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천지일보 2023.02.24.
ⓒ천지일보 2023.02.24.

<42> 현대해상의 발전 과정

1997년 보험업 첫 ISO 9002 인증

11개 계열사 둔 ‘보험사 3위’ 규모

경영활동 중심에 ‘고객만족 최우선’

 

정몽윤, 성김 전 주한 美대사와 친분

요르단 명예영사 등 외교관 활동도

명품 ‘브리오니’ 즐겨 입는 걸로 유명

현대해상의 오너인 정몽윤 회장은 1977년 현대종합상사의 부장으로 입사해 경력을 쌓았다. 이후 1985년 현대해상보험으로 이동해 부사장과 대표이사(1988년)를 역임하고 1996년 회장으로 승진했다. (출처: 뉴시스)
현대해상의 오너인 정몽윤 회장은 1977년 현대종합상사의 부장으로 입사해 경력을 쌓았다. 이후 1985년 현대해상보험으로 이동해 부사장과 대표이사(1988년)를 역임하고 1996년 회장으로 승진했다. (출처: 뉴시스)

평소 보험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정몽윤 회장이 적극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부친 아산 정주영 회장을 설득해 마침내 허락받아 기존의 동방해상보험사를 인수하고 1985년 10월에 현대해상화재보험㈜’을 설립했다.

당시 동방해상보험주식회사는 1955년 3월에 설립된 회사로서 주 사업은 바다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보장하는 해상보험만을 취급했다. 

그러던 동방해상이 화재를 비롯한 상품을 영업하게 된 동기는 1962년 12월 ‘한국손재해보험공사’를 합병하고 1963년 7월 화재보험 인가를 획득하면서다. 그리고 1969년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을 대상으로 특종보험을 개발했고, 자본금을 2억 5700만원으로 증자했다. 

1976년 10월 일본 동경과 오사카에 지점을 개설해 해외로 진출했고, 해상보험의 중심가인 영국 런던에도 1979년 7월에 지점을 열었다. 1980년 동방해상은 테마 ‘화재’를 앞세워 사명을 ‘동방화재’로 변경했다. 1983년에는 자동차보험업에 진출했고, 1984년 1월 본사를 광화문으로 이전했다.

2012년 4월 17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2011년 연도대상 시상식’에서 정몽윤 회장과 (왼쪽 첫번째)과 당시 서태창 사장(오른쪽 첫번째)이 대상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현대해상)
2012년 4월 17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2011년 연도대상 시상식’에서 정몽윤 회장과 (왼쪽 첫번째)과 당시 서태창 사장(오른쪽 첫번째)이 대상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현대해상)

◆정몽윤, 1985년 ‘동방해상 인수’로 경영 본격화

하지만 동방해상의 모기업인 라이프그룹이 자금난으로 경영 문제가 발생하자, 현대의 정몽윤 회장은 1985년 재빠르게 동방해상을 사들이고 회사명을 ‘현대해상화재보험㈜’로 변경하고 본격적인 경영에 들어갔다.

정몽윤 회장은 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보험업 인가를 획득하고 1994년 미국에 진출했다. 같은 해 미국 오리건주에도 지점을 확대하면서 글로벌 보험 시대를 열었다.

1997년 1월 보험업 최초로 ISO 9002 인증을 받았으며, 최종으로 환경경영시스템(ISO14001) 인증도 획득했다. 또 1997년 6월 영국 런던 로이드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1998년 9월 현대해상연수원을 개원했다. 1999년 1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되면서 현재 독자 경영 중이다.

현재 시점에서 판단하면 현대해상은 손해보험산업의 선두 주자로서 해상, 화재, 자동차, 특종, 장기, 연금 및 퇴직보험(연금) 등 손해보험 전 분야에 걸쳐 사회안전망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또한 상품개발, 언더라이팅, 보상서비스 등 모든 경영활동 중심에 고객 만족을 최우선에 두고 고객과 주주, 임직원,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서 최선을 다해 경영활동 중이다.

계열사로는 현대C&R㈜, 현대하이라이프손해사정㈜,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영㈜, 현대하이카손해사정㈜, 현대재산보험(중국)유한공사, 현대HDS㈜ 등 11개 계열사를 보유한 대한민국 3위 보험회사로 성장했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 2002년 9월 자동차보험 브랜드 ‘하이카’, 2004년 9월 온라인자동차보험사인 ‘하이카다이렉트’를 출시, 2006년 9월 현대인베스트먼트아메리카를 설립했다. 그 후 2007년 9월 중국 현대재산보험유한공사를 출범했고, 2007년 10월과 2008년 1월에 명동사옥과 광주신사옥을 준공했다.

2011년 11월 보험회사 신용평가 전문기관인 A.M.Best사의 신용평가에서 9년 연속으로 A-등급(Excellent)을 받았고, 드디어 2012년 10월 A등급을 획득하면서 최상위 회사로 성장했다.

현대해상화재보험의 실질적인 오너인 정몽윤 회장은 1973년 서울 중앙고를 졸업하고 198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정몽윤 회장은 1985년 같은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영재로서 배우자는 김진형 부국석면 회장의 딸인 김혜영이다.

