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본질은 그게 아닌데 국회의원 숫자를 둘러싼 논란만 뜨겁다. 여야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세비(歲費)가 아깝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의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킨 대목은 따로 있다. 그것은 국회가 본래의 기능인 국리민복을 위한 입법활동에 충실하지 못했고 제대로 국정을 논하지 못한 부분이다. 당리당략에 따른 패거리주의로 의원들을 거수기로 만들며 볼썽사나운 이전투구에만 몰두해온 것 때문이다. 제왕적 국회, 개점휴업 국회, 거들먹거리는 국회의원, 이권개입 기회 보는 데 혈안이 된 일부 정치인의 자질 등이 문제였다. 지금처럼 ‘입법부 독재’ ‘그들만의 잔치’가 계속 돼서야 쓰겠는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도 계속 전제적 권한을 행사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사시사철 싸움만 하고 일은 하지 않는 악습적 관행을 불식시켜야 한다. 입법 권한의 분담이 필요하고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독주를 막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 현재의 단원제 국회를 선진국형 양원제 국회로 바꿔야 한다.

국회가 달라지게 할 근원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우선 국민이 국회의원을 잘 뽑아야 한다. 국회의원의 자질은 유권자의 선택에 달렸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고유권한인 입법권을 행사하고 행정부를 감시하는 국정의 중심기관이다. 현대사회의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사회가 점차 복잡화 다양화 전문화 특성화 등의 길을 빠르게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추세에 따라 입법수요는 확대되고 있고, 입법도 전문화·기술화·구체화될 필요가 커졌다. 그러다보니 복잡다기한 사회적 변천을 반영한 전문적 입법 사항을 처리할 수 있도록 전문성이 대폭 보강돼야 한다. 전문성을 갖춘 국회의원이 입법부에 많아야 한다.

지금은 국회가 국민을 걱정해줘야 할 상황이다. 국회가 좋은 법을 만들고 잘못된 법을 고쳐 민생과 복리를 선도해야 할 텐데 현실은 국민이 늘 국회·국회의원을 염려해야 하는 얄궂은 운명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고, 이 원칙은 또한 힘의 대결이 아닌 논리의 대결이 돼야 한다. 설득과 타협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므로 합의과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국회는 대화와 토론 대신 몸싸움으로 심심찮게 무법천지를 연출하고 있다. 쪽지 입법, 쪽지 예산, 압력단체 입법으로 국민의사의 수렴이라는 고유한 기능도 왜곡되고 있다. 특정 세력이나 이익집단의 불법 로비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가 극소수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탈선입법으로 둔갑하기 일쑤다. 주지하다시피 밀실입법 날치기법안통과 등이 횡행했다. 사회갈등 해결과 정치통합 과정이라는 입법부의 기능도 여야 간 정쟁으로 표결불참 안건상정저지 등으로 얼룩진 폐습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국회·국회의원이 사회 발전에 따라 양적 질적으로 모두 증대된 입법수요에 적절하고도 신속히 대처하지 못하는 구식 의회라는 서글픈 현실이다. 속된 말로 ‘세월아 네월아’라며 지리한 논쟁 속에 끝없이 표류했던 세월호 특별법 입법 과정이 그 대표적 예가 아닌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하지만 양원제(兩院制)도 하나의 대안임을 대부분 잘 모른다. 잘못된 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켜도 양원제를 통해 이를 저지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가 단원제이기 때문에 제왕적 국회로 변질됐다. 국회가 잘못된 걸 시정할 기회도 없이 몇몇 실력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은 큰 문제이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사법부도 3심제이고 그것도 모자라 헌법재판소까지 두고 있는데 국회도 최소한 2심제는 돼야 한다”며 “현재 300명 가운데 90명을 상원으로, 210명을 하원으로 운영하면 돈이 한 푼도 더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참여한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에서 성안한 헌법개정시안에도 양원제가 제시돼 있다. 시안에 따르면 국회를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권력을 분산했다. 민의원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정치적 기관이며 국무총리 선거권과 국무총리 불신임권, 국무위원 불신임권과 예산법률안에 대한 우선 심의권을 갖는다. 민의원은 국민의 직접·비밀·보통·평등·자유선거로 선출되며 200인 이상의 의원으로 구성하되 그 절반은 비례대표제로 선출하게 했다. 참의원은 지역을 대표로 선출되도록 했으며 100인 이내의 의원으로 구성한다. 참의원은 대법원장, 국무위원 등의 인사동의권을 가지며 지방정부에 관한 법률안에 우선 심의권을 갖는다. 민의원과 참의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양원합동회의에서 결정하며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 민의원의 의결이 우선 적용된다. 동국대 법대 정용상 교수는 “입법 행정 사법부 모두 시대적 흐름과 국민 정서에 맞게 분권화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입법부도 상·하원 간의 권한 분담을 통해 독선에 빠지지 않도록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숫자 논란은 본질을 벗어난 논쟁이다. 입법부를 입법부답게, 국민의 의사가 정확하고도 충분히 반영되는 국회로 제도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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