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중국과 같이 협력해 나가기로 그렇게 이야기가 된 것이고, 그래서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건가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직접 밝힌 내용이다.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 등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다 해결하는 궁극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평화통일”이라고도 강조했다. 필자는 2일자 기고문을 통해 이번 중국 방문에서 가슴 뛰는 남북통일의 밑그림이 그려질지도 모른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짧은 방중(訪中) 기간에 수행한 ‘통일외교’의 내용이 전해지자 눈이 휘둥그레진 이들이 많았다. 지난해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이 나온 이후에도 특별히 주목할 만한 진전상황이나 구체적 액션플랜은 없었다. 남북 간 긴장국면과 대결양상도 여전히 계속됐다. 중국과의 통일논의라는 말 자체가 그만큼 국민들에게 다소 뜻밖의 메시지로 비쳐졌음이 분명하다. 과연 박 대통령이 뜬금없는 소리라도 한 것일까.

신중론이나 속도조절론을 펴는 전문가들이 있다. 우선 통일의 당사자 혹은 주체는 남·북한이다. 원론적인 얘기겠지만 통일논의는 당연히 남북한이 직접 만나 해야 할 일이다. 북한을 제쳐두고 그것도 공개리에 중국과 통일논의를 한다고 밝힌 게 잘한 외교냐는 반문이 있다. 둘째, 6.25 한국전쟁 이후 중국과 가장 냉랭한 분위기인 북한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퇴로 없이 북한을 압박한다면 불안감을 느낀 북한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당장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10월 10일)을 전후로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8일 북한이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이산가족상봉 시기를 내달 하순으로 고집한 것도 다소 유보적인 태도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셋째, 한·중 밀월 가속화에 대한 미국조야의 찜찜해하는 시각이다. 기존의 ‘북중러-한미일’ 대결구도에 일대 변혁을 예고한 것으로 본다면 혐한(嫌韓) 정서가 미국 내에 급격히 확산될 수가 있다.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반사적 효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다 자칫 미끄러지면 둘 다 놓치는 우를 범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넷째, 한중 정상회담 후 중국의 이에 관한 공식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다. 공식문서화 한 약속이 아니라 그냥 박 대통령의 견해에 고개만 끄덕였던 것 아니냐는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한·중 통일논의 의견 접근이라는 팩트는 의미가 남다르다. 이로써 우리 민족 절체절명의 과제인 남북통일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은 모두 남북통일의 길을 열어나가는 담대한 구상으로 과거 정부 때부터 무르익어온 것이다. 통일논의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남북한이다. 그러나 주변국의 이해와 협력 없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중국이 한국 주도의 한반도 평화통일 논의에 긍정적인 태도를 이끌어냈다면 이는 모처럼 지혜로운 전방위 외교의 성과다. 아직 한·미동맹을 한·중관계로 대치할 상황은 전혀 아니지만, 중국이 북한 편중 입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국익에 더 이상 득이 되지 않으며 통일이 중국 이해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당국자나 전문가가 중국 내에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에 주목하고 싶다. 북한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는 체제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 훨씬 안정화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경제발전은 남·북한 모두에게 필요하다. 한국은 지금 2%대의 저조한 경제성장률이 말해주듯 거의 수렁이 들여다보이는 경제위기 상황이다.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로는 과거 IMF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견해도 있다. 경제통일부터 이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왜인가. 지금 우리 경제에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도, 돈이 돌게 하기 위해서도, 코스트 푸쉬 압박을 낮추기 위해서도,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의존도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도 인적·물적 자원의 보고(寶庫)인 북한을 활용하는 남북경협이 필요하지 않은가. 좀 더 솔직해지자. 북한도 경제를 일으켜 세워야 하지만 우리도 녹록치 않은 경제현실이다. 다만 북한핵문제나 미사일 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남북통일이 되면 북한 국방력도 다 통일한국 자산이 되니 너무 예민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지금 거기까지는 나가지 않아도 좋다. 시급한 경협․경제통일 어젠다부터 회담 테이블에 올리자. 지난(至難)한 북핵문제 해결은 중·장기과제로 돌리면 안 되겠는가.

올해로 광복 70주년이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될 텐데 통일외교가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한민족(韓民族)이 앞으로 웅지(雄志)를 펼칠 수 있는 토대를 후손들에게 마련해줘야 한다. 당장 민족동질성 회복과 경제회생을 우선적인 의제로 해 다양한 측면에서 통일논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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