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양평군의 고구려 역사 경기도 양평 땅은 고구려시대 양근군(楊根郡) 또는 항양군(恒陽郡)이라 했다. 신라 경덕왕 때 빈양(濱陽)이라고 고쳐 기천군(沂川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빈양은 ‘바로 물가에 있는 산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속칭 대미산성 석축에서 고구려 흔적 뚜렷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역사의 강 홍천강홍천강은 길이가 143㎞나 된다. 360여리 강원도의 허리를 가로질러 물길이 수도 가까운 청평까지 닿고 있다. 이 때문에 홍천군의 면적이 전국 지자체 가운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홀 고루’인가 붉은 연꽃 막새도 출토임진강을 고대에는 호로강(瓠瀘江)이라고 불렀다. 또는 표강(瓢江)이라 적고 있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강변에는 작은 고성(古城)이 하나있다. 바로 ‘호로고루’성이다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고구려의 남하 거점 백제성 뺏아 완벽하게 보축포천 청성산 ‘반월성’을 가다프롤로그지난 1979년도 충청북도 중원군 가금면 탑평리(현 충주시) 입석마을에서 고비(古碑)가 발견됐다. 충주지역에서 문화유적을 답사하고
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비봉산 정상에 고대 성곽 유지비봉산 정상 부위에 고대 성곽유적이 남아있다. 양구현 고적조에도 ‘비봉산성 석축주 팔백구십이척 고 육척(飛鳳山城 石築周 八百九十二尺 高 六尺)’이라 나온다. 에는 ‘돌로 쌓은 삼국
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북한강 어구를 지킨 백제의 윤노성강원도 양구는 본래 백제 땅이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중국 吉林省 集安縣 通溝)에 기록된 여러 곳의 백제 정복성 가운데 ‘윤노성(閏奴城)’이 나온다. 바로 윤노성이 양구로 비정되기 때문이다. 윤노성
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백제 초기 관방…400년 왕도 위례성과 함께 운명고모루성에 위치 논란고모루성(古牟婁城)이라 했다. 이 이름은 재미있게도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문과 중원 고구려비 등에 등장한다. 정복군주 광개토대왕이 남진 정책을 통해 한강유역을 건너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런던 대영제국박물관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원대(元代) 청화백자가 한 쌍 있다. ‘데이비드 화병’으로 불리는 이 청화자기는 기증자의 이름을 따 명명한 것이다. 1920년대 중국에 가 있던 영국인 데이비드경이 수집해 박물관에 기증한 유물이다.그런데 이 같은 자기는 현재 중국의 유수한 박물관에도 한 점 없으며 가치는 수천억으로 평가 되고 있다. 원대 자기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데이비드 화병 때문이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로 청주에서 찍은 고려시대 직지심체요절(直指)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영토를 가장 많이 넓힌 영주였다. 만주지역을 대부분 장악했던 대왕은 고개를 돌려 남쪽 정벌에 나선다. 바다건너 왜(倭)가 제후국인 신라를 침입하고 때로는 왕궁을 위협했기 때문이다.당시 백제와는 숙원관계였다. 대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이 근초고왕과의 전투에서 전사했기 때문이다. 대왕은 수륙양군 5만명을 인솔하고 남하해 백제의 여러 성을 공격한다. 고구려의 강력한 기세에 위축된 백제는 큰 저항을 하지 못하고 북한강, 임진강 유역의 수많은 성들을 빼앗기고 말았다. 광개토대왕 비문에 보이는 함
이재준 역사연구가충북 괴산 청천 도원리 절터는 삼국시대 불교유적이다. 신라와 고구려 접경지역의 삼국시대 절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신라 절이었을까, 아니면 고구려 절이었을까. 절터에서 수습되는 와당을 보면 놀랍게도 고구려에 가까웠다.청천 속리산 인근의 절터에서 고구려계의 와당이 찾아지다니…. 그렇다면 고구려의 강역은 어디까지였을까.고구려는 6세기 초반 이 지역에서 신라와 패권을 다퉜다. 소백산을 넘어가려는 고구려를 방어하기 위해 신라는 백제와 동맹을 맺으며 저지한다. 신라는 백제 동성왕에게 왕가의 딸을 시집보내면서까지 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