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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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정몽헌이 만든 현대엘리베이터

오티스, 안전장치로 추락 막은

현대식 승강기 1850년대 상용화

뉴욕 백화점 엘리베이터 최초 설치

 

정몽헌 회장, 엘리베이터 사업 시행

19845월 현대엘리베이터 설립

2022년 예상 매출 ‘2132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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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3일 현대엘리베이터가 ‘충주캠퍼스 이전기념 미래비전 선포식’을 개최하고 있는 모습. (제공: 현대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는 일종의 수직 승강기로서 건축물, 기타 공작물에 부착돼 일정한 승강로를 통해 사람이나 화물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는 시설을 총칭한다. 또 엘리베이터는 큰 빌딩 내에서 사람들이 나란히 서서 사선으로 위아래로 이동하는 에스컬레이터 등을 포괄적으로 포함할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와 유사한 기구를 이용한 역사적인 흔적은 고대 로마 시대에 건축된 콜로세움에서도 발견할 수가 있다. 인간의 단순한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건축공법에 사용돼 수직으로 건설자재를 이동시키는 도구로 일종의 견인식 플랫폼 타입의 도르래가 채택되었는데 이것이 엘리베이터의 효시라고 보는 관점이 크다. 또한 이집트에 건축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피라미드, 멕시코와 구아테말라의 사원도 이런 기술을 이용해 건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견인식 플랫폼 ‘도르래’, 엘리베이터의 효시

즉 인간은 2층 이상의 건물을 점유하기 시작한 이래, 어떤 형태의 수직 운송에 대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신기술을 개발해 왔다. 최초의 형태로는 간단한 사다리, 계단, 동물의 힘을 이용한 도르래, 그리고 수동으로 돌리는 권양기 등의 기술이 발전돼 현재의 엘리베이터의 모습을 갖췄다. 도르래 발명의 원조는 ‘아르키메데스’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무거운 물체를 손쉽게 끌어올리고자 했던 인간들의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승강기는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기본원리는 로프와 도르래로 구성된다. 

BC 287년 그리스의 공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개발한 도르래는 깊은 우물의 물을 길어 올릴 때 사용했던 두레박이라든지, 조선시대 정약용이 개발해 짧은 시기에 건축한 수원성에 이용한 거중기 등에도 이 장치가 사용된 것으로 나온다.

이는 차후 19세기 인간들을 건물 내에서 신속하게 들어 올리는 엘리베이터로 발전했다. 약 200년 전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는 자신이 거주하던 왕궁에서 계단 대신 수직으로 이동하는 장치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애처가로 유명했던 나폴레옹이 거대한 왕궁 계단을 오르내리는 왕비를 애처롭게 생각해서 나르는 의자를 고안해 냈다. 

왕비가 계단이 많기로 유명한 프랑스식 왕궁을 긴 치마를 입고 층과 층 사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이점을 개선키 위해 마침내 의자와 도르래를 이용해 왕비를 층과 층 사이에 수직으로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줄이 끊어져 추락해 사망하거나 부상하는 일이 속출했다.

현재의 엘리베이터가 로프가 끊어져도 절대 자유낙하 하지 않는 기술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로프가 끊어지면 엘리베이터가 추락할 것으로 판단하는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엘리베이터에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내장되도록 설계되면서 추락 방지를 막는 설계기술로 발전했다. 

따라서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10여 가지의 장치가 설치돼 이런 기술이 현재 고층 빌딩용 엘리베이터로 변신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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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현대식 엘리베이터를 상용 화한 엘리샤 그레이 브 오티스. (출처: 위키백과)

◆동력 이용한 엘리베이터, 19세기 급속도로 발전

사실 동력을 이용한 엘리베이터는 19세기에 들어서 급속도로 발전했다. 엔지니어 출신의 ‘엘리샤 그레이브 오티스’는 뉴욕시 욘커스에 위치한 Bedstead 제조사 소속의 기계 부문 명장 출신이다. 그는 처음으로 승강용 플랫폼이 설치된 안전 엘리베이터를 1852년에 발명했고, 1854년 ‘뉴욕박람회’를 통해 자신이 개발한 안전한 엘리베이터를 관람객들에게 선보였다.

당시 오티스는 사람들을 시켜 대형가위로 로프를 직접 끊도록 했고, 오티스가 타고 있었던 엘리베이터는 줄이 끊어져도 낙하 방지 장치가 내장된 안전장치가 튀어나와 엘리베이터 양 옆의 가이드레일에 부착된 톱니에 걸리게 함으로써 추락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됐다. 

