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평론] 아직까지 안녕들 못한 청춘들을 위한 노래
[아침평론] 아직까지 안녕들 못한 청춘들을 위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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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아침 일과를 마치고 서재로 돌아오면 내가 먼저 하는 건 핸드폰에 수록된 녹음 목록을 열어 노래를 켜는 일이다. 영화 ‘졸업’ 주제곡이기도 한 ‘스카브로우의 추억’ 노래를 켜면 컴퓨터에서 노래가 흘러나와 듣기가 좋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감미로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젠 기억조차도 희미한 영화 ‘졸업’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전부는 기억할 수 없고 몇 부분, 주인공 젊은이가 버스를 타고 떠나는 장면과 함께 은은히 울리던 노래는 환상적이었다.

‘졸업’은 1967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불륜을 소재로 한 내용이라 다소 논란이 일기는 했으나 그 당시 미국사회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대한 젊은 세대의 저항과 도전을 다룬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 벤자민(더스틴 호프만 분)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과 방황이 잘 나타나 있는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을 결혼식장에서 낚아채어 도주하고서 버스를 타고 가는 장면이 인상적인 명장면으로 각인되고 있다.

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세밑에서 굳이 이 영화를 언급하는 것은 그 주제곡인 ‘스카브로우의 추억’ 노래를 들으면 가수들의 감미로운 음성에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다. 또 하나는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번민에 대해 신경이 써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졸업’ 영화는 그 당시, 현대를 사는 미국 젊은이들의 고뇌가 깃들어 있는 작품으로 불안한 미래를 앞둔 주인공 벤자민의 방황을 통해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대표작이어서 애착이 간다.

각설하고, 꼭 1년 전 연말 이 시기에 세인들에게 널리 회자(膾炙)된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안녕들 하십니까’였다. 당시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주현우 씨가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청년들에게 근황을 묻는 내용의 대자보를 학내에 붙였다. 2장짜리 손자보(손으로 쓴 대자보)에는 사회 전반의 주요 문제가 지적돼 있었으니, 이를 기화로 ‘안녕하지 못하다’는 내용들이 전국의 대학 및 곳곳으로 확산돼 사회 각계각층에게 뜨거운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한동안 유행어가 되기도 했던 ‘안녕들 하십니까’는 그 후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안전불감증 등 사회문제와 지방선거 등으로 주춤했다. 그러나 다시 한파가 들어 닥치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연상케 하는 대자보가 다시 붙었다. 젊은이 성향의 ‘미스핏츠’가 서울 신촌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과 안암동 고려대 후문 게시판에 ‘최씨 아저씨께 보내는 협박 편지’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으니 세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주현우 씨의 대자보는 대학졸업생이거나 졸업을 앞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불공정하고 불의의 사회 조건에 대해서 무관심을 갖는 세태를 꼬집는 것이라 한다면, 미스핏츠의 대자보에는 20대가 겪는 자살 문제와 학비로 인한 부채, 취업난 등 내용이 포함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 어깨가 처진 젊은이들의 원성이 담겨져 있다. 특히 정규직 과보호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최경환 경제부총리에게 ‘최씨 아저씨’로 지칭하면서 같이 먹고 살자는 생계형 협박이다.

이 같은 젊은이들의 행동은 이념 추구보다는 당장 힘든 현실을 직시하는 문제들이다. 과거와 같이 ‘민주주의를 사수(死守)하자’는 암흑기에 대항하는 글이 아니라 눈앞에 닥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혼란을 제어하기 위한 젊은 세대의 절규(絶叫)가, 막다른 골목까지 와버린 청춘들의 처절함이 대자보로 나붙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도 정부나 위정자들이 서민들이나 사회 진출에 앞서 빚쟁이로 전락해버린 대학생들을 위한 대책은 없으니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작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안녕하지 못하다’는 답글로 어수선한 세밑을 보냈으니 올해엔 좋은 일로 보상받기를 젊은이들은 기대했다. 하지만 사고가 겹쳐 더 큰 시련과 고난을 겪은 한 해였으니 ‘세월호 참사’의 여파는 메가톤 급이었다. 평소 ‘국민행복’을 외쳐온 관료들이 엮어낸 관피아 행각으로 어린 학생들이 희생되고 국민 불안이 가중된 한 해였다. 더하여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2030 ‘삼포 세대’의 가슴에 낙담을 심어주는 데 안성맞춤의 한 해였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현실이 힘들다고 희망의 노래를 포기해선 안 된다. 청춘 특권인 야망과 올곧음으로 현실에 참여해 기득권의 장막을 거두는 일에 당당히 나서야 한다. 그럴진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의 야망이여선 안 된다. 이기적인 것만을 구하는 야망이여선 안 된다. 명성과 같은 허황된 것을 위한 야망이여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여러 것을 성취시킬 수 있는 그런…’ 바로 이것! 윌리암 클라크 박사의 명언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ous)’는 젊음의 특권, 희망가가 천지를 진동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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