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시인, 내일은 가볼 데가 있습니다.”
한한국이 가려는 곳은 군대 있을 때 알게 된 곳으로 송추의 ‘예맷골’이란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이것이 그녀와의 실질적인 첫 데이트인 셈이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꼬박 사흘 동안 차 안에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본격적인 연애감정이 싹트기 시작하자, 윤 시인의 집에서 반대가 극심했다.
“글씨가 밥 먹이냐? 딴따라가 웬 말이냐?”
한한국은 장인장모 되실 분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무렵에 그는 현실과는 반대의 꿈을 꾸었다.
‘어? 장인이란 분은 나를 보면 밥그릇이라도 던질 터이데 왜 이리 반겨주시지?’
꿈에 한한국이 온양으로 처음 장인을 만나러 가자, 밥을 먹던 장인이 방문을 열고 반기며 어서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잘 왔네. 어서 내 딸과 결혼해 주게.”
하지만 꿈속에서도 반대한 사실이 생각나서 ‘어? 웬일이시지?’ 하며 기분 좋게 마루에 오르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 3시였다.
‘아, 참 이상한 일이다. 그토록 반대하신다는 장인 되실 분이 결혼을 허락하시다니…….’
이때까지만 해도 한한국은 윤 시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모르고 있었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어서 기쁜 마음에 윤 시인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새벽시간에 전화를 걸기가 뭣해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만약 전화벨이 두 번 울릴 때까지 받지 않으면 끊으리라 마음을 먹고 수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한한국입니다.”
“아, 이 밤에 무슨 일이세요?”
“저 이상한 꿈을 꾸어서요.”
그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녀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세상에, 한 선생님! 저도 똑같은 꿈을 꾸었어요.”
윤 시인은 그녀의 집이 아닌 한한국의 집인 화순에 찾아가서 그의 아버지를 만났는데, 머리에서 발까지 이불 호청을 둘러쓰고 누워 계시던 아버지가 머리를 내밀고 “아가야, 어서 오너라! 잘 왔다!” 하시면서 반기더라는 것이다. 이미 양가 아버지는 두 분 다 돌아가신 터인데, 이렇게 비슷한 꿈을 꾸다니 신기하면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윤 시인, 내일 아침 11시에 도봉산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만나요.”
“어디 가게요?”
“그냥 나와요!”
도봉산에 ‘무량도사’란 철학관이 있는데 아주 용하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한번 꿈 해몽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관세음아멘! 나무아미알라신!”
한참 주문을 외우던 무량도사가 꿈 풀이를 시작했다.
“한 총각과 윤 낭자는 천상에 계신 양가 부친들께서 허락해 주신 천생연분이니 거두절미하고 나이도 환경도 초월해서 빨리 혼사 택일을 하시오.”
그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약 3개월 후인 1995년 6월 18일 바로 한한국의 생일날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하늘의 아버지들께서 허락하셨고, 점쟁이들도 예언했으며, 더구나 글씨를 쓰고 노래하고 시를 짓고 낭송을 하는 이 둘이 만났으니, 이보다 더 환상적인 인생의 동반자 또 있겠는가. 그런 생각에 두 사람은 오로지 기쁘고 고맙고 행복할 뿐이었다.
한한국‧이은집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