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2022.08.01
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2022.08.01

지구상엔 몇 개의 화약고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화약고는 언제 불이 붙어 폭발할지 모를 위험성이 항시 내재돼 있다는 데서 비유된 표현이다.

그러한 위험성의 요인은 종교 민족 사상 언어의 다름에서 비롯된다.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하나가 아니고 갈라지고 흩어진 이 현실이 원인이라는 얘기가 된다.

지구상에 이 같은 화약고 중 대표적인 곳이 네 군데 있으니, 맨 먼저는 한반도며, 이 한반도는 남과 북의 사상적 분열이 직접적 원인이며 나아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적 인식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참견하는 데서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화약고 중 화약고가 돼 있다.

다음으로는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한창 전쟁 중에 있는 크림반도다. 이 크림반도(원래 우크라이나 영토)는 러시아 입장에선 하나의 목줄과 같은 곳이며, 서방의 입장에선 급소와 같은 곳이며, 상호 간에 매우 중요한 땅덩어리며 요충지며 교두보다.

러시아 입장에선 자국은 예부터 부동항이 없는 동토의 왕국이다. 이는 해양진출을 꾀할 출구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고립된 처지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거점이 바로 크림반도다. 전설적인 나이팅게일을 낳았던 크림전쟁(1853~1856) 역시 이 같은 이유에서 벌어졌던 전쟁이었다.

이어서 유럽의 발칸반도다. 이 발칸반도에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등 6개 나라가 다양한 종교 민족 언어에도 불구하고 유고슬라비아라는 연방을 형성해왔다. 하지만 종교 민족 언어의 다양성은 결국 참혹한 전쟁으로 이어졌고, 지금도 그 전운은 식지 않고 있으니 그야말로 화약고가 틀림없다.

마지막 네 번째로 소개되는 곳이 지금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므로 교전 중에 있으며 나아가 확전(중동과 서방)될 가능성이 충분한 중동의 화약고다.

이 땅은 원래, 다른 요인은 배제하고 역사적으로만 본다면 유대인들이 살던 땅이다. 하지만 주변국들에 침략당해 땅을 빼앗기고 난 후, 긴 세월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결국 팔레스타인이 나라를 건설하게 된다. 2차 대전 후, 소위 ‘시오니즘’이라 불리는 유대인들(디아스포라)의 회복운동이 시작되면서 땅을 되찾게 됐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이 대목에서의 맹점은 이스라엘 입장에선 조국을 되찾은 것이지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선 최근까지 살던 조국을 침략당한 꼴이 됐다는 현실 중 현실이다.

‘닭이 먼저일까 알이 먼저일까’라는 화두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이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세계는 과연 누구의 편에 설 수 있을까.

이로 인해 두 나라의 갈등과 증오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고, 갈등의 정도를 넘어 철천지원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결국, 땅 따먹기식 긴 투쟁과 전쟁의 흑역사를 가진 비극의 땅이 돼 버린 것이다.

더 나아가 실효적 지배영역을 늘려가려는 이스라엘과 이에 맞서는 팔레스타인 간의 충돌에 대해 당사국은 물론 세계마저도 오늘날까지 피해 갈 방법을 찾지 못했으니 화약고의 폭발은 어쩌면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는 주요 화약고의 대략을 살펴봤고, 특히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희생되고 있는 중동의 화약고에 대해선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봤다.

이제부터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중동의 화약고이자 어쩌면 세계 화약고가 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흔히들 생각하기를 인류의 역사 곧 인류사와 종교사를 구분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부터 인정해야 한다.

먼저 분명히 밝힐 것은 우리 인생을 포함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 한 분이시다. 이는 종교의 색깔이 아닌 불변의 진리다.

이 창조주 하나님은 친히 창조하신 우주와 만유를, 창조하고는 내 버려두는 게 아니며 운행을 하신다. 나아가 그 운행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향해 진행되고 있으니 이를 섭리라 일컫는다.

이로 보건대 우리 인류가 살아온 길고 긴 역사 곧 인류사는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같은 인류사 가운데 종교의 경서(성경)를 통해 하나님은 누군가를 그리고 어느 민족인가를 택하고 그(들)와 함께 역사를 해오셨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살아 역사해오심을 당대 나아가 후일에 알게 하고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같이 누군가를 택해 그들과 함께해 온 과정과 노정이 바로 종교사며, 이는 그들만의 것이라기보다 인류를 대신하고 대표하는 성격을 지녔다.

대신하고 대표한 그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은 히브리민족이며 유대인이며 오늘의 이스라엘이다.

이 대목에서 대표적 인물이 있으니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다. 이는 바로 종교사 내지 인류사 속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종교는 약속이며, 이 약속은 성취라는 전제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 속 구약은 바로 이 아브라함의 후손들과 맺은 언약이다. 이 언약의 핵심은 이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메시야 곧 예수님 한 분을 약속해놨던 것이며,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 예수님의 초림의 시작과 재림의 완성이라는 청사진이 담긴 계획서이다.

즉, 하나님은 인류사 속에 종교사를 담아놨고, 그 종교사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물로부터 시작할 것을 알려왔으며, 이를 구약과 신약이라는 약속을 통해 이룰 것임을 알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그들부터 하나님의 뜻과 계획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만 선민이라는 선민사상과 욕심과 교만으로 얼룩져 왔으니 역사가 그 증인이다.

이제 알리고자 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예루살렘 안에는 대표적 세 가지 종교가 서로 선민이라 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다.

이들의 뿌리 곧 시작은 같지만 그 끝은 도저히 좁혀질 수 없으리만큼 멀어져 있으니 지금의 현실 곧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자비 없는 테러며 전쟁인 것이다.

시작은 같다 하지만, 유대교는 하나님을 믿고 아브라함의 혈통임을 자부하지만 정작 약속 곧 약속의 목자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이슬람교는 하나님은 인정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태어난 예언자 무함마드를 신격화 하는 데서 비롯된다. 즉, 하나님이 보낸 예언가 중에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보다 맨 마지막 예언가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인물로 신봉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분명히 할 것은 경서인 성경엔 무함마드라는 인물이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편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인 구약대로 오신 예수님은 믿고 있지만, 예수님이 약속하신 신약 곧 새 언약 계시록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긴 글을 통해 살펴본 데는 이유가 있다.

중동의 화약고, 겉으론 이런저런 갈등과 전쟁의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은 종교적 배타성, 그 배타성은 무지와 오해와 모순의 결과라는 점 명심해야 한다.

‘위 아 원(We Are One)’,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바로 우리가 하나 될 때만이 가능하다는 진리와 ‘하나’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임을 깊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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