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주 치러진 인도네시아의 대선은 여러모로 주목할 점이 많았다. 유권자 수부터 모든 게 엄청나게 큰 규모로 이뤄졌으며 조코 위도도 대통령을 둘러싼 대선 후보들의 관계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국민과 주변 국가들은 이번 대선 결과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이 현지 상황을 전해준다.  

 

조코위 아들 손잡은 프라보워

표본 개표 후 대선 승리 선언

결선투표 없이 당선 확정 유력

 

조코위 장남 부통령 당선될듯

선거법 바꿔가며 편법 출마해

인기 힘입어 ‘조코위 왕조’ 전망

전직 대통령도 정치 가문 구축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

지난 14일(현지시간) 치러진 인도네시아 대통령선거는 같이 프라보워 수비안토(72)의 승리가 거의 확정적이다. 오는 3월 20일 공식 결과가 나온다.

인도네시아 여론조사업체 인디케이터 폴리틱에 따르면 선거 표본 집계 결과 프라보워 후보는 59%가 넘는 압도적 득표율을 얻은 가운데 경쟁 후보로 지목된 간자르 프라노워 전 중부자바 주지사와 아니스 바스웨단 전 자카르타 주지사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전체 개표 결과 아닌 선거 표본 집계 결과만으로 선거 당선 여부를 예측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도네시아는 무려 1만 6056개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유권자수만 무려 2억 500만명에 이르고 전국 투표소만 82만여개에 달해 개표에만 한 달 이상이 걸린다. 인도네시아의 서쪽에서 동쪽 끝까지의 총 거리는 무려 5000킬로미터가 넘는다. 미국 서부 동부 간 거리보다 더 멀다. 게다가 낙후된 인터넷 환경과 열악한 도로 사정, 홍수 등 자주 일어나는 자연재해도 투표함 수송과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개표를 더욱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제는 5년 중임제로, 2004년부터 직선제로 선출하고 있다. 대선은 결선투표제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만약 프라보워가 유효표의 과반, 전체 33개주의 절반 이상에서 20% 이상 득표를 달성하면 단판으로 끝나지만, 미달하면 오는 6월 1·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다시 치른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최종 선거 결과는 총선 지방선거 결과와 함께 개표가 모두 끝나는 3월 20일쯤 발표된다. 그러나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은 프라보워가 이미 승리한 것으로 확정 짓고 있다. 프라보워 역시도 선거 직후 가진 대중 연설에서 “이번 선거는 인도네시아의 승리이며, 인도네시아 국민을 위한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승리를 장담하는 발언을 했다.

실제로도 지금의 추세 판도라면 다음 달 20일로 예정된 결선투표로 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로써 정치인이자 사업가로 살아온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이 펼쳐질 전망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5차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왼쪽)과 러닝메이트인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장남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수라카르타 시장. 이번 대선에서 이들의 승리가 유력한 가운데 자신의 측근과 장남이 대통령을 잇도록 만든 조코위가 진정한 승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출처: 뉴시스)
지난 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5차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왼쪽)과 러닝메이트인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장남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수라카르타 시장. 이번 대선에서 이들의 승리가 유력한 가운데 자신의 측근과 장남이 대통령을 잇도록 만든 조코위가 진정한 승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출처: 뉴시스)

◆현직 대통령과 손잡은 야당 대표

프라보워는 조코위 연립정부의 현직 국방부 장관이다. 육군 엘리트 장성 출신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인도네시아은행(BNI)의 설립자이자 정부 최고 자문회의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경제학자인 그의 아버지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 정권에서 경제부 장관 등 여러 장관직을 역임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1967~1998년 인도네시아를 철권 통치한 군부독재자 수하르토 대통령의 사위이자 특수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인사들을 탄압하고, 파푸아와 동티모르 독립 투쟁의 유혈 진압을 이끌었던 전력을 갖고 있다. 이후 쿠데타 실패로 군복을 벗고 1998년 해외로 망명을 떠나야 했고, 미국은 2022년까지 그를 미국 입국 금지 명단에 넣기도 했다.

2001년 귀국한 프라보워는 이후 펄프 회사를 설립했고, 팜유와 석탄, 가스, 광업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둬 자산만 한화로 2000억원이 넘는다. 사업이 안정화되자 2008년 그린드라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집권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지난 2014년과 2019년 대선에서 모두 조코 위도도(조코위) 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그런데 조코위 대통령은 2019년 총선 직후 그를 국방장관 자리에 앉혀 주변과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마디로 조코위 대통령의 정적에서 정치적 동반자가 된 것이다.

현 국방장관이면서도 야당인 대인도네시아운동당 소속인 프라보위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조코위의 아들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37) 수라카르타 시장을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전격 발탁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조코위 장남의 입후보 자격을 둘러싼 큰 논란이 있었다. 40대 이상으로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30대 젊은 조코위의 장남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자격이 없었다.

