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들으세요, 긴급 공지사항! 지금 녹음작업이 문제가 아니에요. 여러분 주위에 미혼인 여자가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동생, 조카, 이웃집 아가씨, 다 좋습니다. 저한테 점쟁이가 빨리 귀인을 못 만나면 장가를 못 간다고 합니다.”

킥킥! 아니, 사장님은 그런 점쟁이 말을 믿으세요?”

그가 심각한 어투로 말하는데도 당시 녹음실에 다니던 10여 명의 사람들은 농담인 줄로만 알고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러나 그로서는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장난 반 진심 반으로 그들이 소개하는 여자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모두가 시원찮았고, 모처럼 마음에 드는 여자는 두 번째 만남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제나 저제나 귀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던 참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동양녹음실인가요?”

벼룩신문에 신인가수 모집! 음반 제작할 분!’ 하는 광고를 냈더니 다시 문의전화가 밀려든 것이다. 그런데 상대편 여자 목소리가 느낌이 좋았다.

! 결혼하셨나요?”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 순간 상대 여자에게 언제 무얼 제작하겠느냐는 용건은 묻지 않고 엉뚱한 소리부터 한 것이다. 여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내친 김에 한한국이 계속 물었다.

여보세요? 결혼하지 않았냐고요?”

, 하지 않았어요.”

한한국이 마음속으로합격!’ 하고 외치며 말했다.

그럼 오세요.”

제가 좀 급한데요.”

오늘 오후 아무 때나 오세요.”

저녁 때 갈게요.”

지금은 한한국의 아내가 된 윤소천 시인은 그때 급히 시 낭송 테이프를 제작해야 했다. 다소 엉뚱하기 하지만 사장이 오랄 때 가야 일이 빨리 끝날 것 같아, 윤 시인은 그날 저녁에 녹음실로 달려갔다.

아침에 전화 건 사람이에요.”

그녀가 처음 녹음실로 들어서는 순간 한한국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점쟁이가 말한 귀인이 바로 저 여자란 말인가? 아니 나의 아내가 될 사람이란 말인가?’

느낌이 참 좋았다. 신기하게도 그녀를 보는 순간 한한국은 바로 확신할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아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괜히 콘솔도 만지고 책상도 정리하면서 상담은 안 하고 딴전만 부렸다.

참 미인인데! 내 짝이 정말로 있었구나!’

녹음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던 무명가수를 보내고 나서야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무슨 용도로 어떤 작업을 원하시죠?”

전 시인이에요. 동국대 강의도 나가고요.”

그는 어딘가 그녀의 목소리가 낯익게 들렸다. 알고 보니 한한국이 녹음작업을 저녁 늦게 마치고 돌아갈 때 듣곤 하던, 교통방송의 장유진의 0시의 세종로란 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시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시 낭송 테이프를 제작하려고 온 것이었다. 당시에는 탤런트 채시라와 최명길 등이 시 낭송 테이프를 내어 히트하기도 했었다.

 

한한국이은집 공저

▲ 지난 2011년 11월 3일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한한국 세계평화작가 세계평화홍보대사 위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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