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여객기 참사 현장인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도시 토레즈 인근의 그라보보 마을에서 취재진이 동체 잔해를 촬영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인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탑승객 시신 훼손
정부군-반군 산발적 교전지속…현장조사 어려워

(토레즈<우크라이나 동부>=연합뉴스) '참혹'.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격추 현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저절로 떠오른 이 단어가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州) 소도시 토레즈 인근의 그라보보 마을 들판엔 '참혹' 외의 다른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19일(현지시간) 이른 아침 택시를 대절해 약 2시간을 달린 끝에 도네츠크주로 들어가는 국경 마을에 도착했다. 곧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검문소를 어렵사리 통과해 정부군과 반군이 장악한 위험한 국경 지역을 번갈아 지나며 1시간 반 이상을 더 달린 뒤에야 참사 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옥수수와 해바라기, 밀 등이 심어진 끝없는 들판의 반경 1㎞ 지역에 산산이 조각난 여객기 동체 잔해와 시신, 여행가방, 옷가지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여객기가 땅에 부딪히기 전 공중에서 폭발했음을 보여준다.

▲ 참사 현장인 그라보보 마을 들판 모습. 산산조각 난 여객기 잔해와 승객들의 가방, 옷가지 등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여객기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거의 다 부서진 채 전선들과 뒤엉켜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 옆엔 떨어져 나온 비행기 날개 잔해가 밀밭에 파묻혀 있다. 겉면에 남아있는 글자만이 말레이시아 항공기임을 짐작게 한다.

동남아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려 쌌을 것으로 보이는 수영복 옷가지와 여행 책자 등도 짐가방에서 튕겨 나와 불탄 잿더미 주변에 흩어져 있다.

곳곳에 방치된 시신은 너무나 참혹해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주검은 찢기거나 조각나 낡은 마네킹처럼 곳곳에 흩어져 있다. 시신 일부에서는 참을 수 없는 냄새가 풍겨 나온다. 사고 후 이틀이 지나도록 수습되지 않아 부패가 시작된 것이다.

사고 현장은 기관총으로 무장한 분리주의 반군 십여 명이 통제하고 있었다. 반군 장악하에 있는 동부 지역 비상사태부 소속 대원들도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 그라보보 마을 들판에서 수습된 가방, 옷가지 같은 탑승객 유류품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하지만 현장 조사를 벌이거나 시신을 수습하는 사람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반군 관계자는 아직 어떤 수습팀도 도착하지 않고 있어 시신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반군은 시신을 수습해 현장에서 멀지 않은 도네츠크 남부 도시 마리우폴로 옮기기로 합의했지만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

격추 현장과 멀지 않은 곳에서 양측은 여전히 교전을 벌이고 있어 사고 원인 조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 그라보보 마을 들판에 떨어진 추락기의 잔해. (사진출처: 연합뉴스)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에도 끊이지 않고 들리는 포성은 이런 불안한 현지 상황을 방증하고 있었다. 현지 주민은 이날도 정부군이 사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사우르-마길라 지역에 포격을 가해 적잖은 사상자가 생겼다고 전했다.

격추 현장으로 가기까진 우크라이나 정부군 검문소와 반군 초소를 지키는 군인들의 살벌한 검문을 거쳐야 했다.

현지 주민들은 여객기 참사가 벌어지고 나서도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은 멈추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리아노보스티 통신도 이날 도네츠크의 반군 지휘관인 이고르 기르킨이 기자들과 만나 "도네츠크 공항이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 강력한 폭발이 있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기르킨은 "정부군이 도네츠크 외곽에서 탱크와 다연장포로 공격해 주민들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양측은 사고 조사를 위해 휴전에 합의했지만, 산발적 교전을 지속해 시신 수습과 진상 규명이 지연될 것이란 우려를 키웠다.

숨진 탑승객 298명 시신 대부분이 여전히 수습되지 않고 있지만 멈추지 않는 총성은 흉악한 격추범이 누군지를 밝혀내고 불의의 사고로 간 고인들의 넋을 달래는 절차마저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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