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연재] 평화대통령 한한국 (95)
[논픽션 연재] 평화대통령 한한국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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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아기를 얻기까지 한한국 부부에게는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달콤한 신혼의 꿈은커녕 온갖 고생을 한 아내가 어렵게 임신을 했는데, 이를 기뻐할 짬도 없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임신중독입니다. 경과를 두고 봐야 하지만 산모에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 후 그의 아내 윤소천 시인은 거의 열 달 내내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임산부가 당 수치가 낮아지는 건 치명적인데 나날이 증세가 심해졌고, 합병증도 나타나기 시작해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심정으로 겨우 출산일에 이르렀을 때였다.

‘제발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아내가 견디게 해주세요. 하느님께 이렇게 빕니다.’

아내가 임신중독증으로 위태롭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자 절로 기도가 나왔다. 그러나 그의 예감이 적중하고 있었다.

“한한국 보호자님, 이젠 어쩔 수 없습니다. 아내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아기를 포기하시겠습니까? 각서를 써주셔야…….”

의사도 잔인하게 느껴졌던지 말끝을 맺지 못하고 각서 용지를 내밀었다.

“네에? 뭐…라고요?”

그가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리자 의사가 다시 말했다.

“보호자님,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지금 산모도 아기도 다 잃을지 모를 상황입니다. 그러니 둘 중 누굴 포기해도 좋은지 각서를 쓰셔야 수술에 들어갑니다.”

세상에 어느 시험인들 이토록 해답을 낼 수 없는 문제가 있단 말인가? 온갖 난관을 헤치고 결혼하여 겨우 1년밖에 살지 않은 아내를 포기하라고? 아니, 임신했다고 그렇게나 기뻐했던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기를 포기하라고?

‘야, 이 개새끼야! 너라면 누굴 포기하겠냐? 말해 봐, 말하라고?’

그때 한한국은 의사의 멱살을 잡고 패대기쳐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반대로 수술실 문 앞에서 힘없이 꺾어지며 무너져 내렸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의사의 다급한 채근에 가까스로 일어난 한한국이 아기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썼다.

‘살려주십시오, 제가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하지 않아도 좋으니 아내도 아기도 살려만 주십시오, 네?’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간 후 그녀와의 온갖 추억들이 슬로비디오처럼 흘러갔다. 신림동 점쟁이의 귀인 점괘로 수유리 동양녹음실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미소가 절로 지어지던 일, 아카데미하우스 레스토랑에서 처음 그녀에게 붓글씨 솜씨를 뽐냈던 일, 송추 예맷골에 데려가서부터 본격적인 연애가 시작되어 꿈에 양가의 돌아가신 아버지들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았던 일, 처가집의 극렬한 반대로 힘겨웠던 일, 결혼식을 올리고 의정부에서 시작한 신접살림과 만삭의 아내는 매니저가 되고 그는 가수가 되어 방송가와 밤무대를 누볐던 일……. 그렇게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아내가 아기를 가져 그토록 기뻐했는데, 차라리 내 목숨을 거두어 갈 것이지 아내와 아기 중에 하나를 포기하란 말인가?

‘윤 시인, 이놈이 죽일 놈이에요. 내가 당신을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오늘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아니오? 앞으로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잘할 것이니 당신도 아기도 무사하기를 엎드려 빌어요.’

그는 실제로 수술실 앞 복도에서 마치 평화지도를 그릴 때처럼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빌고 또 빌었다.

▲ ●작품명: 함께 ●작품크기: 높이 55㎝x 둘레 95㎝ ●제작년도: 2010년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실 소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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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희 2013-10-02 15:55:17
아기도 산모도 아무 탈 없이 그렇게 되었을거라고 믿고 싶네요

차돌 2013-09-30 00:08:36
아....어떻게 되었어요? 아기가? 산모가? 아 궁금해,,,,

슬픈이 2013-09-29 20:06:40
정말 잔인한 의사의 추궁이군요 아내와 아기 ,, 중 그러나 아내를 살려달라 싸인을 하고 하나님께 아내와 아이를 살려달라 기도한 마음. 너무 슬프네요. 고난이 큰것은 유명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조물주의 행보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