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가구 중 1가구 아파트 살아, 층간소음 범죄 5년 새 10배
“주무 부처 대응은 ‘미적지근’… 피해 통계도 제대로 없어”
정부서 ‘준공 거부’까지 내걸었지만, 구축 해결책은 ‘부재’
“소음기준·측정방식 여전히 ‘모호’… 전수조사 이뤄져야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층간 소음 해소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12.11. (출처: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층간 소음 해소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12.11. (출처: 연합뉴스)

층간소음이란?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선 올해부터 오전 6시에서 오후 10시까지 39㏈, 오후 20시에서 익일 오전 6시까지 34㏈을 넘는 소음을 ‘층간소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통상 ‘속삭이는 소리’가 30㏈이고 ‘도서관’이 40㏈ ‘조용한 사무실’이 50㏈ ‘일상 대화 소리’가 60㏈이다.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지난 2021년 9월 27일 오전 0시 33분. 전남 여수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30대 남성 A씨는 6개월간 600여종의 흉기를 검색한 뒤 등산용 칼과 정글도를 구입, 위층에 살던 B씨 부부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A씨는 사건을 목격한 B씨 부모도 수차례 찔렀다. B씨 부부의 자녀는 다른 방 안에 숨어 화를 면했다. A씨는 범행 후 자수했다. 살인 동기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망상’이다.

층간소음 문제는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넘어 이미 예전부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안은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뒤늦게 ‘층간소음 해소방안’을 발표했지만 향후 지어질 아파트에 대한 대책이고, 이마저도 층간소음 기준(49㏈)이 ‘아이들이 뛰는 소리(43㏈)’보다 높은 등 맹점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층간소음 강력범죄 5년간 ‘10배’ 늘어

우리나라 국민 2가구 중 1가구(2022 인구주택총조사 기준)는 아파트에 거주한다. 문제는 여러 가구가 모여 살면서 층간소음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로 인한 강력범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층간소음 관련 살인·폭력 등 5대 강력범죄 수는 지난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늘었다. 최근 5년간 10배 증가한 셈이다.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은 이웃 일가족 3명을 흉기로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40대 A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17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2021.11.17. (출처: 연합뉴스)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은 이웃 일가족 3명을 흉기로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40대 A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17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2021.11.17. (출처: 연합뉴스)

다만 정부는 층간소음 문제 해결을 위한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실련은 지난 6일 ‘층간소음 민원 접수현황 분석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층간소음으로 인한 범죄가 늘고 피해가 증가하는데 정부와 국회는 무관심하다”며 “형식적이고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이 환경부 산하 기관인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최근 3년간(2020~2023) 층간소음 피해자 민원 실태를 분석한 결과, 2023 도급순위 100대 건설사 중에 13개를 제외한 87개사(87%)에서 민원이 발생했다. 해당 기간 전체 민원 수는 2만 7773건이다.

또한 민원의 72%는 전화상담에서 종료됐다. 이는 행정상 종료를 말하며 민원이 해결된 게 아니다. 소음을 측정까지 진행된 경우는 3만여건 중 3.7%에 그쳤다.

층간소음 문제를 다루는 주무 부처는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다. 다만 해당 부처에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해당 아파트 시공사는 어디인지 파악한 정확한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경실련은 지난 10월 30일 환경부와 국토부를 대상으로 ‘층간소음 업무 관련(부처 간 또는 부처 내) 업무현황’을 질의했다. 다만 실무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열린 층간소음 민원 접수현황 분석발표 기자회견에서 김성달 경실련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2023.12.6. (출처: 연합뉴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열린 층간소음 민원 접수현황 분석발표 기자회견에서 김성달 경실련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2023.12.6. (출처: 연합뉴스)

◆정부 ‘준공 거부’ 카드 꺼내 들어

정부가 층간소음 문제에서 완전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향후 아파트 신축 시 층간소음 기준 미달 단지에는 준공 승인을 거부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국토부는 지난 11일 ‘층간소음 해소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골자는 층간소음 기준 미달(49㏈)단지 시공 건설사의 ‘보완 시공 의무화’다. 기존에는 의무가 아닌 ‘권고’였기에 시공사에서 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입주민이 직접 소송으로 대처해야 했다.

