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지수 고점 대비 반토막 나
내년 상반기 3조 손실 전망
판매량 20조 중 銀만 16조

당국, 은행 불완전판매 지적
銀, 금소법 따라 위험 고지
전문가 “전수조사 후 봐야”

서울시내 은행 ATM기의 모습. (출처: 뉴시스)
서울시내 은행 ATM기의 모습. (출처: 뉴시스)

핵심요약

◆홍콩H지수 급락에 수조원대 손실 전망

홍콩H지수가 14년 만에 처음으로 5천선 아래까지 곤두박질치면서 이와 연계된 ELS 상품 손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해당 상품은 올해 상반기 말 기준 20조 5천억원사량 판매된 것으로 조사됐는데, 내년 상반기 8조 4100억원가량이 만기를 맞게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3조원이 넘는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후폭풍 가능성에 책임공방 가열

수조원대의 손실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당국과 금융권, 투자자 간 책임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과 금융당국이 은행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제기한 반면, 금융권에선 금소법 등으로 인해 전반적인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당국과 금융권 모두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용어설명

◆홍콩H지수: 중국본토기업이 발행했지만 홍콩 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되고 있는 주식 중 40개 우량 중국 국영기업들로 구성된 지수다.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라고도 불린다. 2008년 10월 이후 약 14년간 안정성, 성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으나, 2021년 2월 18일 고점을 찍은 뒤 최근 반토막 이하로 폭락했다.

◆ELS: 주가연계증권. 개별 주식·지수가 일정 구간 안에 머무르면 일정 수익을 지급하는 위험성 파생상품이다. 특히 손실 발생의 기준점이 되는 ‘원금 손실 발생 구간(녹인, knock-in)’ 밑으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수조원대에 달하는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를 기반한 주가연계증권(ELS)의 원금 손실이 임박하고 있다. 홍콩H지수가 5천선 아래까지 곤두박질치면서 이와 연계된 ELS 상품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불완전판매 논란, 투자자 분쟁조정, 소송 등 후폭풍이 금융권에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당국과 금융권, 투자자 간 책임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당국에선 은행권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은행권이 고령층 투자자에게 어려운 파생상품을 권유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 것인지,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운 파생상품을 판매하는 행위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등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반면 금융권은 당국이 주장하는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현저히 적으며, 외려 당국의 지적이 과도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가 DLF(파생결합펀드), 사모펀드 사태 이후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금소법)까지 시행된 가운데 발생한 만큼 일부 사례는 있을 수 있어도 전체 은행권이 불완전판매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이다.

◆홍콩H지수 ELS가 뭐길래

이번 사태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홍콩H지수와 ELS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홍콩H지수는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중국공상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은행 등 40개 우량 중국 국영기업들로 구성된 지수다. 이 지수는 2008년 10월 이후 약 14년간 안정성, 성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돼 왔다.

홍콩H지수는 지난 2021년 2월 18일(1만 2271.60) 고점을 찍은 뒤 작년 글로벌 증시의 하락세에 따라 반토막 이하로 폭락했다. 특히 지난 3년간 중국 경기가 침체되는 모습을 보여 조기상환에 실패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 홍콩H지수와 연계된 ELS의 만기가 도래할 경우 3조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LS는 개별 주식·지수가 일정 구간 안에 머무르면 일정 수익을 지급하는 위험성 파생상품이다. 특히 손실 발생의 기준점이 되는 ‘원금 손실 발생 구간(녹인, knock-in)’ 밑으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 원금손실구간은 대부분 기준가의 50~55%에서 형성되고, 만기는 3년 이하다.

홍콩H지수가 고점을 보이고 저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금융권 내 홍콩H지수 ELS 판매액은 급증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판매 잔액은 20조 5천억원가량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은행권에서 판매된 규모만 15조 8860억원에 달했다. 은행별 판매 잔액은 국민은행 7조 8458억원, 신한은행 2조 3701억원, 하나은행 2조 1782억원, 농협은행 2조 1310억원, 우리은행 413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ELS는 통상 3년을 만기로 하게 된다. 현재까지 추정된 결과치에 따르면 홍콩H지수가 최고점을 찍었던 2021년 상반기 판매된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잔액은 8조 4100억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국민은행 4조7726억원, 농협은행 1조 4833억원, 신한은행 1조 3766억원, 하나은행 7526억원, 우리은행 249억원 순이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27.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27.

◆수조원 손실 예고에 책임공방 가열

수조원대의 손실이 예정된 만큼 이에 대한 책임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일부 민원이나 분쟁 조정 예상 상황들이 은행권에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9일 “연내 기초 사실관계를 좀 파악하려고 노력 중인데, 일부 민원이나 분쟁조정 예상 상황들이 있다”며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몰려서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묻기도 전에 (은행이) 무지성으로 소비자 피해 조치가 마련됐다고 운운하는 것은 자기 면피로 들린다”며 “자필을 받았다든가, 녹취를 확보했다든가 하는 게 불완전판매 요소가 없다는 얘기 같지만 금소법상 적합성의 원칙과 본질적 취지를 생각하면 자기 면피 조치를 했다는 것으로 들리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ELS가 문제가 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상품이라는 점”이라며 “홍콩H지수 떨어진 걸 보면 일반적으로 80~90% 확률로 정기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거두지만 10~20% 확률로 50% 원금 손실이 생기는데, 이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당연히 매수해도 되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불완전판매”라고 주장했다.

김 부위원장은 “상품구조에 대해 파는 사람조차도 이 상품을 모르고 판매한 것이 상당히 있다고 본다”며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증권사와는 달리 은행 직원도 잘 이해 못하는 경우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문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자기 면피성 발언’ ‘이해도 못 하고 판매’ 등 격한 표현을 이어가는 가운데 은행권에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창구에서 ELS, ELT 판매할 때 가장 먼저 설명하는 것이 고위험성”이라며 “말로도 설명하고, 계약서에도 붉은 글씨로 위험을 고지하기도 하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오랫동안 홍콩H지수 ELS에서 손실이 나지 않다보니 ‘손실이 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난 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있다”며 “ELS 상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뿐더러 70대 고령층의 가입이 많다고 이들 투자자가 ELS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어불성설”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국과 금융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은행권이 불완전판매를 했느냐 여부”라며 “전수조사가 진행 중인데도 벌써부터 배상 기준을 만든다는 것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피해자를 돕기 위해선 은행권의 불완전판매 기준을 밝힐 필요가 있다”며 “이것이 명백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은행 쪽에선 책임 회피성 움직임을 보일 수 밖에 없고, 피해자들은 돈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강화된 설명의무에 따르면, 상품의 이해도나 위험성에 대해 녹취로 진술하든가 직접 손글씨로 쓰는 행위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며 “문제는 은행권이 ELS의 성격 중 채권성만 강조하고 위험성은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 정도만 지나가듯이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물론 금융당국 역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며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 ELS 판매에 대해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해당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서울 시내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출처: 뉴시스)
서울 시내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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