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연재] 평화대통령 한한국 (93)
[논픽션 연재] 평화대통령 한한국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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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국은 드디어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 도봉산공원에서 야외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그동안 운영해 오던 동양녹음실을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 처분해 버렸다. 그가 다시 글 쓰는 일에 매진하기로 한 데는, 운명이 바뀌는 고비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심상치 않은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한국아, 한국아! 너는 잊었느냐? 여덟 살 때부터 공부해 온 글씨를 왜 버리려 하느냐? 너의 인연을 만났으니 이제 평화지도 작업에만 전념하도록 해라! 가수나 사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 대작업은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다! 시간이 없다. 빨리 서둘러라!”

하지만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어서 한한국은 결혼 후에도 밤무대를 뛰었고, 오히려 더 본격적으로 도와 모란 데뷔 앨범을 한태일이란 예명으로 내기도 했다. 만삭이었던 아내 역시 그의 매니저가 되어 방송가에서는 만삭 매니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 당시 방송횟수 순위 10위권에도 진입하고, 특히 라디오 00방송에서는 윤 시인이 게스트로 출연해 한한국 작가의 가수 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전국 노래자랑에 이렇게 젊은 가수가 나온 건 처음 같구먼! 근데 노래를 썩 잘하네!”

출연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전국 노래자랑에 초대가수로 나갔을 때 송해 선생님의 칭찬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그만큼 밤무대와 메들리 가수에서 한창 발돋움을 하려던 차에 꿈속에서 경고를 받고 보니, 도저히 계속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갑자기 가수의 길을 접고 보니 마땅한 일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m, 7m의 한지에 상상도 못할 제작비가 들어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지속되었다.

아들 영두가 세 살이 되던 해, 결국 한한국은 붕어빵 장수로 나서야 했다. 직접 붕어빵을 구워 파는 게 아니라 재료를 차로 배송해 주는 일이었다.

붕어빵 반죽 재료가 그렇게 무거워서 어떻게 해요? 한 차에 45이나 되는 통을 40개씩이나 몇 차례나 배달하자면, 당신 같은 약한 체구로 감당이 되세요?”

한한국이 배달을 마치고 땀범벅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자 아내 윤소천 시인이 영두를 안고 걱정스레 물었다.

걱정 말아요. 오히려 팔심이 생겨서 글씨가 더 잘 써진다니까.”

말은 웃으면서 했어도 월수 60만 원 정도로는 아들 우유 값도 안 된다는 걸 알았기에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더욱이 배달차를 운전하다가 인사사고가 났다. 경사가 몹시 가파른 길을 횡단하는 학생을 치었던 것이다. 붕어빵으로 번 돈을 다 날리고도 모자랐다.

거기에다가 한지 값으로 장당 적게는 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이 끊임없이 들어가고, 주인집에서는 월세를 안 내 보증금을 다 까먹었다며 당장 나가라고 악을 써대고, 아들 영두는 우유를 먹지 못해 앙앙 울고 있고, 몇 년에 걸쳐 만든 3미터짜리 한반도 지도는 장마에 물이 차서 망가져 버리고……. 정말로 뒤도 앞도 보이지 않았다.

, 저 아이도 저 지도도 내 분신인데!’

애꿎은 소주만 입 안에 들이부으며 병나발을 불어대는 그를 아내가 위로해 주곤 했지만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육체도 성한 곳이 없어서 어깨와 무릎이 빠져 나가는 듯한 통증에 견딜 수가 없었다.

 

한한국이은집 공저

▲ ●작품명: 발전●제작년도: 2010년 ●작품크기: 가로 1m 80㎝x세로 2m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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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현 2013-09-27 02:11:28
이런 아픔이 있었다니 몰랐습니다. 얼굴이 항상 환하고 밝아보여서 고생하셨다해도 이렇게 힘들었을줄은 몰랐네요. 정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는데 이건 솟아날 구멍도 보이지 않는 절박한 상황에 어찌 작품활동을 하실 수 있었는지 대단하십니다.

미지 2013-09-25 18:58:40
한작가님은 인간의 한계을 극복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글로만 읽고 있지만 실제 이러한 일을 경험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아진 2013-09-25 14:58:56
얼굴을 봤을때 어디서 많이 본듯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익숙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