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런던 대영제국박물관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원대(元代) 청화백자가 한 쌍 있다. ‘데이비드 화병’으로 불리는 이 청화자기는 기증자의 이름을 따 명명한 것이다. 1920년대 중국에 가 있던 영국인 데이비드경이 수집해 박물관에 기증한 유물이다.

그런데 이 같은 자기는 현재 중국의 유수한 박물관에도 한 점 없으며 가치는 수천억으로 평가 되고 있다. 원대 자기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데이비드 화병 때문이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로 청주에서 찍은 고려시대 직지심체요절(直指)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19세기 말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로 조선에 근무했던 콜랭 드 플랑시가 소장하다가 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이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프랑스의 긍지는 대단하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대표적인 작품은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 2m의 비너스 상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이 유물은 1820년 나폴레옹에 의해 그리스의 밀로섬에서 발견됐다. 

나폴레옹은 문화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이집트를 점령한 후 많은 문화재를 군함에 싣고 왔다. 지중해에 대한 정복전쟁도 문화재를 약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이집트 문화재가 루브르에서 빠진다면 박물관은 빈껍데기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루브르가 세계 3대 박물관으로 평가 받는 것은 귀중한 문화재가 소장돼 있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으로 프랑스가 벌어들이는 입장 수입은 천문학적이다. 연간 1천만명이 방문한다. 프랑스 국민들의 박물관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다. ‘직지’의 예를 보듯, 수장가들의 소장품 기증운동이 활발하다. 많은 독지가들이 평생 모은 유물들을 박물관에 기증하고 있다. 국가에 유물을 기증하는 것을 최고 영예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원도 ‘양구근현대사박물관’이 최근 증축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했다. 군청의 작은 박물관이려니 하고 찾아온 이들이 모두 놀란다. 박물관에 소장된 많은 전시물들이 대부분 독지가들의 기증품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역사시대 유물을 위시 고려·조선시대의 자기류, 생활유품과 장식 등 한국 근현대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값진 것들이 모여 있다. 양구 출신인 한 원로 언론인은 평생 모은 거북공예품 천여점을 기증했는가 하면 원로 교수는 수백점이나 되는 조선 덤벙 백자를 기증했다. 이 덤벙 백자는 모두 완전한 것으로 다른 지역의 백자박물관 소장품보다 질, 양면에서 훌륭하다. 

한 독지가는 카메라 역사와 발달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수백점의 카메라를 기증했다. 양구박물관만이 지닌 특별하고 진귀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외국에 살고 있는 한 수장가는 조선 마지막 상궁의 후손이다. 그는 상궁인 할머니가 쓰던 값진 옥(玉)병풍과 교지, 수예품 등을 선뜻 내놓았다. 그리운 고향 양구와 조국을 위한 애국심에 머리가 숙여진다.   

양구읍 파라호 주변에는 선사박물관, 근현대사 박물관, 박수근 미술관, 이해인 문학관, 김형석 안병욱 철학관이 세워져 박물관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흠이라면 역사박물관이 없는 것이다. 양구는 삼국시대 지명이 ‘윤노성(閏奴城)’ 혹은 ‘요은홀차(要隱忽次)’로 광개토대왕 비문에도 기록되며 조사 결과 비봉산성이 고구려 유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양구군은 현재 고구려 역사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 건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박물관은 많이 건립될수록 좋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마인강변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슈테델(Staedel) 미술관을 비롯, 20여개의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매년 이곳에서 세계 박물관 축제가 열려 관광수입도 짭짤하다. 또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놀이 광장이며 학습장으로 인기가 높다. 조국의 역사를 배우고 문화를 읽히며 긍지를 키운다. 전창범 양구군수가 이룩한 근현대사박물관의 기적을 타 시군에서도 벤치마킹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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