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지난 대만의 선거에서 중국이 비난하던 친미 독립 성향의 라이칭더가 승리했다. 통상 큰 선거를 치렀을 때 주변 지역에서는 새 정권과의 우호를 위해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만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반응은 달랐다.

대체로 냉담한 반응에다가 대부분은 형식적인 축하 인사에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는 표현을 꼭 언급했다. 대부분 국가들이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속에 있어 자칫하단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은 분석했다. 다음은 그의 기고문.

 

‘대만 독립지지’ 오해 피하려

동남아 국가들 형식적 축하

필리핀 등 ‘하나의 중국’ 강조

선거 후 나우루는 대만과 단교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

지난 13일 총통과 입법위원(국회의원)을 뽑는 대만 총선거에서 총통은 친미 독립 성향의 민진당 라이칭더 전 총통이 뽑혔다. 하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는 친중 국민당이 1당을 차지했다.

이번 대만 총통 선거는 각각 친미 성향의 민진당과 친중 성향의 국민당 간 대결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불릴 만했다.

미중 간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만 정부가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이냐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들에게는 매우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는 국제관계는 물론 각국의 경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주변 매체들도 선거 분석·결과 보도 안 해

그러나 동남아시아 지역 주요 언론 매체들의 대만선거 결과 보도는 대체로 매우 냉담했다.

통상 이웃 나라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 당선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게 관행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그래왔다. 하지만 이번엔 좀 덤덤한 반응으로, 이 같은 대응은 이례적이다. 자칫 축하 메시지를 잘못 보낼 경우 ‘대만 지지’ 의사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발 경제보복을 당할 수도 있어 소위 ‘몸 사리기’에 나선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아세안 10개국 주요 뉴스매체들의 보도를 볼 때 싱가포르와 필리핀의 당선 축하 인사가 눈에 띈다.

싱가포르 국영방송 CNA는 “외무부가 라이 당선인과 민진당에 승리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그런데 “양국 간 오래 이어진 우정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바탕으로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란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싱가포르는 중국 화교 비율이 전체 인구의 70% 이상 매우 높은 나라다. 중국과 역사, 경제, 문화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다만 싱가포르는 대만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다. 중국과 분리된 1949년 이후 무려 66년 만인 2015년, 중국과 대만의 양안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싱가포르가 오랜 기간 양안과 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온 덕분이다.

필리핀 외무성도 지난 16일(현지시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라이 당선인에게 축하를 보낸다고 밝히면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재확인했다.

필리핀 외무성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재확인한다”고 표명했다. 외무성은 특히 이날 마르코스 대통령의 메시지는 대만이 다수의 필리핀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의와 함께 성공적인 민주적 선거에 대한 축하 의미라고 설명했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첨예한 갈등을 빚는 필리핀 역시도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양안 관계에 대한 외국의 입장이 중국에게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심지어 테레시타 다자 필리핀 외무부 대변인은 과거 1975년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와 현 필리핀 대통령의 부친인 마르코스 대통령이 중국을 유일한 합법 정보로 인정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필리핀은 하나의 중국 정책에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아세안국가들도 중국과 이해관계가 얽힌 터라, 중국을 의식해 ‘하나의 중국’ 원칙 지지의사를 밝히는 데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인도네시아도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방점을 찍었다. 랄루 무하마드 이크발 인도네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번 대만총선 결과에도 인도네시아는 오로지 일관되게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는 역사적으로 악연이자 앙숙인 베트남마저도 중국 정부의 눈치를 살핀 듯 팜투항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이 낸 성명을 통해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대만과는 국가 차원이 아닌 경제와 무역, 투자, 과학기술, 문화 분야의 인적 교류를 유지하고 있다”며 유독 ‘하나의 중국’을 강조했다.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에 적극 참여 중인 대표적인 ‘아세안 친중 국가’인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선거 결과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부는 물론, 주요 매체들조차 이를 단신으로 전할 뿐, 선거 결과가 향후 지역 및 세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기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만 대선에서 친미 독립 성향의 라이칭더(사진)가 친중 국민당 후보를 누르고 승리한 가운데 통상 적극적으로 축하 인사를 보내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반응이 사뭇 달라졌다. 자칫하다간 중국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보인다. (출처: 구글지도, 게티이미지뱅크)
대만 대선에서 친미 독립 성향의 라이칭더(사진)가 친중 국민당 후보를 누르고 승리한 가운데 통상 적극적으로 축하 인사를 보내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반응이 사뭇 달라졌다. 자칫하다간 중국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보인다. (출처: 구글지도, 게티이미지뱅크)

◆아세안 투자에 비중 높이는 중국

이는 중국이 아세안에서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중국은 아세안 자본시장과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투자에서 빠른 속도로 비중을 높여왔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아세안의 핵심 무역 파트너이기도 하다. 중국에게 잘못 보이면 경제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기에 아세안 국가들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대만 총선 결과에 축하 메시지를 보낸 영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외교부는 14일 “대만의 선거 결과를 잘 지켜보았으며, 앞으로도 대만과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 협력을 계속 증진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의 대만 관련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하나의 중국’을 인정해온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번 대만총선 여파로 자칫 중국과 대만 사이 해협에서 무력 충돌 같은 긴장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아직 우려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만의 축하 파티에 물을 끼얹은 것은 남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나우루였다. 나우루는 대만선거 이틀 후 대만과 국교단절을 발표했다. 나우루 정부는 대만과의 단교 발표 성명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고 대만을 중국 영토의 일부분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는 과테말라와 파라과이, 에스와티니 등 12개국만 남게 되었다.

대만 정부는 나우루의 이번 단교 선언이 총통 선거 직후라는 점에 지목했다. 민주 선거에 대한 보복인 동시에 국제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라며 중국을 강력히 비판했다. 남은 12개국도 언제 단교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친미 독립주의 성향의 민진당이 승리를 거둔 선거 여파가 어떤 식으로 자국의 사회, 경제, 정치에 영향을 미칠지 몸을 사리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향후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대만을 어떻게 활용할지, 중국은 대만과 미국을 어떻게 압박할지 그것이 또한 자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침묵을 지키며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앞으로 양안 관계가 크게 요동치지는 않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대만 민심이 집권 3기를 맞은 친미 민진당으로부터 확연하게 멀어졌기 때문이다. 야당 표가 갈리는 바람에 집권 민진당이 총통 자리는 지켰지만, 전임 차잉잉원 총통의 득표율(약 57%)에서 무려 17%가 빠진 40% 수준으로 득표율이 급감했다.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지향하며 미국과 군사협력을 꾀하는 민진당 정부 때문에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증가하는 데 따른 대만 사람들의 두려움과 반감이 이번 대만 총선거 표심에 반영됐다는 평가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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