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의 최대 쟁점 중 하나는 이민 문제다. 미국으로 온 남부 국경 불법 이민자가 늘면서 공화당은 지금의 상태를 ‘현 정부가 만든 참사’라고 문제를 쟁점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며 이민자 혐오성 발언을 쏟아내며 전과 같이 이 문제에 대해 강력 대응할 것을 밝혔다.

남미 멕시코 출신 사울 세르나 박사는 이민자 문제가 정치적 요인과 인도주의적 위기 등 다양한 원인이 얽힌 복잡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대책 역시 이동 흐름을 단지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규제 메커니즘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르나 박사는 멕시코 푸에블라 소재 아메리카스대학교에서 미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 강원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다음은 세르나 박사의 기고.

 

트럼프 부상, 현 정부 불만 반영

멕시코→미국 가는 이민자 중

중남미·쿠바·아이티 출신 많아

사안 복잡한 만큼 양국 대화 必

사울 세르나 박사.
사울 세르나 박사.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이민 문제는 정치적 요인과 인도주의적 위기에 따라 가중된 복잡성을 보여주는 가장 적합한 주제다. 특히 미국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2024년에는 전면에 부각될 수밖에 없는 초강력 이슈다.

“이민을 반대한다”는 정치적 수사(rhetoric)를 앞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다시 대선 정국에서 전면에 등장한 것은 역설적으로 멕시코의 이민 관련 위기관리가 부적절했음을 더욱 명백하게 해준다.

멕시코에는 “미국이 감기에 걸리면 멕시코는 폐렴에 걸린다”는 말이 있다. 이는 미국과의 긴밀한 경제·지리적 관계로 인해 미국의 경제·정치적 사건이 멕시코에 증폭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국가 간 상호의존성 때문에, 대립과 반목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멕시코에 영향을 미쳐 양국 간 긴장을 악화시키고 이민 정책에 대한 대화 자체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민과 관련해 멕시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일들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을까.

무엇보다 2021년 대통령 임기를 마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대권주자로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등장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약속이 이행되지 않아 환멸을 느끼는 미국 노동계급의 불만을 상징한다.

또 이런 불만은 미국인들이 특정 부문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반이민’ 깃발을 사용하는 반동적(reactionary) 정치 지도자를 위한 공간을 조성한다.

최근 미국행 불법 이민자가 중남미뿐만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서도 몰려들면서 미국으로 이민 유입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급증했다. 사진은 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이글 패스에서 멕시코에서부터 온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리오그란데강을 건너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최근 미국행 불법 이민자가 중남미뿐만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서도 몰려들면서 미국으로 이민 유입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급증했다. 사진은 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이글 패스에서 멕시코에서부터 온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리오그란데강을 건너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최근 미국의 불확실성과 양극화 분위기는 이민자들을 비방하는 분위기로 이어지고, 미국-멕시코 양국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공동 이민 제안 협상 여지를 축소시킨다.

첫째, 멕시코에는 중남미뿐만 아니라 쿠바, 아이티와 같은 국가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려는 난민의 유입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둘째, 멕시코는 ‘교량’ 국가라는 역동성에 갇혀 미국의 압력을 받고 있다. 멕시코 이외의 나라들로부터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몰려가는 이민자 물결을 관리할 자원이 제한돼 있다. 이 때문에 이주 전략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의 가혹한 이민정책은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외국 이민자들 중 다수를 강제로 멕시코에 머물게 만들었다. 임시 체류가 영구 체류로 바뀌고, 멕시코는 이들 때문에 심각한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멕시코 정부는 이민자들을 일시적으로 수용하고 최소한의 품위 있는 체류도 제공한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멕시코 정부가 무능하기 때문에 취해지는 조치다.

마지막으로 ▲국경의 군사화 ▲이민자에 대한 살상무기 사용 ▲출생시민권 폐지 등 미국 공화당의 극단적인 이민 관련 정책 제안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점이다.

[리노=AP/뉴시스]미 연방대법원이 22일(현지시간) 대선 결과 조작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면책특권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이른바 '패스트 트랙(신속 변론)'으로 진행해달라는 특별검사측 요구를 거부했다.  사진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 네바다주 리노에서 선거 연설을 하고 있다. 2023.12.23
[리노=AP/뉴시스]미 연방대법원이 22일(현지시간) 대선 결과 조작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면책특권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이른바 '패스트 트랙(신속 변론)'으로 진행해달라는 특별검사측 요구를 거부했다. 사진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 네바다주 리노에서 선거 연설을 하고 있다. 2023.12.23

◆“이민 문제, 멕시코-美 함께 조정해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 귀환하면 반이민 조치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불법이든 합법이든 미국으로 이민을 감행하려는 중남미 이민자들은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최대한 빨리 국경을 넘기 위한 대안 마련에 분주하다.

이민 문제는 멕시코와 미국, 양국 간 규제와 조정의 문제다.

특히 2023년 12월에 보고된 기록적인 이민자 횡단 건수를 고려할 때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이민 위기 처리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압력과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공화당은 이런 호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국경 상황을 핵심 쟁점으로 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들은 불법 이민자 증가에 대한 책임을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에 전적으로 돌리고 있다.

이 와중에 멕시코는 미국으로 건너기 위해 멕시코를 경유하는 해외 이민자들의 유입에 견줘 훨씬 적은 수의 미국행 자국민 이민자들을 계속 통제하지 않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단순한 정치적 수사와 피상적인 인도적 지원을 넘어 엄중한 양자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동 흐름을 단지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규제 메커니즘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의롭고 공평한 해결책을 위한 길을 열 것이냐, 아니면 착취적 시스템을 영속시킬 것이냐의 정책적 기로에 선 양국 간 상호작용의 문제다.

인류가 ▲비판적 분석 ▲인간 존엄성 ▲실질적 협력에 초점을 맞춘 공동전략의 이행이라는 합리적 해법으로 이민을 둘러싼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까. 인류는 또 하나의 지구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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