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칠월 칠석은 하늘의 견우 직녀가 만나는 날이라고 한다. 1년 동안 헤어져 만나지 못했던 두 남녀는 은하수에 까마귀가 놓아준 오작교를 넘어 해후한다고 생각했다. 이날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이들이 흘린 눈물이라고 여겨 왔다.

견우 직녀 설화가 지어진 역사가 결코 짧지 않다. 고대 중국 후한 때 돌로 만든 유물에 견우 직녀를 조각한 그림이 찾아졌으며 고구려 시대 유적인 덕흥리 고분에도 나타나 있으니 말이다. 벽화 속에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 삼족오(三足烏)까지 표현돼 있다.

예부터 칠석날에는 제사를 지냈다. 사당을 청결하게 정비하고 온갖 제철 과일을 차려 놓고 제를 올렸다. 제관들은 반드시 정결한 여자들이 맡았다고 한다.

고려사를 보면 공민왕은 몽골에서 시집을 온 노국공주와 함께 견우와 직녀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왕비의 불행을 미리 예견했던 것인가. 아니면 사후라도 천상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것인지. 매일 고향 원나라를 그리워했던 노국공주는 왕자를 낳다가 그만 목숨을 잃었다.

공주의 비극적인 죽음을 지켜 본 공민왕은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됐다. 죽은 공주를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하려는 사람처럼 자학하고 광적이었다. 왕은 결국 보다 못한 젊은 무사들에 의해 무참하게 시해되고 말았다.

공민왕 시기를 살았던 학자이며 명재상이었던 익재(益齋) 이제현의 ‘칠석시(七夕詩)’가 가슴에 와 닿는다.

- 애처로이 바라볼 뿐 만나기 어렵나니/ 하늘이 오늘 저녁 한 차례 만남을 허락하였다네/ 오작교는 머나먼 은하수 원망스럽고/ 원앙 베개 위 어느덧 새벽이 안타까이 다가온다네/ 인간사 모였다 헤어짐이 없으련마는/ 신선도 역시 슬픔과 기쁨이 있는 것을 (하략)… -

남원 광한루(廣寒樓)는 하늘에 있다는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어서 그 앞에 오작교가 놓여졌다. 그래서 고전 속의 춘향과 이도령의 만남이 그려진 것이다. 춘향은 이도령을 만나기 전 길몽을 꾸었는데 하늘의 오작교를 걷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실지 양반가 이도령을 만나는 행운을 얻는 것이다.

실제로 문호 송강(宋江) 정철은 남원 오작교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다. 송강이 전라감사로 부임했을 때 아름다운 기생 자미(紫薇)를 만나 열애한다. 그녀가 바로 강아(江娥)라는 동기였다. 송강이 사랑하여 이름도 자신의 아호를 따 지어 주었다고 한다. 강아를 위해 지어 주었다는 시를 보면 그녀를 얼마나 아꼈나를 짐작할 수 있다.

- 봄빛 가득한 동산에 핀 자미화는/ 다시 보니 옥비녀보다 아름답구나/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마라/ 거리의 사람들 모두 꽃다운 모습 사랑하리라 -

송강이 임기를 마치고 가자 생이별을 한 그녀는 송강을 잊지 못했다. 강아는 먼 곳에서 송강을 그리다가 그가 죽자 경기도 고양에 있는 묘소를 찾아가 그 자리에서 운명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송강의 후손들이 그 옆에 강아의 시신을 묻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송강의 묘소는 후에 제자들에 의해 명당이라고 하는 진천 문백으로 이장(移葬)되어 강아는 지금 그 옆에 묻히지도 못했다. 죽어서라도 임을 만나고 싶은 눈물어린 강아에게 오작교는 끝내 놓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북한에 가족을 둔 남한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크다. 남한의 생존자는 13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50% 이상이 80세 이상으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 혈육들과 생이별한 사연이 처연하기만 하다. 올해는 이산가족 상봉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민족의 이산을 해결해 줄 견고한 오작교가 만들어져야 한다. 북한은 세계의 비극을 불러일으킬 핵개발과 잇단 도발을 중지하고 민족 생존의 광장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올 칠월 칠석 또 얼마나 많은 이산가족들의 눈물이 강을 이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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