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올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베네수엘라에서 국가 운명을 둘러싼 쟁점이 급부상하고 있다. 공정하며 신뢰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며 미국과 ‘바베이도스 협정’까지 맺은 베네수엘라에서 돌연 야권 대선 후보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대법원으로부터 출마 자격을 박탈당한 것이다. 마차도는 2013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마두로 대통령의 3연임을 저지할 대항마로 꼽힌다. 미국은 오는 4월 협정이 종료되면 베네수엘라에 대한 석유와 가스 거래 허가를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의 발표가 현실화하면 석유 수출 비중이 높은 베네수엘라에는 극심한 경제적 타격이 우려된다.

남미 멕시코 출신 사울 세르나 박사는 미국이 베네수엘라 선거에 개입한 것인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를 분석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단순히 한 나라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임을 강조했다.

세르나 박사는 멕시코 푸에블라 소재 아메리카스대학교에서 미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 강원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다음은 세르나 박사의 기고.

 

올 12월 대선 앞둔 베네수엘라

공정 선거 약속하며 美와 협정

대항마 출마 자격 박탈 논란에

미 ‘협정 연장 없다’ 공식 발표

석유수출 등 경제적 타격 우려

사울 세르나 박사.
사울 세르나 박사.

올해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나타내는 크고 복잡한 퍼즐을 상상해 보자. 지금은 미국의 새로운 제재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는 중요한 국면이다. 이 퍼즐의 모든 조각이 전체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국제적 지지를 촉구하는 저명한 인물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Maria Corina Machado)가 자격을 박탈당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통령 선거가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선거의 민주주의와 공정성의 원칙에도 영향을 미친다.

◆복잡한 파노라마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 재선을 둘러싼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진 직후인 2019년 이후 베네수엘라산 석유·가스 수출을 금지해 왔다. 다음 대통령 선거는 올해 12월에 치러져 이듬해인 2025년 1월 10일부터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다.

지난해 10월 베네수엘라 여야는 바베이도스(Barbados)에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신뢰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고 협정(바베이도스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국은 지난해 10월 18일부터 베네수엘라산 석유 및 가스에 대해 6개월 거래 승인 라이선스를 발급, 일부 제재를 완화했다. 제재 완화 이후 베네수엘라의 대미 원유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글로벌 물류조사업체 보텍사(Vortexa)의 데이터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하루평균 원유 수출량은 지난해 1월 기준 4만 3000배럴에서 올해 1월 기준 24만 배럴까지 6배 가량 늘었었다.

베네수엘라 야당 대선후보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출처: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야당 대선후보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출처: 연합뉴스)

◆대법원의 야당 후보 자격 박탈 판결

그런데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지난 1월 26일 야권 대선 후보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의 과거 비위를 문제 삼아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마차도는 2013년부터 집권 중인 마두로 대통령의 3연임을 저지할 대항마로 꼽히는 정치인이다. 베네수엘라 야권은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출마 견제 조치가 바베이도스 협정을 위반한다며 반발했다.

미 국무부도 베네수엘라 대법원의 야당 후보에 대한 판결이 올해 대선을 경쟁에 입각해 치르겠다는 마두로 정부의 약속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지난 1월 30일(미국 현지시간) 제재 재검토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공정한 대선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니, 오는 4월 18일 종료하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석유와 가스 거래 허가를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미 국무부는 2월 13일 만료하는 베네수엘라 국영 금광 회사 ‘미네르벤’에 대한 거래 금지 제재 방침도 재확인했다.

미국의 조치는 베네수엘라 경제에 적잖은 걱정거리로 부상했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풍부한 광산과 유전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지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외국기업의 자원 활용을 허용한 라이선스 43과 44가 위험에 처해 잠재적으로 국가수익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란시스코 모날디 “미국, 선거 개입”

라틴아메리카 에너지와 식량 전문가로 유명한 베이커연구소 소속 프란시스코 모날디(Francisco Monaldi)는 이번 베네수엘라 혼란에 대해 3가지 핵심 사항을 논의, 이해를 돕는다.

모날디는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특정 라이센스를 취소하는 것이 어떤 정치적 결과를 부를지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4월 만기가 도래하는 면허를 갱신하지 않기로 한 미국의 결정은 베네수엘라 선거, 특히 마차도의 선거 참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다. 곧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정치에 명백히 개입하려는 입장을 잘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모날디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석유와 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이 부여한 라이센스 44는 석유 관련 면허다. 취소될 경우 국가 재정수입이 급감, 모든 베네수엘라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석유회사뿐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전체 경제와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상당한 일자리 손실이 발생, 국민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전망이다.

베네수엘라 모나가스 지역 정유 시설의 화염. (출처: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모나가스 지역 정유 시설의 화염. (출처: 연합뉴스)

◆벼랑 끝에 선 베네수엘라

올해 베네수엘라는 중대한 변화의 벼랑에 서게 됐다. 베네수엘라의 운명은 국제 정치, 경제적 취약성, 민주적 완전성 추구 등의 그물망에 얽혀 있다. 국가주권과 지구촌 패권의 개입 사이의 복잡한 춤을 보여주는 증거다. 여기서 한 국가의 행동은 국제무대에 영향을 미치고 향후 참여의 선례가 된다.

제재를 외교정책의 도구로 휘두르는 미국의 입장은 개입에 대한 담론을 더욱 광범위하게 구현한다. 마두로 정권의 권위주의에 반대한다는 게 개입주의의 명분이다. 마치 독재로 그늘이 져 있는 지역에서 민주적 가치와 인권을 옹호하려는 노력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마차도의 대선후보 탈락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는 권위주의 통치에 맞서 싸우는 국가의 반군이 직면한 투쟁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일부에서는 미국의 개입을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외부로부터의 변화를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로 본다.

반면에 이러한 개입주의적 접근 방식은 베네수엘라의 주권 침해이자 헤게모니 권력의 과시라는 회의론과 비판에 부딪힌다. 비평가들은 그러한 조치가 경제적 어려움을 악화시키고 취약한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제재의 파급 효과는 지배 엘리트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추구하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더욱 힘든 싸움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구촌 담론 속에서 불확실한 바다 탐색하기

마두로 대통령이 이 복잡한 내러티브에서 단연 중심 인물이다. 그는 지지자들에 대한 외부 간섭을 막는 보루이자 외세에 맞서 국가 주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다.

하지만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마두로 정권은 민주주의 제도의 침식과 경제적 관리 실패, 반대 목소리를 억압하는 독재자로 읽힌다. 이런 관점의 양극성은 미래와 거버넌스, 세계질서에서의 위치에 대한 서로 다른 비전 사이에서 갈등을 낳는다. 그 교차로에 있는 국가의 생생한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구촌이 바베이도스 협정을 둘러싼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단순히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가 됐다.

문제는 바야흐로 ▲권력의 균형 ▲국제 개입의 정당성 ▲민주적 자유에 대한 보편적 추구에 관한 이야기다. 이 중요한 시기에 내려진 결정과 행동은 베네수엘라의 미래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국제 관계와 주권, 민주주의, 인권에 대한 글로벌 담론의 선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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