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1971년에 창립된 세계경제포럼, 일명 ‘다보스포럼’의 올해 정기총회가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다. 매년 초 세계의 저명한 기업인·경제학자·정치인 등이 모여 세계경제에 대해 토론하고 연구하는 이 포럼은 그해의 경기전망 등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인데,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은 유가 하락이 침체된 세계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호재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참석한 회원국 경제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의 청신호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세계 석학들은 향후 몇 년간 세계경제가 주목할 만한 성장을 하긴 어렵다고 예상하면서 세계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총회 폐회 인사에서 슈바브 세계경제포럼 총재는 “세계 경제 위기가 현실화하면서 세계가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으로 빠져들고 있다”며 걱정했는바, 이 말은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적 현실과 경기 부진 대처 해법과 무관하지 않아 정부가 새겨들을 말이기도 하다.

세계경제의 어려움이 국내에도 이어지고 있어 정부가 각종 경제정책을 내놓고 있으나 우리 경제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는 세계경제 석학들이 진단하고 있는 내용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 최근 발표된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9분기 내 가장 낮은 0.4%로 떨어졌다. 2012년 3분기에 0.4% 경제성장률을 보인 이후 2년 3개월 동안 가장 낮은 수치인데, 이 같은 영향으로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정부 전망치보다 낮은 3.3%로 나타났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수출 부진과 세수 부족으로 인한 SOC(사회간접자본) 투자 축소 영향이 컸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으로 성장을 이끌었던 수출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는바, 대중국 수출의 둔화에서 비롯됐다. 중국기업의 빠른 성장세로 인해 지금까지 활황세를 탔던 가공무역, 중계무역 등 무통관수출이 지난해 하반기에 들어 크게 위축됐다는 것이고, SOC 투자가 줄어든 탓에 건설 투자마저 급감해 성장률 하락폭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실, 정부가 2014 예산을 편성하면서 복지예산에 중점을 두면서 2013년 세수 결손 8조 5000억원으로 인해 SOC 사업비가 전년비 4.3%(1조원)가 감소됐다. 그 여파로 신규 도로 건설이 중단되는 등 건설 투자 감소로 인해 통상적으로 GDP에서 15% 정도를 차지하는 건설 투자가 지난해에는 9.2%로 급감했는 바, 이 수치는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 1분기 실적 9.7% 이후 16년 만에 건설 경기가 가장 침체 상태를 보였으니 건설업체의 피해가 막심했다.

SOC사업은 사회기반시설 확충으로 어느 정부든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기본 사업이다. 가뜩이나 경제 침체가 지속되는 상태에서 SOC사업비가 줄어들다보니 건설 경기 불황으로 인해 부도나거나 워크아웃된 국내 건설회사가 속출했다. 대표적 SOC 사업은 고속도로 건설이다. 2013년 기준으로 원도급 19개사, 하도급 8개사가 부도 및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특히 상주∼영덕 노선은 9개 공구에서 8개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 공사 차질을 빚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정부나 민간경제에서 올해의 화두는 역시 ‘경제 살리기’다. 정부에서는 경제를 살리려고 온갖 효과적 정책을 동원하고 조기에 예산을 집중하는 등 안간힘을 다 쓰고 있다. 하지만 경제문제는 그 자체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는 데다가 국내외적으로 연계가 되어 있고, 또 변수가 워낙 많아서 정부예산을 쏟아 붓는다 하여 단시간 내에 경기가 회복하기란 불가능한 성질이 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딥 팩터(deep factor)’를 지니고 있는 경제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10년 후 미래’라는 책을 쓴 미국 뉴욕대의 대니얼 앨트먼 교수는 그 책에서 ‘딥 팩터’는 국가의 경제운명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했다. 이는 단기간에 변하기 힘든 한 국가의 경제성장에 미치는 요인으로 ‘지정학적 위치’ ‘정치제도’ ‘인구’ ‘교육수준’ 등이 포함된다고 했는바, 현재 우리의 경우를 대입해본다면 경제구조만큼이나 복잡다난(複雜多難)하다.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위치나 분단 현실, 정치제도와 불신 받는 정치권, 위정자들의 위민관(爲民觀), 사회계층 간 갈등이나 저출산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경제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운명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들 중 몇 분야가 정상 진행된다고 해도, 또 국제적 영향 요소들까지 살펴야 하는 처지라 ‘경제 살리기’는 요술방망이 휘두르듯 해서 될 일은 분명 아니다. 그렇지만 세계경제 석학들이 다보스포럼에서 진단하고 전망한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적극적인 기업 투자와 정부의 결단성 있는 구조 개혁이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들이 왜 투자를 꺼리는가를 진단해 처방하고, 더불어 경제 구조와 사회시스템을 개혁해 경제 운명의 길을 바르게 접어들게 해야 한다. 국민 걱정과 부담을 덜어주는 게 ‘좋은 정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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