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신의 시를 본인이 낭송하는 테이프를 만들고 싶어요.”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그럼 음성 테스트부터 해볼까요?”

스튜디오 테스트를 해보니 목소리가 끝내주었다. 그러니까 얼굴에도 목소리에도 당장에 반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못 배웠으니 어쩌면 좋은가? 그래도 다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한국이 그녀에게 물었다.

식사 안 하셨죠? 함께 드실까요?”

, 좋아요.”

이때 그녀는 녹음실 사장이 하자는 대로 안 하면 무슨 불이익이라도 당할까봐 순순히 따라갔다고 한다. 식당에서 한한국은 그가 녹음한 테이프들과 테이프 제작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찾아오는 손님 중에는 금방 녹음작업을 할 듯이 굴다가도 약속을 안 지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제작비는 싸되 녹음상태가 좋다는 자랑과 함께 그녀에게 제작비는 묻지 말라고 했다. 자신의 판단 여하에 따라 투자도 가능하다고 언질을 주었다. 그러나 사실은 제 발로 찾아온 귀인을 꼬일 목적에서였다.

음악은 어떤 걸 선곡할까요?”

가수도 하셨다면서요? 사장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제가 워낙 바빠서요.”

그녀는 글짓기 강의에 강연도 다니고, 장관 집 아이 과외도 할만큼 무척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그날 서로의 가족 이야기까지 나눈 후 헤어져 잠자리에 드는데 한한국은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로 얼마 전 신림동 점쟁이의 예언처럼 얼굴도 목소리도 너무 예쁜 그녀에게 홀딱 빠져버린 것이다. 예전에도 사귀던 여자가 둘이나 있었지만 그녀들은 한결같이 그의 노래나 글씨를 좋아하지 않아 결국 둘 다 헤어지고 말았다.

한 가지 문제는 윤소천 시인이 한한국보다 네 살이나 연상이란 점이었다.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남자의 배우자는 으레 연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기였다. 한한국 역시 서로의 집안 얘기라든지 살아온 과정에 대해서만 말을 주고받으면서 선뜻 더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결정적인 인연이 될 상담을 해왔다.

저의 시낭송 테이프와 시집과 함께 시화전을 하고 싶어요. 근데 멋지게 시화전의 글씨를 써줄 사람이 없네요. 그동안 여러 서예학원을 찾아다니며 글씨 써줄 분을 찾아봤지만 한문은 잘 써도 한글 잘 쓰는 분은 별로 없더군요.”

그래요? 그럼 제가 써드리지요.”

한한국이 옳거니!’ 쾌재를 부르며 대답했다.

설마요? 사장님이 서예를 하세요?”

, 알고 싶으면 따라오세요.”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수유리의 4.19탑 인근의 아카데미하우스 레스토랑이었다. 한한국은 항상 세필과 먹물 병을 가지고 다녔다. 기회다 싶어 식탁에 놓인 냅킨에 한글과 한자로 산고수청(山高水淸)’이란 글자를 써서 보여주었다.

아니, 어떻게 이리 잘 쓰시죠?”

순간 그녀의 눈빛과 태도가 지금까지와는 180도 달라졌다. 그제야 한한국은 여덟 살 때부터 한학과 붓글씨를 쓰고 군대에서도 모필병을 했던 경력을 소개했다. 또한 가수도 했기에 서예가 가수란 메들리 테이프를 주니까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농담조로 물었다.

서예가 가수이면 성은 서씨이고 이름은 예가인가요?”

이러는 사이 둘 사이가 좀 더 친밀해졌다.

 

한한국이은집 공저

▲ ●작품명: 나눔 ●작품크기: 가로 1m 80㎝ x 세로 1m 80㎝ ●제작년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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