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지 120년이 되는 해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반외세의 기치를 들고 일어난 민중항쟁인 동학농민혁명은 근현대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동학(천도교)의 사상과 교단을 중심으로 수많은 민중이 뜻을 함께하며 나라와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고자 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 조선 말 당시 만연했던 불평등 의식을 깨뜨리고 인간 존엄성 회복과 자유민주화 사상 그리고 외세로부터의 나라를 지키려는 정신은 이후 3.1운동으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역사학계의 거목이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역임한 이이화(77) 박사를 만나 오늘날 이 시대가 이어받을 동학농민혁명의 정신과 사상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 역사학자 이이화 박사. ⓒ천지일보(뉴스천지)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릴레이 인터뷰② - 역사학자 이이화 박사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동학농민혁명은 20세기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꾼 세계사적 사건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실패한 혁명으로 남겨져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역사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한국 근대사가 왜곡되고 일제의 식민사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역사학자 이이화 박사는 기성 학계의 기존 방식을 과감히 탈피하고, 1980년대부터 혈혈단신 전국을 돌아다니며 동학농민군의 흔적을 찾아 고증하고 사료를 발굴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면서 학문적 체계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동학농민혁명은 무엇일까.

◆“민족운동·인권운동의 효시”

“동학농민혁명은 세계사에 내세울 수 있는 중요한 역사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백성들이 들고 일어선 최초의 민중봉기(혁명)입니다. 여러 난이 있었지만 다 국지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함경도와 평안도 빼놓고 전국적인 규모로 일어났습니다. 조선시대는 신분 계급사회였습니다. 토지제, 신분제, 남녀차별 등 조선 사회의 근간을 송두리째 바꾸려는 일대 혁명이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천하 만인이 평등하다는 인권사상과 대외적으로 자주국가라는 사실을 알리는 반외세의 기치를 부르짖었습니다. 그 혁명의 정신은 3.1운동에까지 이어졌습니다. 민족운동의 효시, 인권운동의 효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올해로 120년의 세월이 흘러왔다. 60년을 회갑으로 하면 2주갑을 맞았다. 이이화 박사는 “1954년 60주년 때에는 6.25전쟁의 포성이 멈추고 정전된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관심이 많이 없었고, 동학농민군에 대한 연구가 초보적인 단계였다”며 “시간이 지나 100주년(1994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기리며 지역별로 행사를 이어오다가 14개 단체가 모여 ‘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단체협의회(동단협)’를 결성해 100주년 행사를 잘 치렀다”고 말한다.

이후 학계와 단체의 노력 끝에 2004년 국회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하고 공포되면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혁명의 정신 대중문화로 꽃피길”

조선 왕조가 바라볼 때에는 동학농민혁명은 사회 구조의 근간을 흔들고 파괴하는 반국가 조직이 일으킨 난이었다. 그래서 ‘동학난(동비의 난)’으로 기록했다. 일본은 ‘동학당’으로 불렀다. 일제 말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농민’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해방 후 천도교에서 동학혁명이라는 용어를 쓰고, 여러 관련 단체에선 동학혁명 등 다양한 호칭을 써 오다가 김대중 정부 들어서 그 의미와 뜻을 기리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아직도 다양한 명칭을 쓰고 있다. 북한은 종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동학’이라는 단어를 빼고 갑오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갑오농민전쟁’이라고 쓴다.

이이화 박사는 “혁명의 주체는 ‘동학’과 ‘농민’이기 때문에 두 단어는 빼놓을 수 없다. 일부에서 혁명의 정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운동’이라는 용어를 붙이고 있다.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우리 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도 계승해 널리 알려야 한다”는 소견을 밝혔다.

이 박사는 “그 정신과 사상은 크지만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는 아직까지 미약한 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로 더 알려지고 꽃피길 원한다”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문학, 음악, 연극,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예술적으로 대중화하는 작업이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끝으로 그는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은 3.1운동의 백주년기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천도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유족회 등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준비해야 한다”며 “하나가 되면 정부에서도 적극 도울 것이다. 북한도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인정하고 있다. 이 정신을 잘 살려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