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시인 도종환은 ‘접시꽃 당신’이란 시로 수많은 여심들을 흔들어 놓았다. 시골 교사시절 박봉으로 아내에게 옷 한 벌 사주지 못했던 시인은 아내가 죽어서야 삼베옷을 한 벌 입혔다. 이런 눈물겨운 시어(詩語)들이 많은 이들을 울린 것이다. ‘접시꽃 당신’은 이렇게 시작된다.

-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하략) -

시인은 아내를 잃고 한동안 방황하는 삶을 살았다. 세상에 남겨진 어린 두 자녀를 눈물로 안은 삶 속에 아내를 그리는 아픔이 너무 절절했다. ‘당신의 무덤가에’라는 시도 처연한 망부가다.

- (전략)…당신의 무덤가에 노래 한 줄 남기고 오면/ 당신은 풀벌레 울음으로 문간까지 따라오고/ 당신의 무덤 위에 눈물 한 방울 던지고 오면/ 당신은 빗줄기 되어 속살에 젖어오네.(하략) -

도종환 시인은 1954년 청주에서 태어났다. 원주고와 충북대 국어교육과를 나와 중등교사로 발령받았다. 그는 1985년에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를 냈다. 필자는 메가셀러였던 도종환 시인을 잘 몰랐으나 시인의 동창들 가운데 언론사 후배들이 있어 종종 얘길 듣는 편이었다.

많은 여심들의 사랑을 받던 시인이 아내를 잃은 지 6개월 만에 서둘러 재혼했다. 그를 생각했던 많은 여심들이 실망했다. 시인을 애처롭게 보아 온 여자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았던 ‘접시꽃 당신’의 로망은 허물어졌다.

접시꽃 당신을 발표하기 전 시인은 동인지 ‘분단시대’에 참여하고부터 당국의 눈총을 받았다고 한다. 정보과 형사와 장학사는 도종환 시에 붉은 줄을 그어 내포된 의미를 따져 물었다는 것이다. 교육청은 그를 옥천 시골 학교로 좌천시켰다. 서정시를 추구했던 그가 저항 시인으로 말을 바꿔 탄 것은 이런 탄압이 빌미가 된 것이다.

시인이 어느 날 지방 언론사의 사주가 되면서 사회참여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그가 발행인으로 있던 주간지는 충북 언론 사회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그리고 진보 정치그룹에 간여한 공로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 순박하게 살며 고향 대전을 지켰던 서정시인 고(故) 박용래처럼 되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아쉬움이 컸다. 정치는 권력이고 시인의 정서와는 먼 세계다. 맑은 심령의 시인이 몸을 담그기에는 맞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에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개인적으로는 입신양명이며 고향사람들에게 박수 받을 일이라고 하나 장관직이 그리 순탄한 자리가 아니다. 과거 정부의 많은 장관들이 불명예로 물러났으며 박근혜 정부의 두 장관은 현재 구속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도종환 문화장관시대의 새로운 변혁을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의 문화력이 향상되고 시인, 소설가, 예술인들이 대우받는 그런 나라를 만들었으면 한다. 역대 어느 장관이 해내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의 장을 열었으면 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감시와 불이익을 당했던 도종환 시인이 꿈꾸던 문화가치의 세계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가 2010년 3월호 문학사상 에 쓴 ‘지진’이란 시가 지금 새롭게 기억된다.

- (전략)…우리도 전능한 인간은 아니지만/ 더 튼튼한 뼈대를 세워야 한다/ 남아 있는 폐허의 가장자리에 삽질을 해야 한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로 등을 밝히고/ 떨리는 손을 모두어 힘차게 못질을 해야 한다/ 세상은 지진으로 영원히 멈추지 않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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