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대인 3000원, 소인 2000원.”

눈을 의심케 하는 동네목욕탕 입장료였다. 입원 환자에게 갖다 드릴 음식을 시장에서 주문해 놓고 잠시 찾은 부산 광안리 해변 인근 ‘착한 목욕탕’의 가격표였다. 한때 ‘곧 망할 집’이라는 특이한 이름과 ‘착한 가격’을 내세워 어느 식당이 대박이 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목욕탕은 그런 ‘대박’을 목표로 바겐세일을 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짐작컨대 늘 얼굴 접하고 지내는 동네 이웃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골장사이다 보니 그만 가격 인상을 못하고 만 것이 아니었을까. 한증탕 등 있을 것은 다 갖춰져 있었다. 목욕탕은 만원이었고, 고객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평균 연령이 70세는 넘어 보이는 좁은 목욕탕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어르신들은 온탕 냉탕에 몸을 담그고 여유롭게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 목욕탕은 노후건강유지 등 노인 복지를 위해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재활과 돌봄이 필요한 데도 적절한 케어를 못 받고 있는 장애 노인 숫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한국에는 아직 전문재활치료기관조차 없는 실정이다. 한국의 노인복지는 세계 96개국 중 60위 수준이다. 지난해 50위에서 10계단 더 떨어졌다.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13.1%로 10년 전보다 약 200만명 증가한 662만 4000명이다. 2060년에는 40%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고령(65세 이상) 노인의 1인 가구 수는 137만 9066세대로 그 비율은 7.4%나 된다.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치매 유병률이 지난해 9.58%(61만 명)인데 앞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1년의 경우 65세 이상 개인지출 의료비는 90만 8670원이었다. 2011년 연평균 개인지출 의료비는 65세 미만 약 39만원, 65세 이상 약 91만원으로 65세 이상자가 65세 미만자보다 2.3배 더 많이 지출한다.

찬바람은 불어오는데 한국의 노인들, 특히 몸이 불편한 환자들은 어디서 겨울을 나야 할까. 음식이며 잠자리는 물론이고, 노인들에겐 수술 등 처치뿐만 아니라 그 후 전문재활치료도 꼭 필요한데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의료보험 외에 별도로 모아둔 돈이 없으면 찬밥신세가 돼야 하는데 무슨 노인복지며 의료복지인가. 첫 단추를 잘못 낀 한국의 노인복지는 환자도, 병원도, 공단도 다 불만인데 이처럼 마구 헝클어진 상태로 언제까지 유지돼야 하는 것인가. 노인 전문재활치료 등에 관한 입법은 국회에서 왜 낮잠을 자고 있는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뜯어고치고 어디서부터 메스를 대야 하는 걸까.

“전문적인 재활치료가 필요한 노인 환자들을 적정가격으로 치료하고 효과적으로 돌볼 수 있는 대중의료시스템을 서둘러 만들어야 합니다.”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

의사 출신으로 국회 보건복지위 위원을 지낸 신 의원에게 질의해 보았다. 그는 “지금 각 이해집단의 갈등과 충돌로 인해 정부가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문제가 꼬여 버린 상태”라며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 대한 실질적이고 피부에 체감할 수 있는 의료복지와 사회적응을 위해 메디컬케어 시스템의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음 대선 때 후보정책에도 이 부분이 꼭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인 그는 말끝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로 엉망인 상태라는 뜻이었다. 필자의 어머니만 해도 척추수술 후 병실료 비싼 1인실에서 6개월간 입원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아직 혼자 서서 걷지 못한다. 전신마취 후유증으로 정신도 맑지 못하다.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린아이처럼 걸음마 연습에 열심인 85세 어머니. 의연하고 담담한 얼굴 표정 속에 아쉬움과 섭섭함의 눈빛을 애써 감추고 있다. 어서 가보라고 손짓하며 재촉하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부산역을 찾는다. 이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역광장에서 열차고객들을 상대로 구걸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는 노숙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대부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몸이다. 고령자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건강한 노인으로 생활했으면 한다. 동네목욕탕에서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하고 있는 노인들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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