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소서노는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한 여인이다. 그러나 주몽이 죽자 자신이 낳은 두 아들이 화를 당할 것을 우려, 한강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우도록 했다. 소서노의 엑소더스 설화는 고대 모계사회 우먼파워의 실상을 담고 있다.

큰 아들 온조를 한강 유역에 살게 하고 자신은 둘째 아들 비류를 데리고 미추홀(인천)에 정착했다. 그러나 비류는 땅이 습지이고 오래도록 나라를 이끌 수 없자 온조에게 의탁하고 만다. 소서노는 아들 둘과 함께 61세까지 살았는데 백제인의 성모(聖母)로 추앙받았다.

신라는 개국 초기 남해왕 때 시조를 모신 사당을 지었다. 이때 왕의 누이동생인 아로(阿老)에게 제사를 주관토록 했다. 삼국사기 김유신 전에 나오는 장군의 첫사랑 천관녀(天官女)를 제사를 주관한 사제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전통은 1천년 가까운 신라왕실 제례에 계승되지 않았나 싶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선덕여왕은 ‘성조황고(聖祖皇姑)’라는 존호를 받았다고 돼 있다. 이 존호를 받은 것은 선덕여왕이 유일하다. 성조황고란 ‘성스런 조상 여황제’란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언어학자들은 ‘황고’라는 말은 단순한 여황제의 뜻을 넘어 신성함이 내포된 수식어라고 해석한다.

신라는 화랑이 정착되기 전 먼저 여성 전사 집단을 구성했다. 그것이 바로 ‘원화(源花)’였다. 10대 여성들을 아름답게 치장시켜 공부 시키고 무예를 습득토록 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심신을 수련하는 것이 일과였다.

그런데 원화인 남모, 준정 사이에 질투로 인한 원한이 생겼다.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억지로 술을 먹인 다음, 서라벌 북쪽 개천가에 묻어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남모 무리들이 없어진 원화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비밀을 알고 있던 사람이 향가를 지어 거리에서 유행하도록 했다. 원화를 잃은 남모의 무리들이 노래를 듣고 수소문해 결국 시신을 찾아냈다. 남모를 살해한 준정은 사형 당했으며 아쉽게도 원화제도는 폐지됐다.

원(元)나라 황비로서 나라가 망할 때 사직을 지킨 열혈 여인 기황후(奇皇后)는 고려 출신이다. 그녀는 충북 진천 노은에서 출생해 원나라에 바쳐진 공녀로 황실에 들어가 지략으로 황제 혜종(惠宗)의 마음을 사로잡아 황비가 됐다.

기황후는 자기가 낳은 아들을 황태자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그리고 망해가는 원제국을 지탱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지금도 몽골사람들이 기황후를 신모처럼 숭배하며 ‘송골로스(무지개가 뜨는 나라)’ 한국을 동경하고 형제 나라로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고(故) 권기옥 여사는 중국 국민당정부 공군에 들어가 대륙을 놀라게 한 한국인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었다. 중국 공군에서 대령까지 진급했으며 중일전쟁 때는 비행기를 몰고 일본군 진지에 기총사격까지 했다. 권 여사는 임시정부에서도 임정요인들과 더불어 독립운동에 앞장서다 옥고까지 치렀으며 일본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어머니들의 강인한 정신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가 인정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의 교육과 성공을 위해 식당이나 슈퍼마켓 알바를 하는 이들이 있다. 수모를 당하거나 힘들어도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내색하지 않는 것이 한국의 어머니들이다. 수천년 모계 사회 강인한 DNA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연신 ICBM을 동해로 쏴 극동의 안보가 극히 불안한 상태에서 우리 낭자군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21개 대회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승을 싹쓸이 하는 낭보를 전해주고 있다. 여자프로골퍼 이미향이 또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레이디스 스코티시오픈에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도 경탄했지만 이러다가 LPGA가 없어지지 않겠느냐는 기우마저 생긴다. 한국여성들의 강인함과 책임감은 미래를 밝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란 점에서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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