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평론] 모방과 모순이 활개 치는 청정 동해안
[아침평론] 모방과 모순이 활개 치는 청정 동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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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대게가 가장 맛있는 철이 돌아왔다. 경북 동해안에서 잡히는 대게는 봄철에 속살이 가득 차고 먹음직스러워서 해마다 3∼4월이 되면 전국의 미식가들이나 가족, 친구 모임에서 동해안을 즐겨 찾게 된다. 대게라 하면 단연 ‘영덕(盈德)’을 친다. 몇 년 전부터 인근 울진지역에서 ‘울진대게’를 내세우며 홍보하고 있지만 고려 때부터 잘 알려진 ‘영덕대게’니만큼 천년을 이어온 대게의 명품지역으로서 전국에 알려온 명성이 어디 가랴.

고려 말 학자 권근이 펴낸 양촌집(陽村集)을 보면, 태조 왕건이 안동 병산서원 부근에서 견훤 군사를 무찌르고 난 뒤 영해를 들러 경주로 갔을 때 대게 원산지로 유명한 영덕군 축산면 차유마을에 들러 대게를 맛본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이후 뛰어난 맛을 인정받은 영덕대게는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되는 진상품으로서 명성을 널리 떨쳤다. 1999년 4월에 경정리 포구 언덕 아담한 자리에 세운 ‘대게원조마을’ 표지석이 그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바, 지금도 늦겨울과 초봄이 되면 대게의 진미를 맛보기 위해 동해안으로 몰려든다.

영덕대게를 맛보러 행차하는 관광객들은 강구항 등을 찾지만 대게원조마을이 있는 축산항에도 들르는 편이어서 그곳이 덩달아 뜨고 있다. 동해안의 아담한 포구 축산항이 예전 풍어 때와는 달리 쇠락하고 있는 어촌마을이지만 신도시 세종시가 들어서고부터 또 다시 각광받고 있다. 세종시에서 정동(正東) 쪽에 축산항이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사실을 착안해 영덕군이 ‘신정동진(新正東津)항’을 영덕 해상의 랜드마크로 삼아 ‘한국의 나폴리’로 만들겠다는 당찬 의욕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에 총 사업비 90억원을 투자할 계획으로 현재 추진 중에 있다.

발상은 좋다. 강릉 정동진(正東津)이 서울에서 정동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동해안 관광 명소로 거듭났음에 착안해 신행정도시 세종시에서 정동 방향에 있는 동해안 축산항을 신정동진항으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입지 조건만 본다면 쉽게 통할 수 있는 내용 같지만 유명 관광지로 터 잡는 것은 지리적 이점에다가 인근도시에서의 접근성, 주변 관광자원 등이 고루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이지, 그런 요소들에 대해 고려 없이 이름만 모방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정동진은 기차가 드나드는 곳으로 우리나라 바닷가에서 가장 가까운 역이 있는 곳이다. 그 이점을 토대로 1997년 이후 ‘정동진 해돋이 관광열차’를 운영해 정동진역이 오랫동안 입소문을 통해 국민에게 알려졌고, 사계절 관광지의 명소로 터전을 잡았는데, 그 성공 요소는 인구가 많은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 성공 요인들이 취약한 산골 영덕군에서는 “축산항 미항 조성으로 해양거점도시로 발돋움한다”는 막연한 꿈에 부풀어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청정 동해안의 자연자원이 워낙 좋다보니 잘만 만들어놓고 입소문만 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경북 동해안의 영덕은 산간오지로서 교통이 불편할 뿐이지 자연경관은 빼어난 곳이다. 맑고 푸른 바다(Beach)가 있고, 지역에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들(Legend)이 있다. 그래서 가보고 싶은 관광지(Utopia)요, 국민의 일상생활의 탈출구(Exit)로서 안성맞춤이니, 그 영어의 두(頭)문자를 따서 ‘블루(BLUE)’로드 길을 만들었는 바, 이것이 대박을 쳤다.

블루로드 길은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걷는 명품 트레킹 코스다. 영덕군 남정면에서 병곡면 고래불해수욕장까지 해안길 64.6㎞를 따라 4개 코스로 조성된 이 길은 그동안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져 2012년에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 뽑혔고, 올해에 소비자가 선정한 ‘2015 최고의 브랜드 대상’ 테마관광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특히 그 코스 중에서 창포말등대에서 한국의 나폴리로 만들고 있다는 축산항 코스가 가장 백미라 알려지고 있다.

청정 동해안을 끼고 해안선, 기암괴석 갯바위, 해안 절벽 등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다보니 잘 만들어진 블루로드 길과 영덕대게 등 풍부한 수산물 등을 찾기 위해 매년 100만명이 넘는 인파들이 몰려든다. 그러한 바닷가 절경지에 깨끗한 수산물과 영덕대게 원조의 이미지에 맞지 않게 영덕읍과 축산항 인근 지역에 원전 건설이 예정돼 있으니 지금껏 청정해역이니 영덕대게의 원조마을 등이라고 홍보한 내용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모방은 원천(源泉)을 막는 것이요, 모순은 진실을 호도(糊塗)하는 일이다. 동해안의 미항, 축산항이란 고유 이름을 놔두고 모방해 ‘신정동진항’이라 홍보하기 바쁘고, 빼어난 자연경관 청정 이미지를 내세우는 블루로드 탐방로 바로 그곳에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려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활개치고 있다. 여태까지 청정 동해안 자랑은 결국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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