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모 여행사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꽤 흥미롭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연령과 성별에 불구하고 100명 중 99명 정도가 국내외 여행을 즐긴다는 통계가 나왔는데, 이를 보면 경기불황기라도 ‘여행은 간다’는 게 직장인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여행계획 조사는 개인을 대상으로 했겠지만 직장인이니만큼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 많을 것이다. 이처럼 여행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보편화됐고, 가정사나 직장일만큼 소중히 다뤄지고 있는 요즘이다.

해외여행이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인 1980년대 중반기만 하더라도 외국여행을 다녀온 당사자들은 ‘가문의 영광’으로 여길 만큼 우쭐했고 주변의 부러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1989년 여행 규제가 풀리자마자 해외여행 러시로 이어져 그해 출국자수가 100만명을 돌파했고, 여행 자유화 25년째인 지난해는 1500만명이 해외여행을 다녀왔으니 이젠 외국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런 사정이다 보니 불경기 속에서도 여행업계는 바쁘다. ‘황금 설 연휴’ 해외여행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바, 2월 18일에서 22일까지가 설 연휴 기간으로 연휴 전에 이틀 휴가를 내면 최장 8박 9일 동안 쉴 수 있다는 대대적인 홍보전이다. 그 기간을 이용해 유럽과 남태평양 등으로 장거리 여행 상품을 내놓고 여행객들의 여심(旅心)을 부추기고 있다. 또한 연차 휴가를 내지 않더라도 해외여행 5일을 즐기려는 여행객이 급증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리는 가운데, 인천공항 측은 연휴기간 중 해외여행객이 78만명을 넘어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누구에게나 여행은 마음 설렘의 기대감과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복잡한 일상에서 겪던 일들을 홀가분히 떨치고서 볼거리, 쉴 거리, 먹을거리가 많은 여행지에서 가족이나 친지, 지인들끼리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라. 저절로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편안해지며 마음에 여유가 찾아들게 마련이니 그러기에 많은 직장인들은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는 것이다.

여행은 국내외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많이 할수록 다다익선이다. 국내여행지 중에서 가볼 만한 곳이 많고 그곳을 다녀오는 일이 즐거울 테고, 언어와 환경이 다른 해외여행도 한껏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필자는 직장에 다닐 때 공무 또는 휴가차 유럽, 미주, 호주 등과 아프리카 등지를 다녀온 바 있다. 그 당시 기차를 타고 알프스 산을 넘던 때의 경이함, 이집트 스핑크스 지하굴로 들어설 때의 긴장감, 또 시드니만의 해변 풍경과 함께 오페라하우스 지붕에 반짝이는 햇빛 등 기억 속 풍경은 오래된 추억이긴 해도 내 마음속에서 자양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필자는 가족들과 함께 1년에 한두 번씩 중국 자유여행을 다닌다. 가까운 곳을 다녀오는 것이 경비 면에서도 유리하지만 베이징(北京), 시안(西安), 쑤저우(苏州) 등 역사가 있는 유적지를 둘러보기, 또 번영하는 도시나 풍광 좋은 경관지를 보며 생각의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다. 여행에 따른 직접 이득도 따르지만, 특히 형제 등 가족 여럿이서 가까운 외국여행을 다녀보면 평소 느껴지는 가족애보다 훨씬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또한 좋다.

사실 따져보자면, 많은 사람들에게서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마음 편히 보고 즐기는 해외여행의 진수(眞髓)를 느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퇴직 후 그것도 회갑을 지난 시기에야 가능한 일인데, 이때는 건강과 경제력이 주안점이 된다. 그래서 필자는 잡비와 생활비를 아껴서 시간적 여유가 되는 친지들과 가능한 한 여행을 자주 하고 싶은 마음인데, 아직도 건강해 걸을 수 있어 적은 경비로 함께 하는 자유여행이야말로 삶의 여유를 주는 계기라 생각해본다.

지난해 봄에는 집사람 회갑 기념으로 둘이서 중국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무려 20일간 중국에 머물면서 상하이, 쑤저우, 우시, 난징, 양저우 등 도시를 샅샅이 구경했다. 한 도시에서 3∼4일간 여행하다 보니 그곳의 관광지나 유명한 곳은 다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자유여행을 한다고 해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아껴 쓰면 한 사람이 드는 여행사 패키지여행 4박 5일 경비(100만원 정도)로 가족 둘이서 최소한 10일간은 자유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지난해 전체 출국자 가운데 개인 자유여행 비중이 60%를 넘고 보니 여행사 패키지여행보다 개별 자유여행이 대세로 보인다. 자유여행의 장점은 무엇보다 시간에 쫓기지 않아서 넉넉하게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관을 보다가 힘들면 쉴 수 있고, 지치면 다음날 다시 여행길에 나서면 되는 것이다. 봄이 오는 춘삼월에 필자는 가족·지인들과 함께 열두 번째 중국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바 이번엔 산수 좋은 계림행이다. 무릇 ‘인생은 여행’이라는 그 말을 믿고 이제는 느림의 미학과 여유를 갖고서 자유여행을 즐길 계획이니 한껏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