슬하에 1남 1녀를 뒀으며, 장녀 정정이씨는 1984년생으로 2009년 결혼했는데 부군 김형강씨는 KBS 사장을 지낸 김인규 경기대학교 총장의 장남이다.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장남 정경선씨.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장남 정경선씨.

◆아들 위해 사재 털어 ‘루트임팩트’ 지원

아들 정경선씨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아산나눔재단에서 근무했다. 이후 사회적기업 루드임팩트 CIO(최고상상책임자, Chief Imagination Officer)와 임팩트 투자사 HGI(HG 이니셔티브) 대표를 역임하고 HGI의 의장을 맡고 있다. 

임팩트 투자란 투자 수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성과를 동시에 추구하는 투자이다. 루트임팩트는 상당 부분 정몽윤 회장이 아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운영되고 있다. 정몽윤 회장은 아들인 정경선씨가 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과감하게 투자(2014년부터 2021년까지 79억 출연)했다. 아울러 현대해상에도 2018년부터 2021년까지 50억원을 투자했다.

루트임팩트는 사회의 복잡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두고 혁신적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체인지 메이커’라고 부르며 이들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을 한다. 정경선씨는 한국 사회에 ‘체인지 메이커’가 많이 등장할수록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가 건강하게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고 자주 강조한다. 루트임팩트는 25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2016년 서울 성수동에 헤이그라운드를 설립했다.

헤이그라운드는 소셜벤처, 사회적기업 등을 위한 공간으로 2019년에 서울숲에 2호점을 열었고, 2022년 5월에는 비영리조직에 입주 비용을 지원하는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난 2017년 10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위원회 3차 회의’를 루트임팩트의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면서, 문 대통령은 사회적 문제 해결에 뛰어든 청년 창업가들의 활동에 큰 기대감을 표방하고 지원했다. 

정경선씨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비즈니스스쿨 MBA 과정을 수료한 우수 인재로 2014년 HG이니셔티브도 설립했다. HG이니셔티브는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벤처 기업에 ‘임팩트 투자(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기업에 투자해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투자)’를 한다.

또한 정경선씨는 이재웅 쏘카 대표와 함께 임팩트 투자조합을 설립하고 사회적 가치와 수익성을 모두 추구하는 소셜 벤처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미래 사회의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현대해상과 하이카다이렉트가 2015년 통합하면서 현대해상과 하이카다이렉트 직원들이 광화문 사옥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모습. (제공: 현대해상)​
​현대해상과 하이카다이렉트가 2015년 통합하면서 현대해상과 하이카다이렉트 직원들이 광화문 사옥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모습. (제공: 현대해상)​

 

◆정몽윤 ‘야구광’에 부친 닮아 수준급 노래 실력

현대해상의 오너인 정몽윤 회장은 1955년 3월 18일 정주영 회장의 8남 3녀 중 7남으로 태어나 1977년 현대종합상사의 부장으로 입사해 경력을 쌓았다. 이후 1985년 현대해상보험으로 이동해 부사장과 대표이사(1988년)를 역임하고 1996년 회장으로 승진했다.

정몽윤 회장의 좌우명은 ‘담담하게 삽시다’로 알려졌고, 종교는 기독교이다. 성김 전 주한 미국대사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서 민간 외교관 역할도 수행 중이며, 요르단 명예영사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요르단 독립기념일에 명예영사로 초청받았고, 요르단 영문 신문에 요르단과 관련된 대한민국의 상품광고도 하면서 무역수지에 일조했다.

그리고 현대그룹이 여러 회사로 분리될 시 제일 먼저 분리 독립하면서 형제의 난을 피했다.

정몽윤 회장은 소문난 ‘야구광’으로 노래 실력도 부친을 닮아서 수준급으로 알려졌다. 정몽윤 회장은 중학교 시절 야구선수로 활동할 정도로 수준급의 야구선수로 알려졌으며, 야구 명문 중앙고 재학시절엔 도시락을 싸 들고 야구장을 쫓아다닐 정도로 야구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1997년 대한야구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상당한 사재를 출연해 야구 저변 확대를 도우면서 국가대표팀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국내 야구 발전에 기여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아마야구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몽윤 회장의 숨은 공이 크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198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를 대표팀에 데려오는 등 첫 드림팀을 만든 것도 정몽윤 회장의 노력 덕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후 뒤풀이 행사에 사비를 들여 과감한 지원도 했다.

정몽윤 회장은 2002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야구가 동메달을 획득한 후 ‘연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면서 야구협회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정몽윤 회장은 가수 윤민수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고 하며, 현대해상 수련회 때 ‘술이야’를 불렀을 때 임직원들 사이에 “정몽윤 회장님이 가수 윤민수를 초빙해 배운 게 분명하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노래 실력이 탁월하다.

재계에서 상당한 멋쟁이로 명품 정장 브리오니를 즐겨 입었고, 이 상품은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명품 슈트 정장 브랜드이다. 그리고 2015년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과 2017년 대한상공회의소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사내이사로서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정리=유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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