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헐리웃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감동은 라스트 신이다. 단두대로 끌려가는 스코틀랜드의 영웅 윌리엄 월리스(멜 깁슨 분)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는 사형수의 말에 있는 힘을 다해 절규한다. 그것은 바로 ‘프리덤(freedom)’이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의 명언은 유명하지만 자유야말로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1941년 의회에 보낸 연두 교서를 통해 인간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4가지 자유를 열거했다.

그중의 첫째가 어떤 자유였을까. 바로 언론의 자유였다. 말하는 자유, 글 쓰는 자유가 없으면 다른 자유, 즉 신교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토머스 제퍼슨도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고 했지만 언론의 자유야말로 가장 우선해야 할 권리다.

고대 중국에서 선정을 베풀었다는 황제 순(舜)임금은 권좌에 오른 뒤 제일 먼저 언로(言路)를 열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가장 먼저 소통의 대문을 활짝 연 셈이다. 그래서 순임금은 선정의 화신으로 회자된다.

사가들은 가장 강력했던 진(秦)나라가 일찍 망한 원인을 언로(言路) 부재로 평가했다. 궁형(宮刑)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기록하려 한 사마천은 ‘진나라는 법이 완벽했으나 백성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고통과 아픔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오로지 가혹하게만 굴었다’고 기술했다.

조선은 비록 절대 권력의 왕권사회였으나 언로(言路)를 중시했다. 임금이 언로를 봉쇄하거나 독주 기미가 있으면 선비나 관료들이 목숨 걸고 잘못을 성토했다. 선조 때 호남의 거유 기대승의 ‘논사록(論思錄)’은 임금이 자리를 한 경연장에서 토론 대상이 된다. 기대승은 언로를 가장 중요한 치자의 덕목으로 꼽았다.

- …언로(言路)가 열리면 나라가 태평하고 언로가 막히면 위태롭습니다. 임금은 국민의 여론을 대간(臺諫)을 통해 듣게 되므로 언제나 언로를 훤히 열어놓아야 됩니다. 시비(是非)가 명확해야 인심이 복종하고 정령(政令)이 바로잡히는 것입니다. (하략)… -

율곡 이이(李珥)는 언로의 개방은 국가의 흥망에 관계되는 일이며 공론을 통해 국사를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산군 때 홍귀달(洪貴達)은 죽음을 무릅쓰고 ‘언로(言路)를 막아 신하의 충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반드시 망하므로, 언로가 단 하루라도 막혀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선비들은 왜 언로를 열어야 한다고 한 것일까. 최고 통치자의 잘못을 바로잡고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언로가 잘 받아들여졌던 시기에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중국의 인권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가 사망해 유해가 황하에 뿌려졌다. 그는 죽기 전 중국의 언론자유를 갈망했던 사람이다.“나는 우리나라가 자유를 표현할 수 있는 땅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모든 국민의 발언이 모두 동등한 대우를 받고 다른 가치관, 신앙, 정견이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기대합니다. 모든 국민이 어떤 두려움도 없이 정견을 발표하고 절대 박해받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류사보의 희망은 언론 자유였다. 그는 생전에 언론자유가 보장된 한국을 무척 동경했다고 한다. 중국은 수많은 소수민족을 포용한 사회라는 특수성이 있다. 언론 자유를 허용하면 혼란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중국이 보다 성숙하고 세계 속의 민주국가로 부상하려면 언론 자유의 문을 열어야 한다. 동양 최고의 문명국이며 유학의 본 고장다운 위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언론자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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