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판소리 심청가에서 가장 슬픈 대목은 심봉사가 죽은 아내를 흔들며 통곡하는 부분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심봉사, 태어난 지 1주일 밖에 안 된 어린 딸, 그 설정이 너무 기구하고 처절하다. 극중에서 심봉사는 도저히 딸을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악의 악 조건이면서도 젖먹이를 버리지 않았다. 어린 딸을 강보에 싸안고 더듬더듬 마을을 돌아다니며 동냥젖으로 키운다.

유교 사회가 인정이 없었더라면 딸 심청은 아마 굶어 죽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동네 아낙네들은 딸처럼 청이에게 눈물의 젖을 먹여 키웠다. 심봉사의 딸에 대한 사랑은 다음의 노래로 더욱 간절하다.

- 어허둥둥 내 딸 어허둥둥 내 딸 어허둥둥 내 딸 금자동이냐 옥자동이냐/ 주린 천하에 무상동 은하수 직녀성이/ 네가 되어서 환생 달 가운데 옥토끼 …(중략)… 엄마 아빠 도리도리 어허둥둥 내 딸 서울가 서울가 밤 한줌 주어다 …(중략)… 우르르르 둥둥둥둥 어허둥둥 내 딸(하략)… -

부모는 ‘금자동’ 같은 자식이 죽으면 평생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비운의 여류 시인 허난설헌은 요절했는데 그녀의 죽음엔 여러 설이 있다. 기생방을 전전했던 남편에 대한 증오보다는 두 아이를 잃은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태어나 제대로 젖을 빨지 못하고 죽은 자녀를 보낸 젊은 어머니는 매일 눈물로 살았다.

- 사랑하는 딸을 지난해 보내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슬프고 슬픈 강릉의 땅이여/ 두 무덤 마주보고 나란히 서있구나/ 백양나무 가지에 소소히 바람 불고/ 도깨비 불빛은 숲속에서 반짝이는데/ 지전을 뿌려서 너희 혼을 부르며/ 너희들 무덤에 술잔을 붓노라/ 아! 너희 남매 가엾은 외로운 영혼아 …(중략)… 통곡과 피눈물을 울며 삼키리… - 곡자(哭子)

허난설헌은 27세 되던 삼월, 봄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저 세상으로 갔다. 깨끗이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단장한 그녀는 ‘금년이 삼구에 해당하니 서리 맞은 연꽃이 붉게 되었구나’라고 더 이상 살지 못한다는 말을 남겼다. 삼구는 이십칠로 27세를 지칭하는 것. 이 예언으로 미루어 자살설에 무게를 두는 학자들이 많다. 연이어 사랑하는 딸과 아들을 잃자 죄책감과 더 이상 살 희망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사회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목숨처럼 여겼다. 태교에서부터 자랄 때까지 보육에 대한 열의는 현대 어머니들을 능가했다. 신사임당이나 조선 영조 때 사주당(師朱堂) 이씨(李氏)의 ‘태교’는 유명하다. 뱃속의 아이부터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자세는 물론, 남편과의 잠자리나 음식까지도 절제하는 것을 수칙으로 삼았다.

우암 송시열의 ‘계녀서’에도 시집가는 딸에게 아이를 양육하는 자세가 나온다. 우암은 이 시기 이미 아동에 대한 폭력을 경계했다. ‘아이를 너무 때리지 말아야 한다. 글을 배울 때에도 순서 없이 권하지 말고, 하루 세 번씩 권하여 읽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엽기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모 지역에서 일어난 생후 9개월 된 하늘이의 죽음은 가혹하기만 하다. 하늘이는 세쌍둥이 중에 둘째였으며 작고 여리었다. 울고 보챈다는 이유로 친엄마가 무거운 장난감으로 머리를 때렸다. 하늘이는 ‘외력에 의한 두개골 골절’로 생을 마감했다.

어떻게 자신이 낳은 어린 생명에게 이처럼 가혹할 수 있는가. 모 지역의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도 무려 2000건을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최악의 순간에서도 딸을 버리지 않고 동냥젖으로 ‘금자동 옥자동’ 같은 딸을 키웠던 심봉사의 육아 정신은 어디 갔을까. 자신이 낳은 아이마저 학대하며 버리고 심지어는 살해까지 하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세태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인성회복’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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