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설 연휴가 끝이 났다. 이번 명절에 귀성객수가 3300만명에 이르고, 또 해외로 놀러나간 사람들이 78만 6000명이라 하니 우리나라 인구 세 명 중 한 명꼴로 이동했으니 가히 민족의 대이동이라 불릴 만하다. 귀성객들이 고향 또는 연고지를 찾아 명절을 보내면서 오랜만에 가족·친지나 지인들과 어울려 쌓인 회포도 풀고 이런저런 내용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친지들 안부 외에도 근간에 나돈 정치이야기가 안주가 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단골 메뉴가 됐다.

대체적으로는 최근 인사청문회를 어렵사리 통과해 국무총리로 임명된 이완구 총리와 관련된 내용과 과연 책임총리로서 몫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의문이었다. 한편으로 직장인들이 있는 집안에서는 계속되는 경제 침체와 더불어 생활이 팍팍하다 보니 연말정산, 서민증세 등과 관련된 불평이 쏟아졌다고 전한다. 이와 함께 단골 메뉴인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 내지 청와대 인사 등과 관련된 말들도 많았다는데, 설날 직전에 박 대통령 지지도가 35% 선을 회복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것이고, 여차하면 다시 20%대로 하락할 수 있다는 말도 들렸다.

새 정부 출범 후 2년이 됐다. 대통령 임기가 아직 3년이나 남아있건만 생각해보면 답답한 세월이 한참 지난 것처럼 여겨진다. 국정지지도만 놓고 본다면 30% 선에서 왔다 갔다 하니 마치 임기 말처럼 느껴지는 바, 이런 현상들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당초 기대감에 못 미친다는 생각의 발로(發露)에서다. 대다수 국민은 최초 여성대통령이 탄생한 만큼 어려운 국민의 입장을 샅샅이 잘 보살피는 모성애같이 자혜롭고 섬세함으로 더 좋은 세상을 꿈꾸어온 것은 사실이다.

이왕이면 당초 약속한 바 ‘국민이 행복한 시대를 열겠다’고 했으니 ‘국민행복호’가 운행돼야 할 시기, 적어도 박 대통령의 임기 말까지는 국운 상승과 더불어 사회 갈등이 봉합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잘 사는 사회가 되기를 국민은 간절히 기대하며 견디어왔다. 하지만 박 정부에서는 천금 같은 출범 초기 2년을 인사 파문과 소통(疏通) 불통으로 지새웠다는 국민 불평이 들끓었고, 사회 갈등이 여전히 이어진 가운데 급기야 국정 2년차에 ‘세월호’ 풍랑을 만나고 말았으니 막힌 곳은 뚫고 부실한 데는 튼실하게 고쳐야 할 황금 타임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사정이고 보니 전문가 그룹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2년간 국정 운영 성적을 낙제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나마 외교·통일 분야에서 잘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점은 국정운영 당사자들이 위안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겠지만 무엇보다 대통령의 자질·리더십 부족, 국민과 소통 부족, 낡은 사고와 구시대적 상황 인식이 잘못됐다는 전반적인 평가다. 구체적으로는 경제민주화, 인사정책, 국민대통합의 실패라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위정자는 물론이고 국민도 한 번쯤 냉정히 생각해봐야 한다. 대한민국의 장래가 지도자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게 분명 아닐진대,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자의 몫만으로는 국민 된 의무를 다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지나간 2년보다 앞으로 남은 대통령 임기가 더 많은 시점에서 과거만 내세울 일이 아닌 것이다. 국정 성적이 왜 낙제점이며, 지도자 리더십이 왜 제대로 먹히지 않았는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한데,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으니 과거에만 집착해 미래를 속단할 것은 아니다.

지난주엔 30%대 중반까지 회복됐지만 최근 한때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29%까지 하락했다. 가까스로 인준안이 통과된 이완구 총리에 대한 국민의 반감과 부정 평가는 청와대가 국민의 눈높이를 못 맞추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말도 들린다. 중점 과제인 경제정책은 가시적 효과가 없고 국민대통합은 지지부진할 뿐이며, 기회 될 때마다 정부가 ‘학벌보다는 능력사회’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고 강조하건만 실상 우리 사회에서 느껴지는 것은 실속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점인데, 이런 것들이 설 연휴 기간 중 재확인된 여론이기도 했다.

이번 설 연휴에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다녀오면서 교통난으로 고생했어도 가족·친지들과 또, 오랫동안 만나지 못 했던 지인들과 함께 정을 나누고 넉넉한 설날의 덕담을 주고받았을 터. 가족 간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우게 됐고 고향의 존재로 인해 행복했고, 위로받은 풍성한 설 명절이었다. 이제는 설 연휴가 끝났으니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각자 사회 영역에 복귀하지만 설 연휴 같은 넉넉하고 흐뭇한 기분이 이어져 사람 향기 가득한 세상이면 더욱 좋겠다.

그런 생각에서 오랜만에 위당 정인보(1893∼1950) 선생이 작시한 ‘새해의 노래’ 한 구절을 불러보니 기분마저 새롭다. “온 겨레 정성덩이 해돼 오르니 올 설날 이 아침야 더 찬란하다. 뉘라서 겨울더러 춥다더냐.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정말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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