퇴출됐어야 했네. 부산 사람 중엔 유일무이한 취미가 야구라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롯데 자이언츠가 프로야구다운 야구를 하지 못하고 막장야구 ‘꼴데’가 돼 버렸으니 사는 낙(樂)이 있겠는가 말이다….”

롯데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구구절절 맞는 얘기가 아닌가. 때마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국민 앞에 허리를 굽히고 사과했다. 그는 우리 국민이 호텔롯데의 주식을 갖고 주주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가족 간 분쟁으로 뿌리부터 흔들린 ‘유통공룡’의 모습이 과연 이를 통해 조기에 안정을 찾을지는 의문이다. “롯데는 우리나라 기업”이라고 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볼멘소리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탓에 말투에 섞인 짙은 일본어 억양과 발음만으로도 이미 악화된 이미지의 회복이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다만 신 회장은 91년 지바 롯데 마린스 구단주 대행으로 바비 발렌타인 감독을 영입해 팀이 인기구단으로 발돋움하게 했다. 지바 롯데를 일본 퍼시픽리그의 뉴욕 양키스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불태우는 등 스포츠구단 운영에 관심과 애정이 많은 인물로 알려졌다. 그가 한국 구단 문제의 본질도 꿰뚫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구단 운영을 통해 이미지 쇄신과 등 돌린 민심을 수람하기 위한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과감히 구단을 매각해 부산 시민들의 품에 안겨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지바 롯데에 했던 과감한 투자를 부산 구단에 펼쳐 보이면서 진정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지금으로써 가장 좋은 카드 중 하나는 그동안 구단에 뜨거운 애정을 보여온 야구팬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이다. 팀의 성적 부진과 구단의 왜색 논란으로 큰 좌절감에 빠진 ‘부산갈매기들’이다. 그들과 마음을 열고 직접 마주 앉아 한국 롯데 자이언츠의 부활을 위한 방안 등 롯데 해법에 관해 낮은 자세로 경청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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