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2022.08.01
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2022.08.01

경상북도 남쪽엔 비슬산(琵瑟山, 해발 1084m)이 우뚝 솟아 있고, 비슬산을 가운데 두고 주변 위성도시들이 산재해 있다. 대표적 도시로는 대구 달성, 경북 청도, 경남 창녕‧밀양 등이다.

그중에서도 비슬산과 청도, 청도와 비슬산은 마치 한 몸과 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비슬산이라는 산명부터 고찰해보자.

‘비슬’이라는 글자는 한글이라기보다 산스크리트어 즉, 범어(梵語)다. 이 산스크리트어는 인도유럽어로 대부분의 인도계 언어들의 조상으로 보는 게 정설이며, 유럽의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와 거의 뿌리가 같다.

그렇다면 인도어가 왜 대한민국 산하의 지명 내지 산명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지금부터 그 비밀을 벗겨보자.

먼저 힌트 하나를 준다면 산스크리트어가 세계 언어의 조상이라는 데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 한글 창제 역시 이 산스크리트어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계 언어학자들이 세계 최고의 언어가 한글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천지인 삼재를 표시한 단 세 개의 버튼만 누르면 모음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편리한 한글은 특히 IT시대에 들어서 어느 언어보다 뛰어난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우수한 한글 역시 산스크리트어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우리 한글은 범자를 본떴다는 범자기원설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며, 황윤석, 이능화 등 고전 내지 현대학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며, 외국학자 호레이스 언더우드 등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대표적인 실례가 있으니 바로 비슬산 이야기다.

비슬산의 ‘비슬’이 바로 비파 비(琵)와 거문고 슬(瑟)이 합쳐진 산스크리트어다. 우리나라에서 유사하게 사용되는 또다른 글자가 ‘소슬바람이 분다’ 할 때 ‘소슬(蕭瑟)’과 같은 글자며, 쓸쓸할 소(蕭)와 거문고 슬(瑟)이 합쳐진 글자다. 이 비슬, 소슬 외에도 대부분의 불교 용어는 물론 곳곳에 산스크리트가 깊숙이 뿌리를 내리며 우리 민족이 사용하는 고유 글자로서 전혀 어색하지 않게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학설이 종결되는 게 아니다. 이 같은 범어 역시 그 진짜 조상은 바로 우리 민족인 동이족이며, 실상은 인도에서 유입됐다기보다 역수입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인류 문명의 기원은 글과 언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글과 언어의 시원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며 동방민족이다. 이는 세계 최고 역사와 문화 전문대학교로 평가되는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이 약 100년간의 사투 끝에 편찬한 옥스퍼드대 백과사전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는 자연의 소리를 구사해 내는 데 적합하므로 시인 수필가 등이 자주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제 관심은 왜 하필이면 청도의 진산에 산스크리트어로 된 이름이 붙여졌을까 라는 데 의문이 생긴다.

그 사연을 알기 위해선 먼저 청도를 알아야 하며, 낙동강과 김해 등에 얽힌 역사적 사연을 들여다봐야 한다.

청도에 관해선 지난번 ‘청도 이야기’라는 천지시론을 통해 살짝 언급했듯이, 약 2천년 전 청도의 이름이 ‘이서국’이라는 데 비밀이 있다.

이 이서국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의 경주 역시 그 옛 이름이 ‘사로국’이며, 이 역시 서라벌 즉, 펼쳐진 벌판이 이스라엘의 샤론 평야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처럼 약 2천년 전 왜 하필이면 경상북도 남쪽지역에 이 같은 이름들이 있어야 했을까.

글 제약 상 거두절미하고, 당시 육로의 실크로드만 존재했던 게 아니라 한반도 즉, 반도국가로서 해양세력과의 교류가 더 활발했음을 방증하고 있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우고 익혀온 역사는 진실보다 식민사관과 사대사관에 의해 의도된 왜곡이며 어찌보면 거짓된 교육이었다면 누가 틀린 주장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 약 2천년 전 우리나라의 지도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으며, 특히 지금의 낙동강은 경상북도 내륙 깊숙한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고 큰 배가 드나들었다.

그 강과 뱃길의 종착지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지금의 청도다. 이 해양실크로드를 따라 찾아 스며들어온 이방민족이 있었으니 바로 디아스포라 곧 로마의 식민지로 인해 조국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진 이스라엘인들이었다.

당시 가장 많은 디아스포라가 살았던 지역이 바로 이서국, 지금의 청도다.

나아가 이 해상교류와 함께 당시 해상무역활동이 활발했던 인도사람들과의 상거래가 활발했고 디아스포라(흩어진 이스라엘), 인도, 페르시아 등 상인들과 교류가 활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 같은 역사적 사연으로 인해 괄목할만한 진실은 바로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사도 도마의 사역지가 됐다는 부분에 대해선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아무튼 비슬산과 청도 등 산속 깊숙한 오지와 같은 곳에서 드라마같이 펼쳐졌던 지난 역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으며 또 알리고 있는지 귀 기울여볼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해류를 따라 들어온 인도인과 디아스포라들의 삶의 근거지와 제2의 고향이 됐던 청도, 그들이 바라본 비슬산의 모양은 마치 천사들이 거문고를 켜는 모습과 같았을까.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