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과 지렁이 (그림_박순철 화백)

▲ 건원 윤상철 선생
하느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신 뒤에 사람과 짐승을 만들고 남은 부스러기로 벌레를 만드셨다. 그리곤 하늘나라로 돌아가려 하는데, 그때까지 게을리 꿈틀거리기만 하던 지렁이가 급하게 “하느님! 하느님! 저희는 무엇을 먹고 살면 좋겠습니까? 귀도 없고 눈도 안 보이는데다 힘도 없고, 이렇다 할 재주도 없습니다. 정말 먹고 살길이 막막합니다”라며 하소연했다.

그러자 하느님은 “그저 게을러 땅바닥에 퍼질러 누워 꿈틀거리기만 하면서, 무얼 좋은 것을 먹으려 하는가?”라고 답했다.

이에 “저희도 게으른 것은 압니다. 그래서 맛있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배는 고프니 어찌합니까? 그저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지렁이가 말했다.

“배만 부르고 싶다면 흙을 먹는 것이 좋겠다. 아무 데나 널려있고, 발이 없어서 도망 다니지도 못하니, 너희같이 게으르고 재주 없는 것들이 먹기가 얼마나 좋으냐?”하며 하느님이 마지못해 해결책을 주고 가려는데, 지렁이가 “그런데 이 세상의 흙을 다 먹은 다음에는 무엇을 먹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 말에 하느님께서 큰소리로 “뭐라고? 너희가 어찌 이 세상의 흙을 다 먹는다고 하느냐? 천만 년을 먹어도 다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정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먹자마자 바로 싸서 너희가 먹은 흙을 먹고 또 먹게 하리라” 하며 꾸짖으셨다.

그 말에 정신을 차려 부지런해진 지렁이는 흙을 먹고 싸고 먹고 싸면서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땅을 옥토로 만드는 역할을 맡게 됐다고 한다.

▲ ‘진수’와 주변별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지렁이의 정기를 타고 태어났다’ 할 정도로 지렁이는 영험하고 힘이 세다. 또 지렁이는 땅을 기름지게 하는 용이라 하여 지룡 또는 토룡이라 불린다.

잘 모여 산다 하여 구인, 진흙에 산다 하여 근인, 몸을 잘 구부린다 하여 곡선, 암수가 한 몸으로 붙어산다 하여 부인, 잘 꿈틀거린다 하여 원선, 길게 잘 울 수 있다 하여 가녀 또는 명유, 약재로 쓸 때 찬 기운이 있다 하여 한인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여러 재주를 가졌고 쓸모도 많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도 태평성대에는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는 역할을 하지만, 유사시에는 용감한 기갑부대가 돼 적진을 누비는 일종의 예비군 역할을 맡겼다.

3월 13일 새벽 1시에 정남쪽에 뜨는 마름모꼴의 네 별이 바로 지렁이의 정기를 담은 진수이다.

진수는 전라도의 오른쪽 지역인 광주 담양 화순 고흥 구례 광양 등에 영향을 준다. 또 뱀띠 중에 음력 7~12월에 태어난 사람은 이 진수가 수호별이다. 이 사람들은 진수를 닮아서 놀기도 좋아하지만, 생활력이 강하고 의리가 있으며 예술가적인 기질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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