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4.29 재보선 결과를 두고서 “무대에게 본격적인 무대가 열렸다”는 평이 났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완승을 거두었으니 응당 김무성 대표를 두고 정치권에서 한 말이다. 선거 초반에 ‘성완종 게이트’가 터지는 등 악재 속에서 설령 새누리당이 한 석을 못 건지다고 해도 김 대표에겐 흠이 가지 않을 이번 선거판이었으니 김 대표에게는 땅 짚고 헤엄치는 판세였다. 그럼에도 여당 대표가 앞치마를 두르고 새줌마(새누리당+아줌마)란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까지 경제문제를 언급하고, 사사건건 야당 대표를 겨누는 세심한 전략까지 썼으니 그의 공이 컸다.

‘무대’라 할 때에 일반적으로는 ‘재능이나 역량을 발휘하거나 나타내기 위해 활동하는 장소나 분야’를 일컫기 마련인데, 한글로는 그 기회 얻음을 뜻하는 좋은 의미의 용어를 여당 대표가 별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에게 ‘무성대장’의 준말로 ‘무대’라는 별명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 준말을 모르면 어째서 무대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대는 ‘지지리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 말의 원천은 중국 소설 ‘수호지’에 나온다. 중국 원나라 때 시내암이 쓰고 명나라의 나관중이 다듬은 통속소설인 ‘수호지’에 등장하는 반금련의 남편이 바로 무대(武大)다. 소설보다는 오래전 우리나라 성인만화가 고우영 화백이 그린 만화가 인기절찬리에 연재되기도 했으니 무대 이야기는 그 당시 만화를 즐겨본 사람들에게는 잊지 않고 각색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튼 무대는 만두를 팔며 가난하게 사는 볼품없는 인물로 어쩌다가 천하절색인 반금련을 아내로 맞이하게 됐는데, 결국은 정부(情夫)의 꾐에 빠진 반금련의 독살로 제명을 살지 못한 인물이다.

변변치 못했던 중국소설 속의 무대와는 달리 무성대장, 무대는 이번 재보선으로 인해 앞으로 정계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장래에 촉망되는 정치의 주인공으로서 무대를 만나게 됐다. 혹자는 현재에도 여당 대표의 지위에 있고, 여권의 대선후보 1위를 달리고 있는 참에 앞으로 그의 행보가 더욱 거리낌 없으리라는 관측을 하고 있다. 아마도 박 대통령이 지난번 중남미 순방 직전에 이완구 전 총리 거취 문제로 김 대표와 독대한 사실에서도 여권 무게의 추가 청와대보다는 여당으로 한층 기울 것이라는 게 더해진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예측이기도 하다.

당장의 정세만 봐도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生物)과 같아서 언제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일이다. 일부 여론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가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당이 유리한 여건에서도 현실 대응을 잘 못하고 선거전략적 실패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음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예리한 국민의 잣대를 멀리하고 당장은 자기들이 잘나서라든가, 또는 선거 과실(果實)에 자만하면서 거만을 자세로 일관한다면 다가오는 총선이나 대선에서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경고등을 비추는 등 복잡하게 흐른다.

그런 정세 흐름을 정치적인 대부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입신양명(立身揚名) 해왔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무대(무성대장)가 모를 리가 없다. YS 밑에서 정치를 배운 뒤, 현장 실습으로 김영삼 정부시절 40대 초반에 민정수석에 이어 내무부 차관직에 올랐으며, 또한 YS의 지원으로 1996년 15대 총선에서 여의도에 입성한 인물이 아니던가. 그랬으니 5선을 하고, 여당 대표를 맡을 때까지 정치적 위기와 고난이 닥칠 때마다 특유의 현실 타개책으로 잘 타협하면서 고비고비를 잘 견뎌 왔던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다음 대통령을 만들어줄 수는 없어도 떨어뜨리게 할 힘은 있다’는 YS의 지론과 그 현실로 입증됐던 과거사를 잘 알기에, 무대는 현실정치의 난관을 YS 장학생답게 잘 처리해왔다. 18대 대통령 당 경선에서는 친박 쪽에 있다가 이명박 정권에서 원내대표로 돌아서고, 다시 시류를 타고서 박 대통령의 관심선 안에서 기웃거리는 노력을 보이는 무대다. 지도자와 믿음의 경계선 주위를 들락날락하면서도 현실에 기반을 둔 타협을 견지하는 것이다.

4.29 재보선에서 도랑치고 가재까지 잡은 무대는 탄탄히 다져진 입지로 여당의 명실상부한 대권 선두주자로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는 주변의 평가는 일리가 있다. 과연 그는 지금까지 숱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오면서, 그 위기를 극복하는 대처술은 정치 9단인 YS의 문하생답다. 그렇지만 이번 선거에서 정치적 지략으로 한 고비를 넘긴 김 대표는 주변에서 부르는 ‘무대(武大)’라는 별명이 혹여 한글사전의 뜻과 같이 ‘지지리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비유되는 ‘무대(武大)’로 둔갑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성을 가져야 한다. 간혹 언론에 비쳐지는 거만함의 가십성이나, 또 지금까지 보여 온 왔다갔다 행보를 설마 무성대장이 반복하겠으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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