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한한국은 본격적으로 노래 연습을 하기 위해 정릉 산골짜기에 가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쩌렁쩌렁한지 수방사에서 군인이 나타나 제지를 할 정도였다고. 도봉산에도 올라가 봤으나 어디에나 사람들이 들끓어서 그만 포기하고 내려왔다. 그런 중에 고려대 앞 종암동 하천 다리 밑을 발견하고는 거기서 노래를 불렀더니 소리가 에코가 되어 울리는 것이 안성맞춤이었다. 한여름의 하천이라 각종 오물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한한국은 그저 좋았다.

주로 부른 레퍼토리는 설운도의 <원점><잃어버린 30>, 나훈아의 <한백년> <어메>, 배호의 <누가 울어>, 주병선의 <칠갑산> 등의 노래였는데, 한창 목청을 드높여 부르고 있을 때 캄캄한 다리 밑 움막에서 벽력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노랠 그 따위로 불러!”

네에? 누구세요?”

순간 너무 놀라 쳐다보니 거지같은 행색에 정신병자처럼 생긴 노인이 달랑 촛불 하나 커져 있는 움막 안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노래를 아십니까, 어르신?”

배고파! 밥 가져와! 술도 사와!”

노인은 계속 소리를 내질렀고 한한국은 마치 주인 말 잘 듣는 머슴처럼 하천변의 음식점으로 달려가 국밥과 막걸리를 사들고 왔다 이윽고 밥과 술을 다 먹고 난 노인이 막대기로 깡통을 치며 한한국에게 노래를 해보라고 시켰다. 그런데 어찌나 그 장단이 잘 맞는지 그는 갑자기 호남 제일의 고수이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노래는 감정이 살고 목을 꺾을 줄 알고 박자가 맞아야 해! 곡조를 당겼다 놨다 애간장을 태워야 귀 기울여 듣게 된단 말이야! 이 썩어질 놈, 소리만 지르면 장땡인 줄 알아? 맛을 넣어, 맛을! 강약을 잡고 혼이 들어가야 해!”

이후부터 한한국은 거지노인한테 매일 혼이 나면서도, 그에게 밥 사주고 술 받아주고 하면서 한 가지 한 가지씩 노래를 배워 나갔다. 갑자기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다음날 걱정이 되어 종암동하천 다리 밑으로 가보니, 흙탕물만 흘러넘친 채로 움막도 거지노인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혹시 홍수에 떠내려가신 건 아닌가?”

몹시 걱정이 되었지만 끝끝내 그 거지노인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배움의 기회를 얻고 나서 한한국은 화양리의 어느 작곡실의 메들리 노래 제작자를 만나게 되었다. 마침내 한한국은 한국메들리란 테이프를 비롯해 5집까지 낸 가수로 다시 태어났다. 그것이 기회가 되어 그는 상봉동의 한국관, 동대문의 동대문회관, 명동의 홀리데이서울 등을 하룻밤에 풀로 뛰게 되었다. 보통 한 업소에서 4곡을 15분 내외로 부르고, 한 타임당 무명가수로는 꽤 센 30만 원을 받았다.

이런 중에도 그는 낮엔 서예학원에서 강의하며 붓글씨를 놓지 않았고, 밤에는 성남의 업소까지 원정을 다니며 메들리 가수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던 가수의 길로 들어선 한한국이, 다시 붓을 잡고 초심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한한국이은집 공저

▲ ‘문화예술의 두거장’ 제16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문화예술체육분과) 임명 (김덕수 교수, 한한국 세계평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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