1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선거를 앞두고 직원들이 투표소에 배포할 투표함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1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선거를 앞두고 직원들이 투표소에 배포할 투표함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그럼에도 조코위의 매제이자, 기브란 라카부밍의 고모부인 헌법재판소장이 출마 길을 열어줬다. 조코위의 열성 지지자들의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된 사람은 연령 제한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소원 청구를 인용, 37살 기브란의 부통령 출마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후 조코위 대통령은 집권 여당 후보 대신에 프라보워에 더욱 노골적인 지지를 보냈고 프라보위는 사실상 ‘집권 여당 대선주자’나 다름없는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선거 전 내내 50%를 웃도는 지지율로 경쟁자들을 압도할 수가 있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의 반발도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선 대학생들과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조코위 대통령의 민주주의 퇴행과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반(反) 조코위 시위가 발생했다. 선거를 앞두고 민주성지인 욕야카르타의 국립 가자마다대학 앞에서 대학생 수천명이 모여 조코위를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공식 유세 기간이 끝난 다음 날인 11일에는 ‘더러운 선거(Dirty Vote)’라는 제목의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인도네시아의 탐사 저널리스트이자 영화 제작자인 단디 드위 락소노가 제작과 감독을 맡은 것으로, 여러 법률가가 등장해 조코위 대통령과 그가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 프라보워 수비안토,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이자 부통령 후보인 기부란 라카부밍 라카의 부정 선거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다큐 영상은 하루 만에 조회수가 무려 400만을 넘었고 지금까지 이를 본 시청자 수는 1800만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 결과만 보면, 판을 뒤엎을 만큼의 큰 영향력은 끼치지 못했다.

정치나 역사에 관심이 적은 젊은 유권자들은 프라보워 측이 만든 짧고 충동적인 틱톡 영상에 현혹돼, 과거 그의 어두운 과거사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편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서방 언론들은 승리의 진짜 주역은 프라보워가 아닌 조코도 현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프라보워가 조코위 현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하고, 그의 장남을 부통령 후보로 삼았기 때문이다.

인구 기준 세계 3위 민주주의 대국인 인도네시아에 ‘조코위 왕조’가 열렸다는 비아냥과 이번 승리로 사실상 조코위는 대를 잇는 세습 정치를 완성시켰다는 냉소 섞인 의견도 적지 않다. 집권 10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경제부흥은 물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조코위가 결과적으로는 군부 세력과 결탁해 사실상 권력세습에 나섰다는 혹평까지 나온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오른쪽)이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오른쪽)이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대선 이후 주변국 침묵… 국민 의견 갈려

이번 선거를 지켜본 아세안국가들은 대체로 무덤덤한 반응이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자제하는 편이다. 캄보디아는 물론이고, 베트남, 태국은 물론이고 싱가폴, 필리핀 등 다른 주변 국가 언론매체 기사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프라보워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기사를 낼뿐 아직 논평을 거의 내놓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다수 국민도 대선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경제발전 등 앞날에 더 큰 관심과 비중을 두는 모습이다.

조코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과거 수하르토 정권처럼 강제로 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 행위는 없었다. 조코위 집권 이전의 정치 상황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30년간 이어진 수하르토 군부 통치 시대는 1998년 민주화 운동으로 막을 내렸지만, 한동안 혼돈이 지속됐다. 이를 수습한 이가 바로 조코위 대통령이다.

인도네시아 국민은 권력세습에 큰 거부감이 없다.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직을 역임했다. 2대 대통령이자 32년 동안 철권 집권한 독재자 수하르토 역시 자신의 장남에게 내각 장관을 맡긴 바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권력세습에 둔감한 이유다.

재선에 성공해 10년간 인도네시아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조코위 대통령에 대한 대중적 인기와 높은 지지도는 아들을 부통령으로 앉힌 데 대한 부정적 여론을 덮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경제발전을 성공리에 이끌었던 조코위 대통령이 3연임 제한에 묶여 다시 출마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는 게 현지 여론이다.

실제 조코위 재임 기간 중 인도네시아 경제는 크게 발전했다. 2014년 8900억 달러(약 1188조원)였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 2023년 약 1조 3900억 달러까지 고속 성장했다. 퇴임을 앞둔 그에 대한 지지도가 여전히 75%가 넘고, 레임덕 현상도 거의 없는 상황이 국민 여론을 감지하게 해준다.

따라서 대다수 인도네시아 국민은 조코위의 뒤를 이은 프라보위와 조코위의 아들이 조코위의 정치·경제적 유산을 그대로 이어주길 내심 바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조위코 대통령이 추진해온 수도 이전 프로젝트와 전기배터리의 주원료인 니켈 수출 제한, 자국 내 생산 기재 유도한 외자 유치 경제정책 등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코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72세의 프라보워 대통령이 집권 5년 임기를 마친 뒤에는 조위코의 장남이 대통령직을 물려받을 가능성도 벌써 회자된다.

프라보워 후보는 3월 20일께 당선이 확정되면 7개월 뒤인 오는 10월 20일 5년 임기의 인도네시아 8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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