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약(賜藥)’이란 제도는 봉건시대 극형에 처해지는 범죄자에게 내린 형벌 중 하나였다. 고대 중국에서도 왕족이나 여인들 사대부들에게 이 제도가 적용됐다.

당나라의 운명을 흔들었던 양귀비도 현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38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현종은 사랑하는 양귀비에게 사약을 내리고 싶지 않았지만 성난 민심과 측근 장수들의 겁박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명을 내린 것이다.

조선왕조 시기에는 사약을 받은 여인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성종 비 윤씨와 숙종 대 장희빈이다. 연산군의 연인이었던 기생 출신 장녹수는 반정군에게 체포됐을 때 사약을 받지 못했다. 사약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정한 반정군은 그녀를 저자거리에서 참수했다.

억울하게 죽은 성종 비 윤씨는 사약을 받는 자리에서 눈물어린 유언을 한다. 윤씨의 사약이 내려지는 날 집행은 의금부사가 아니라 도승지가 주재했다.

그녀는 사약을 마시기 전 “내가 죽거든 건원릉(健元陵) 가는 길에 묻어 주시오”라고 했다. 건원릉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능이다. 아들 연산군이 왕이 되면 먼발치에서나마 능을 참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윤씨의 이 유언은 시신과 피 묻은 옷가지를 거두었던 어머니에게 전해져 나중에 연산군의 귀에까지 들어가 궁중을 피로 물들게 했다.

장희빈은 사약을 받는 순간 크게 반항했다. 먹지 않으려고 악을 쓰며 버둥댔다. 궁중 나인과 의녀(醫女)들이 몸부림치는 장희빈을 장악해 강제로 먹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조선시대 4대 사화에 연루돼 죽은 사대부들도 대부분 사약을 받았다. 기묘사화 때는 조광조를 위시 70명이나 되는 젊은 관리, 선비들이 사약으로 목숨을 잃었다.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도 귀양지였던 제주도에서 불려 올라오는 길에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다. 당시 우암은 80세가 넘는 노구였다.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안 되는 노인이었지만 우암도 사약은 싫었던 모양이다. 조선 후기 한 선비의 글을 보면 우암은 제자들에게 효종이 내린 어첩을 가져오라 하고 시간을 끌었다고 한다. 집행하는 여러 나졸들이 강제로 입에다 사약을 부었다는 것이다.

사대부들에게 사약으로 죄를 다스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예기(禮記)에 ‘선비는 죽일 수는 있어도 욕보여서는 안 된다(士可殺 不可辱)’라는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비록 죽을죄를 지었다 해도 염치와 의리를 존중해주자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약은 비소를 가공해서 만든 비상(砒霜)을 주로 사용했다. 조선 후기 이규경(李圭景)의 백과사전격인 ‘오주서종박물고변(五洲書種博物考辨)’에 비상 제조 방법이 나온다. 비소덩어리(砒石)를 흙 가마에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다음 불을 지피면 증기가 위로 올라가 솥 안쪽 벽에 붙게 되며 이것이 비상이 된다는 것이다.

비상은 독성이 강해 제조할 때 연기를 쏘인 초목은 모두 말라죽었다고 한다. 사약을 마시게 되면 내장이 모두 손상을 입어 많은 피를 흘리게 되고 목숨을 잃는 것이다.

그러나 사약이 잘 듣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을사사화 때 사약을 받은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는 사약 한 사발로 죽지 않자 십여 그릇이나 마셨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졸들이 할 수 없이 목을 졸라 죽게 했다는 진문도 전한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까지 된 데에 정치적 책임을 통감한다’며 ‘과거 왕조시대 같으면 망한 정권, 왕조에서 도승지를 했으면 사약을 받지 않겠느냐.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답변한 것이 언론에 보도돼 눈길을 끈다.

80의 나이에 구속돼 병까지 얻은 그에게 동정은 가면서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과거 왕조시대 도승지의 프레임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여 씁쓰레 하다. 측근들이 최순실의 비행을 인지했을 때 ‘성역’이라 외면하지 않았다면, 비서실이 도승지의 프레임이 아닌 보다 민주적인 마인드로 무장했더라면 대통령이 재임 중 탄핵되고 구속되는 참사는 막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서실이 과거 도승지의 봉건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어느 대통령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새 정부도 절감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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