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朴 선생! 아주 오래 전 불렀던 노래가 기억나네요. 1978년 세샘트리오의 데뷔곡이기도 한 이 노래는 멤버였던 가수 권성희가 솔로로 전향한 후에도 자주 불렀고, 밝은 음색과 분위기가 담뿍 묻어나서인지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지요. 그때에 인기가요였던 ‘나성에 가면’을 따라 부르면서 막연히 로스앤젤레스(LA)를 동경하게 됐고,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나 된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애틋한 사연을 알고 싶어 하는 착각에 빠져들게 만들었지요.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하늘이 푸른지 마음이 밝은지…’ 이 노래를 부를 때면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가본 적이 없어 그곳 하늘이 푸른지, 마음이 밝은지를 헤아릴 수 없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닿아 로스앤젤레스로 와서 공항을 빠져 나와 쳐다보는 하늘은 정말 푸르렀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레었지요. 그것은 노래의 여운이 마음 속 깊이에 남아있는데다가 사랑만큼이나 가슴 속을 후벼 파고드는 혈육의 정, 아들을 8년 만에 만난 기쁨에서이기도 하지요.

나성에 도착해 하이웨이를 따라 아들이 살고 있는 샌디에이고로 오면서 12월의 여기 날씨가 한국의 초가을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지중해성 기후 온화한 날씨가 이어져 한낮에는 섭씨 20도를 상회하고, 밤이 돼야 늦가을의 기분이 든답니다. 그래서 현지에 사는 한인이나 이곳에 살다가 한국에 나온 사람들이 샌디에이고는 정말 살기 좋다는 말을 예전에 듣기도 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온화한 날씨에 공기도 맑아 깨끗한 도시라는 게 제가 느낀 첫 인상이었지요.

도착한 첫날에, 시내 구경시켜주겠다는 애를 따라 먼저 시포트빌리지에 갔지요. 해변에 자리 한 작은 공원
곳곳에는 갤러리와 예쁜 가게,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고, 바닷가 산책길에서 시내 방향을 바라보니 크고 작은 빌딩과 숲들이 해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동네였지요. 작은 숲과 배가 전시돼 있는 해변 길을 걸어 들어가니 멋진 조각상 아래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바로 ‘수병과 간호사의 키스’ 동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기쁨을 상징한 미국에서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조각상이었지요.

이 동상의 배경이 된 사진은 라이프 잡지사 사진작가 앨프레드 아이젠스타의 작품이라고 하지요. 그가 1945년 8월 14일, 뉴욕 스퀘어광장을 걷던 중 마침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종전(終戰)의 기쁨에 쌓여 모르는 청춘남녀가 시내 한복판에서 격렬하게 입맞춤하는 모습을 찍었던 것인데, 이 사진이 라이프 잡지에 게재돼 유명세를 탔다고 하지요.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거대한 키스 동상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내 최대 해군기지가 있었던 샌디에이고의 워터 프론트 파크에 세워져 이 도시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또, 여기서는 코로나도 섬을 빠뜨릴 수 없겠네요. 시내와 다리로 연결된 이 섬에는 ‘데 코로나도 호텔’ 등 이름난 호텔과 별장이 많이 있지요. 호텔 앞은 바로 태평양 바다로 해변 백사장이 멋진데, 모래들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밟기조차 조심스러웠지요. 끝없이 펼쳐지는 태평양 풍경도 아름답지만 해변 가까이로 희고 푸른 갈기를 세우며 뭍을 향해 밀려드는 파도는 장관이었지요. 구경나온 사람들이 해변을 거닐면서 찍어놓은 발자국이나 써놓은 글씨가 금방 바닷물이 다가와 지워버리고, 다시 발자국을 찍는 관광객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바닷가왕국의 전설, 애드가 앨런포의 ‘애너벨리’ 시를 떠오르게 하는 그런 순간이기도 하지요.

그 밖에도 라 호야 비치, 발보아 파크 등 관광명소를 구경했는데, 아들놈이 그랜드캐니언 코스를 짜놓았기에 라스베이거스로 갔지요. 다음날 승용차로 5시간이 걸려 그곳으로 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그랜드캐니언을 만났는데, 그 순간 숨이 딱 막혔답니다. 광활한 공간에서 파스텔로 채색된 듯한 자연의 신비가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었지요. 영국 BBC방송이 뽑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생전 가보고 싶은 곳 1위에 등극될 만큼 풍광은 매우 빼어났지요. 둘러보고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즈음, 라스베이거스로 돌아오면서 네바다 사막의 석양이 빚어내는 하늘섬, 마치 바다 한 가운데 섬이 떠 있는 듯한 풍경을 만난 것도 내게는 행운이기도 하지요.

朴형! 홀로여행이 자아 성숙의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과 동행하는 여정(旅程)은 더 한층 사랑의 심지를 돋워주지요. 여행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이심전심의 감흥은 설렘이 되어 가슴 깊숙이서 맴돌지요. 그것이 여행의 마력이기도 한데, 이제 나성에 도착해 사랑의 이야기가 담뿍 담긴 편지의 끝 부분을 채우는 일정만 남았네요. 이번 여정에서 집사람은 총각아들의 근황과 챙겨주는 여친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걱정을 조금은 덜 테고, 그 기쁨에 더해 나는 이국의 아름다운 순간들도 만났으니 정말 고마울 따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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