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구구 팔팔’이란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의미다. 누구든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은 복 받은 일이지만 여기에는 막대한 노후생활 자금이 따르게 된다. 아무리 100세 시대에 건강하게 산다고 해도 스스로 생활자금이 여의치 않다면 삶이 고단할 것이고 그야말로 힘든 세월을 보낼 것이다. 축수(祝壽)가 모든 이들의 바람이라 하더라도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경제력이 요건으로 대다수 사람들은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해 연금을 준비한다.

공무원은 평생 직업공무원으로서 국가에 봉사하고 그에 상응하는 연금을 받을 테이고, 일반국민은 직장 생활에서 여유 자금 또는 노후 자금을 설계해 국민연금 등으로 준비하게 마련이다. 일반인은 개별적으로 준비해야 하지만 공무원은 공직 수행 자체가 별도의 이익을 얻는 사적인 일들이 아니므로 공직자들이 한평생 국민에게 봉사하게 하는 대가로 노후생활의 비용을 연금 등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제도상으로 보장받고 있는 공무원의 노후 설계가 기우뚱거리고 있다. 한마디로 공무원에 대한 당연한 국가의 노후 보장책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이 시작된 1960년 당시에는 국민 평균 수명이 52세였지만 의료기술, 건강상태가 좋아짐에 따라 2012년 통계를 보면 82세로 30년이나 늘어났다. 수급자가 연금 받는 기간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이야기인데, 연금재정 수지 불균형으로 공무원연금 재정이 압박을 받는 등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그러한 연유로 해서 박근혜 정부에서는 공무원연금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덜 내고 더 받는’ 구조에서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꾸기 위해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런 과정에서 연금개혁의 필요성은 당연했지만 국민 동의와 여론을 얻기 위해 국민연금과의 비교를 내놓았다. 공무원연금 평균액이 219만원임에 비해 국민연금 평균액은 85만원에 불과하다며 양대 연금에서 형평성의 문제를 들추고 나오면서 국민여론에 호소하고 있다.

정부에서 공무원연금을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국가재정에 엄청난 부담이 될 거라는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은 여러 가지가 다르다. 같은 사회보험 기능을 갖고 있지만 이밖에도 공적공무원연금은 퇴직금, 인사제도상 보상 등이 포함돼 있다. 또한 국민연금은 10년 이상 부담하면 수령할 수 있는데 비해 공무원연금은 20년 이상 불입해야 수령이 가능하며, 당사자 부담 면에서도 국민연금은 4.5%를 납부하지만 공무원은 7%를 부담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보장적 성격의 공적연금제도로서 공무원연금과는 제도 도입의 취지와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단순 비교가 적정하지 않음에도 양대 연금을 비교해 형평성을 따지는 것은 문제가 따른다. 본래 공무원연금제도는 퇴직금을 핵심으로 하는 것으로서 정부가 피고용인으로서의 공무원에게 당연히 지급해야 할 퇴직금과 기타 거치(据置)된 보수로 지급하는 것이므로 이는 정부의 의무이고, 국민 세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마땅함이다.

현재 국회 내에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운영되고 있고, 또한 국민대타협기구가 열려 공무원연금을 개혁하기 위해 합의점을 찾고 있다. 당·정·청은 5월 2일로 시한을 정해놓고 있지만 새정치연합에서는 날짜부터 못 박고 토끼몰이식 개혁안 처리에는 반대 입장을 보인다. 정부안이나 새누리당에서는 적자만 강조하지 공무원연금에 대한 정부 지출규모가 외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낮다는 사실과 과거 정부의 방만한 운영 사례에 대해서는 눈감고 있다.

공무원연금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부담 비율 10.4%는 미국의 35.1%, 독일의 56.7%, 프랑스의 62.1%에 비해 매우 낮다. 우리 정부의 부담률을 1로 보았을 때 미국은 5배, 영국은 6배, 프랑스는 무려 8배나 되는데 이 자체가 공무원연금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 공무원연금 보장책으로 인해 퇴직금이 민간부분 종사자 퇴직금의 6% 내지 39%에 불과하지만 공무원은 울며 겨자 먹기다. 공무원 퇴직금은 사용주로서 정부가 당연히 부담해야 맞지만 이마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부담하게 되니 공무원연금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하기 쉬운 말로 “국민연금에 비해 공무원들이 특혜를 받는다”거나 “이런 상태로 나가다가는 국민세금이 엄청 늘어난다”는 등 국민에게 어필될 수 있는 말들로 홍보한다. 하지만 그 당사자들인 106만 공직 재직자들과 34만여 수급자들은 정부의 과소한 부담률, 과거 잘못 운영된 연금관리 등 잘못을 알고 있으니 반발하기 마련이다. 퇴직금에서 크게 손해를 보고서도 공무원연금으로 노후 생활 보장책으로 삼으려는 공무원을 국민과 대결의 장으로 내몰아서는 국민화합에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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