특히 기준 미달 시는 준공 승인도 거절된다. 지자체가 준공 승인을 하지 않으면 아파트 입주 절차가 중단된다. 입주 지연으로 발생하는 임대료 등 비용은 전부 시공사가 부담해야 한다.

층간소음 조사 방법도 기존 2% 표본 검사에서 5%로 확대한다. 또 보완 시공을 위해 층간소음 점검 시기도 준공 8∼15개월 전으로 앞당긴다.

해소방안이 적용되기 위해선 먼저 주택법이 개정돼야 한다. 법안 제출과 논의는 내년 4월 총선 이후 6월 임기를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층간소음 기준 미충족 시 사용승인을 내주지 않겠다는 정책은 해외 사례처럼 ‘징벌적 페널티’가 될 수 있어 건설업계 관행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동 주택 층간 소음 해소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12.11. (출처: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동 주택 층간 소음 해소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12.11. (출처: 연합뉴스)

◆측정 방식·기준 모두 ‘의문투성이’

정부가 ‘층간소음 기준 미달 시 준공 거부’라는 고강도 대책을 내놨지만, 업계에선 실효성을 두고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9㏈ 기준 자체가 그다지 엄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의 ‘공동주택 층간소음 기준 안내 영상’에 따르면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43㏈이다. 실제로 올해부터 적용된 층간소음 기준에서도 주간(06시~22시) 39㏈, 야간(22시~06시) 34㏈ 이상이면 층간소음으로 규정한다. 즉 층간소음이 발생해도 준공 거부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사람마다 소음을 느끼는 정도가 다른 점까지 감안할 경우 49㏈ 기준이 층간소음으로 인한 강력범죄 예방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또한 현재의 바닥 충격음 저감 시공과 층간소음 측정 방식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층간소음이 단순히 위층에서 발생한 소리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위·아래층 소음을 측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우리나라 아파트 대부분이 벽식 구조이고 소음이 옆이나 위, 대각선 등으로 퍼지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반영한 연구와 실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5% 샘플 조사 말고 전수조사 해야”

아울러 층간소음 조사 방식도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는 보완 시공을 위해 일부 가구만 샘플 조사하지만, 그 과정에서 편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샘플 가구가 층간소음 기준을 통과하면, 나머지 95% 가구가 기준을 통과했는지 알 길이 없다.

경실련은 지난 11일 입장문을 통해 “전수조사가 아닌 2~5% 샘플 조사로는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모든 세대를 전수조사해 동호수마다 층간소음을 표시하는 고강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이 층간소음 실증시설 H 사일런트 랩에서 임팩트 볼을 활용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제공: 현대건설) ⓒ천지일보 2023.12.07.
현대건설이 층간소음 실증시설 H 사일런트 랩에서 임팩트 볼을 활용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제공: 현대건설) ⓒ천지일보 2023.12.07.

아울러 “지금까지 진행돼 온 사업 승인 전 층간소음 샘플 조사에서도 기준 초과로 문제가 된 사례를 확인할 수 없었다”며 “샘플 세대를 늘리지 않고는 이번 대책 역시 본질적인 문제 건드리지 않은 작년 대책을 재탕한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층간소음 전수조사 의무화 도입을 위해 5년 내 20%, 10년 50%, 이후 전수조사 등과 같은 장기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층간소음 기준 미달 시 사후 보강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바닥 시공을 마친 상태에서 층간소음 기준 미달 여부를 측정하기 때문이다. 바닥 시공 전 층간소음 기준이 따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본 골조 공사가 끝나면 층간소음을 측정하고, 실내 마감까지 끝난 후 다시 측정하는 식이다.

구축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도 여전하다. 정부는 앞서 소음 저감 매트 시공 비용을 최대 300만원까지 저리로 대출해 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21가구를 지원하는 데 그쳤다. 아파트를 지은 시공사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에 내년도 매트 설치 지원 예산은 27억원(900가구)으로 대폭 줄었다. 아울러 정부가 오는 2025년부터 자녀가 있는 저소득층 가구에 매트 설치 비용을 전액 지원하기로 했지만, 이외 다른 방안은 마련하지 못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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