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평론] 늦둥이를 둔 딸바보, 은녕이 아빠가 멋지다
[아침평론] 늦둥이를 둔 딸바보, 은녕이 아빠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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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기묘한 모습의 산들과 구비치는 강물이 조화를 이루는 절경이 중국 구이린(桂林: 계림)이다. 지난주에 필자는 8박 9일간 구이린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혹자들이 “중국의 모든 산수화들이 계림에 다 모여 있다”는 말을 입에 오르내리는 바, 여행하면서 직접 보니 그 말에 동감이 갔다. 날씨마저 흐린 날이 많아 흐릿한 안개가 산수를 뒤덮어 신비감을 더하고 있으니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은 중국 현지에서도 인정하는 가히 ‘계림산수제일갑(桂林山水第一甲)’이다.

이번 여행은 가족·친지들과 함께 가는지라 민박을 정하기로 하고, 자유여행에 필요한 사전 준비는 아내가 맡아서 했다. 우리 일행들은 상하이에 도착해서 이튿날 오전 상하이 난짠(南帖)에서 침대차를 타고 다음날 새벽 구이린 베이짠(北帖)에 도착했는데, 20시간은 족히 기차를 탔다. 이왕이면 새로운 경험도 할 겸 기차편을 이용해보니 긴 시간 동안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중국의 자연은 광활했고, 산과 들판을 지나면서 보니 유채꽃이 피어 장관이었다.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구이린의 자연절경이라 한국 관광객들이 관광길 도중에 자주 들어보는 “이 산이 아니라 요산이요, 저 강이 아니라 이강”이라는 말처럼, 요산(堯山)과 이강(漓江)은 구이린의 대표적인 산과 강이다. 국내의 진안 마이봉처럼 생긴 기묘한 산봉우리가 무려 3만3000봉에 달하고, 서강으로 흘러드는 이강의 총 길이는 437㎞로 그 가운데 구이린에서 양숴(阳朔)까지 83㎞ 구간은 산수 천하갑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 빼어난 산수를 마음에 담으며 유유히 흐르는 강을 따라 가는 이강 유람은 별천지 같다.

거기다가 중국 송대의 대표적인 시인 도연명(376∼427)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记)에서 나오는 무릉도원인 세외도원,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서가재래시장, 또 하나 구이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계 최대 수상 오페라인 인상유삼제이다. ‘인상유삼제(印象劉三姐)’는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謨)가 소수민족 장족 유씨네 집 셋째 딸 이야기를 그린 극으로 이강의 자연을 이용한 그 장대한 스케일에 놀랄 만하다.

구이린이 중국 산수의 으뜸이라 하니 여행에서 만나는 경치 어느 풍경이라도 시선을 끌고 마음에 와 닿는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 구이린 여행에서 함께 따라나선 민박집 사장 최 선생이 가끔씩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 내력을 듣고 구이린 여행의 절경보다 더 진한 느낌을 받았다. 최 선생은 중국 내 또는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조선족이다. 어린 시절을 흑룡강성 하얼빈 인근의 오상시(五常市)에서 자라난 그는 고향 처녀와 결혼한 뒤에 아내가 임신이 된 상태에서 집에 남겨두고 1995년 불법적인 방법으로 한국으로 건너왔고, 그의 아내는 3년 후에 세 살배기 아들을 시부모에게 맡겨놓고 남편이 있는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최 선생은 아내와 함께 경기도 안양과 서울의 신길동 등을 전전하며 힘들게 일해 그간 벌인 돈으로 1988년경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 아파트를 마련해주었다 한다. 그 후에도 수원 등 수도권을 다니면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열심히 일했고, 그동안 한 번도 그리운 고향집에 못 가보고 아들 얼굴을 모른 채로 힘든 세월을 보낸 게 그럭저럭 15년이었다 한다. 최 선생은 부모님과 생이별 같은 헤어짐과 아들에게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통한의 세월이 물질적 보상으로 되랴마는 어느 정도 계획을 이루자 2009년 12월 중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최 선생 부부는 중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가 친구의 조언을 받아 관광지인 구이린에서 민박업을 하기로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구이린으로 왔다. 시정부가 들어서 한창 발전되는 신시가지에 200㎡(60평) 아파트와 차 한 대를 사고서 중국 내 한국인과 한국에서 관광오는 여행객을 위해 민박을 했는데, 그때 둘째 아이 은녕이를 낳았으니 이름을 ‘은녕이네 민박’으로 정했다 한다. 계림에 자리 잡고서 고향에 있는 아들을 불렀으니 가족이 헤어진 지 15년 만에 만나게 됐고, 그 아들이 이젠 고등학교 2학년생이고, 은녕이는 유치원생이다.

그동안 겪은 고생담을 여행 도중 간간히 들려주는 최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간 나누지 못했던 가족 사랑이 진하게 묻어났다. 독자로서 고향 오상에 계신 부모님에 대한 봉양과 함께 오랜 세월 잘하지 못한 아버지의 역할, 그리고 무엇보다 늦둥이 은녕이에 대한 애정이다. 늦둥이 딸을 위해 30년간 피우던 담배도 끊었고, 아이가 해달라는 것은 거절 못하지만 단 한 가지 집에서는 중국말 대신 조선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에는 엄격하다. 조상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는 게 최 선생의 철학인 바, 며칠간 여행하면서 지켜본 그는 딸바보가 틀림없었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재중교포로서 동북지방의 기질 있고 일에 책임성 강한 멋진 중년의 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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