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조선 시대 젊은 남녀들은 미팅자리에서 어떻게 대화를 했을까. 김시습의 ‘만복사 저포기’를 보면 주인공 양생과 처녀가 경어를 쓴 것으로 그려진다.

“아가씨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 밤에 여기(사찰)까지 오셨소?” 양생의 이런 질문에 처녀는 당돌하게 반문한다. “의아한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당신은 다만 좋은 배필을 얻으려는 것뿐이시겠지요?”

두 사람은 첫눈에 좋은 감정이 싹텄다. 그런데 여인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남자보다 더 적극적이다. “당신을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못내 한스럽지만 그래도 오늘 여기에서 이렇게 만났으니 어찌 천행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저를 진정 사랑해주신다면 미약한 몸이오나 백년고락을 누려볼까 합니다.”

판소리 춘향가 속에 나오는 ‘사랑가’는 연인의 합창이다. 이도령이 춘향과 서로 업고 노는 대목이 아름다워 사랑을 받아왔다.

-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허둥둥 내사랑이야/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우리 둘이 사랑타가 생사가 하이 있어 한번 아차 죽어지면/ 너의 혼은 꽃이 되고 나에 넋은 나비 되어…(하략) -

만물에 빗댄 사랑 표현도 절묘하다. ‘굽이굽이 깊은 사랑, 시냇가 수양같이 척 처지고 늘어진 사랑, 화우동산 목단화 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중략)…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춘향은 부군의 입신양명으로 종2품인 정경부인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이렇듯 여성우위의 풍속이 김시습의 소설이나 춘향가에서 엿볼 수 있다.

우리의 고전 문학이나 노래 속에는 연인들이 서로 싸우고 자살하는 내용이 없다. 남도민요 흥타령 가운데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자가 죽음을 암시한 내용은 있다. 긴긴 밤 님을 그리워하며 한탄한 남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한다. ‘곰곤 앉아 생각하니 느는 것은 한숨이요 …내가 먼저 죽어 당신을 데려 갈거나…’ 그러나 연인을 죽이지는 못한다.

서양은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잔인성이 나타난다. 아름다운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이다. 그녀는 아폴론의 꾀에 빠져 사랑하는 연인 오리온을 활로 쏴 죽였다. 파도에 밀려오는 시신이 연인임을 안 아르테미스는 통곡하며 후회했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 폰 합스부르크는 시종이었던 소녀를 권총으로 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녀는 17세였으며 이들의 자살에는 온갖 추측과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왜 황태자는 하천 계급의 소녀와 동반 자살을 한 것일까. 지금까지 두 사람의 자살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헐리웃 많은 영화들이 이들의 죽음을 영화화 하고 소설가들은 죽음을 미화했다. 한때는 세계의 젊은 남녀들 사이에는 자살이 유행처럼 성행했다.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 한국인의 애정전선도 복잡해졌다. 일제강점기 한 자료를 보면 남편이나 내연남을 살해한 사건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린 신부들이 자신의 부정이 탄로 날까 두려워 상대를 독살했다는 것이다. 인기가수 윤심덕은 일본 유학길에 유부남 김우진과 사랑을 이룰 수 없게 되자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당시 일본과 조선에서는 이 같은 정사사건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 데이트폭력이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변심한 연인들이 상대방을 무차별 폭행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TV에 생생히 방영된 한 청년의 무차별 폭행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경찰청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5년간 데이트폭력으로 숨진 사람이 233명이나 된다고 한다.

요즈음 경어를 쓰는 연인들이 없고 대화의 50%가 욕인 경우도 있다. 왜 이렇게 한국사회 젊은 남녀 사이의 가치관이 변모한 것일까. 상대를 존중해줘야 자신도 존중 받는다. 젊은 세대들의 언어순화가 시급하며 ‘사랑가’를 합창할 수 있는 아름다운 전통이 회복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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