오티스에겐 당시가 생애 최고의 발명 순간이었다. 안전한 엘리베이터가 대중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엘리베이터는 로프 줄이 끊어져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던 승객들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성공을 계기로 오티스는 자신의 이름을 모방한 ‘E.G. Otis’사를 설립하고 당시 화물용으로 사용됐던 엘리베이터를 개별 판매했다. 1857년 엘리샤 그레이브 오티스는 뉴욕시의 5층짜리 도자기 상점 위주의 E.V.Haughwout & Company 백화점에 세계 최초의 안전한 현대식 승객용 엘리베이터 시공을 완료한 게 엘리베이터의 상용화 개발역사의 최초이다. 

이후 1870년 뉴욕시 소재의 Lord & Taylor 백화점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고, 1871년에 비로소 오피스빌딩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1873년까지 2000여대가 넘는 오티스사의 엘리베이터가 대형빌딩, 호텔 및 미국 전역에 분포돼 있는 백화점에 설치되면서 본격적 가동했다.

이 기술로 1889년 완공된 프랑스의 에펠탑(총 4대)과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프랑스가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1886년 제작해서 미국에 기증한 작품으로 높이 34미터, 무게는 2만㎏)에도 오티스사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1913년도에 건축된 792피트의 Woolworth 빌딩은 26개에 이르는 최신식의 전기 엘리베이터가 설치됐고,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분당 700피트로 빠르게 이동했다. 1924년 뉴욕의 스탠다드 오일회사에 최초의 엘리베이터 신호 관리시스템이 설치돼 운행했다.

1930년대 초 전 세계의 가장 높은 빌딩 중 네 개의 건물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크라이슬러 빌딩, 맨하탄 은행빌딩, 월스트리트 타워 등이 뉴욕시에 완공됐다. 이후 40, 50, 60층 빌딩들이 미국 전 도시에 걸쳐 급격하게 건축되기 시작했다.

뉴욕의 자랑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때문에 수직 한계 속도가 다시 조정됐으며, 73개의 엘리베이터가 분당 1200피트의 속도로 상하를 고속으로 오르내렸다. 그러나 사업수완이 부족했던 오티스는 자신이 개발한 엘리베이터로 인해 발전된 도시를 보지 못하고 3000만불의 부채를 지고 인생을 불행하게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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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엘리베이터를 공개하는 엘리샤 오티스. (출처: 위키백과)

◆일제 때 ‘수압식 승강기’ 국내 첫 엘리베이터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승객용 엘리베이터는 일본의 요코하마에 있는 70층, 971피트 높이의 랜드마크 타워로, 이 타워는 1993년 7월 16일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이후 요코하마에 가는 관광객들은 필수코스로 관광하는 타워로서 인기 만점의 빌딩이 됐고, 이 빌딩 전망대로 올라가면 한눈에 요코하마 시내와 주변 태평양 바다를 관람할 수가 있다. 이 빌딩의 엘리베이터는 시간당 28마일의 속도로 운행되며, 승객을 2층에서 69층의 전망대까지 단 40초 만에 이동한다.

이 엘리베이터는 일본이 자랑하는 동경의 미쓰비시 전기에 의해 설계 및 시공됐다. 이런 기술을 인정받아 미쓰비시는 한국 내 법인을 설립하고 영업활동을 전략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엘리베이터를 수주해 한국 내 주요 고급아파트나 고층 건물에 설치 운영했다.

참고로 국내 최초의 현대식 엘리베이터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은행에 화폐를 나르기 위해 수압식 승강기와 식당용 승강기가 설치됐고, 이 제품 역시 일본인 도마스 코지가 설치한 오티스 제품이다.

한국인 자본으로 설치된 승객용 승강기는 1931년 종로에 설립된 지하 1층 지상 6층의 화신백화점으로 4대가 운영됐다. 속도는 분당 10미터 내외로 5층 건물에 올라가는데 1분 정도가 걸린 것으로 나왔다.

정몽헌 회장은 국내건설 활성화에 대한 미래를 예측하고 고층 건물에 필요한 엘리베이터 사업을 준비한 뒤 이를 시행에 들어간다.

마침내 1984년 5월 23일 현대엘리베이터㈜가 설립됐다. 현대건설이 건축하는 아파트 및 대형 건물에 필요한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를 설계하고 개발해 납품을 시작하면서 해외 유명회사(미쓰비시, 오티스 등)들과 본격적인 시장경쟁을 펼쳤다.

최초의 사업장인 경기도 이천시에서 글로벌 규모로 생산 확대를 위해 2021년 충북 산업단지에 17만 3097제곱미터의 부지를 마련하고 이전했다. 하지만 현대엘리베이터는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자녀들이 어린 관계로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인수했다.

한때 경영상황이 악화하면서 극심한 자금난을 겪었다. 하지만 경기여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한 현정은 회장은 그룹사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현대그룹의 주력사인 엘리베이터를 슬기로운 판단과 지혜로 경영 위기에서 지켜냈다. 

엘리베이터의 2021년 매출액은 1조 9734억이고, 2022년 예상 매출이 2조 1320억으로 국내 1위 엘리베이터 판매사의 위상을 굳건하게 지킬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정리=유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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